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과목 이수에 필요한 기준 수업 시수를 '단위'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3년 동안 교과 180단위와 창의적 체험활동 24단위를 합해 총 204단위를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일반고를 기준으로 180단위 중 94단위는 필수 이수 단위이고, 86단위는 자율 편성 단위입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단위 대신 '학점'이란 용어로 바뀌면서 '고교학점제'를 전면 적용 예정인 2025년을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2023년과 2024년은 완충 지대인 셈이죠. 단위를 학점으로 바꾸면서 총 이수 학점(단위)도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줄었습니다. 필수 이수 학점은 84학점으로 기존보다 10단위(학점)가 줄어든 반면 자율 이수 학점은 86단위에서 90학점으로 늘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도 24단위에서 18학점으로 줄었고요.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안 (출처 : 에듀프레스)
그렇다면 왜 용어를 바꾸면서까지 교육과정을 바꾸려고 할까요?
이 질문을 하기 전, 학점이란 용어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을 거슬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학점'이란 단어를 대학에 들어가서 알았습니다. 듣고 싶은 강좌를 신청해서 수업을 듣고, 빵꾸(표준어는 아니지만 맛깔나게 ... 이해해 주세요) 안 나면 학점을 받았죠. 최소 기준 학점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 받았고요. 학점이 부족하면 계절학기를 들어 학점을 메우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코스모스 졸업을 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휴학은 필수, 해외연수는 선택, 인턴십은 횡재, 취업은 로또, 코스모스 졸업은 꼰대 용어가 되었습니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더 힘든 앞날이 펼쳐지는 현실, 실화 맞습니다.
여하튼 '학점'이라는 용어가 고등학교에 적용된 이유도 위와 비슷한 과정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통 과목은 다 같이 듣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은 선택해서 듣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받아서 최소 이수 기준(단위제에서는 수업일수의 2/3 출석, 그러나 학점제에서는 성적도 정해진 기준 이상을 성취해야 합니다)에 도달하면 졸업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과정을 바꾸는 취지는 '개인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겠다 것입니다. 학생들이 각자가 원하는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하겠다는.... 발표를 해놓고 보니 희망 학생이 적거나 교사가 적은 학교의 경우 다.양.한 과목 개설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겠다는 '공동교육과정'을 내놨습니다. 공동교육과정이 거점형과 학교연합형의 형태로 일선 학교에 폭탄이 되어 던져진 것이죠.
그런데 이거 학생들이 원했나요?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나요? 학부모들은 환영할까요?
모든 물음에 '글쎄요~' 갸우뚱하게 됩니다. 2015 개정교육 과정의 선택 과목(일반선택, 진로선택)도 복잡하다고 하는데, 2022 개정교육 과정에서는 선택 과목(일반선택, 융합선택, 진로선택)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진다는 뜻이잖아요. 애초의 취지는 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맞춤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인데, 대학생과 나이 지긋한 어른도 진로를 찾아 방황하는 마당에 '이건 좀 너무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입시는 또 어떻고요?
올해 중1이 된 2009년생 조카가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명분으로 학생과 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공통과목에 대해서 만큼은 9등급제를 유지하겠다고 하니 일단 학생과 학부모는 거기에 올인할 것이 분명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성취평가제로는 학생을 선별하기 어렵다며 추가 방법을 논의하겠죠? 2024년 2월에 발표될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