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작은 아이와 고1, 큰 아이의 중간고사 통지표가 제 손에 당도했습니다. 사실 통지표를 받은 지는 보름이 넘었는데 요사이 제 일정이 바빴던 탓에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초록색과 먹색이 섞인 가로로 긴 종이 통지표를 받았습니다. 부모님께 확인을 받아오라던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어떻게 하면 몰래 도장을 찍어갈까 머리를 굴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지요? 요즘에는 통지표도 학교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pdf로 올라오거나 나이스(https://www.neis.go.kr)에서 조회가 가능하니 아이들이 통지표를 숨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때의 아슬아슬한 추억 같은 건 지금의 아이들에겐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중학교의 중간고사 통지표는 꽤 단순합니다. 중간고사의 반영 비율에 따라 만점(보통은 30~40점 정도입니다), 받은 점수, 수강자 전체 인원수, 자신의 점수, 과목 평균이 전부이니까요. 중학교의 교과별 성취도는 90점 이상이면 A, 80점 이상은 B와 같이 절대평가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과별 성취도의 경우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종합하여 산출하기 때문에 보통 학기 마지막에 성취도를 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중간고사 통지표에는 성취도가 생략되어 있죠.
고등학교 통지표는 어떨까요? 중학교의 통지표와 가장 큰 차이점은 석차와 동석차수, 표준편차가 추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고3 학생들의 생기부 분석과 자소서 컨설팅을 위해 제법 많은 학생들의 생기부 출력물을 받아봤었지만... 그건 4학기 또는 5학기에 해당되는 최종 성적표에 해당되기 때문에 중간고사 성적표는 사실상 저도 처음 받아봤답니다. 저도 고등학생 학부모는 처음이라서요.
학원을 모두 중단하고 한 달 동안 혼자 준비해서 본 시험 치고 큰 아이는 선전했습니다. 저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부모가 욕심을 부리자면 끝도 없죠.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고등학생이 아닙니까. 그래도 자신의 현재 좌표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지금부터 한 달 뒤에 치르게 될 기말고사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도 꼭 필요한 일이기에 엑셀 파일에 굳이 정리를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중간고사 통지표에는 등급이 없거든요.
큰아이의 전공어 반은 학생수가 모두 25명입니다. 등급별 인원수가 깔끔하게 1, 2, 3, 4, 5, 4, 3, 2, 1명으로 똑 떨어지는군요. 전공어를 뺀 나머지 과목의 등급은 1학년 전체 학생수로 계산됩니다. 이제 '석차*100/수강자수'로 나온 석차백분율이 1~9등급간 비율 어디에 해당되는지 'IF 함수'를 사용해서 표로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건 동석차가 있을 경우 다시 중간석차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학교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른 걸로 알고 있어요. 여하튼 그렇게 동점자 처리 후 등급을 보니.... (뜨억)
전공어 회화는 100점을 맞았지만 동점자가 7명이라 3등급이 되었습니다. 통합사회도 동점자가 많아 한 등급이 내려갔네요. 수학은 안타깝게도 등급의 경계에서 아래 등급에 당첨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표를 딸아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등급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하던 딸아이에게 이 데이터는 안타까움과 화남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제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담임선생님과 딸아이의 개별 상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등급을 확인시키고, 다음 시험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물으려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수학만 빼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등급과 같다고... 이미 엄마가 성적을 계산해 줘서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답니다(수학은 수강자수가 바뀐 탓인지 1등급 등극, 과목 중 유일한 1등급입니다). 선생님이 놀라시며 엄마는 뭘 하는 분이냐고 물었다나 뭐라나... 여하튼 큰아이는 이미 오답 노트와 시험 리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라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하며 선생님과 더 깊은 상담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음을 나중에 검색하다 알게 되었거든요.(저와 같은 삽질은 하지 마시라고 공유합니다)
시험이 메타인지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까지 이어져야 제대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모니터링으로만 끝나고 컨트롤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메타인지는 반쪽짜리 인 것이지요. 현재의 등급에 만족한다면 유지 모드를, 그렇지 않다면 계획과 행동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죠?
큰아이는 다시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특히 국어와 영어는 자료 때문에라도 다녀야겠다는군요. 그 선택도 일종의 행동 수정에 들어갈 수 있겠네요.
작은 아이는 과목별 편차가 매우 커서 걱정이 많습니다. 수학과 영어는 우수한 편인데 비해 국어와 과학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거든요. 오답분석을 해보니 국어는 지문을 끝까지 읽지 않고, 문제를 대충 풀어서더라고요.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게 하니 거의 다 맞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맞출 수 있었던 문제를 틀렸다는 것을 알고 느끼는 바가 컸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과학인데.... 우선 기말고사는 수학과 영어의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국어 성적만 **점 올려보자는 작은 목표를 잡고, 다짐 의식(?)을 치렀습니다. 오늘 저녁엔 과학 오답분석을 하기로 했는데.... 난감합니다. 비 내리는 시험지를 직면하길 두려워하는 작은 아이가 오답분석을 하기로 한 것만도 크게 칭찬하고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어쩌다 보니 '나의 시험일지'가 되었습니다. 나이스(https://www.neis.go.kr)에 들어가시면 성적표 조회가 가능합니다. 오답표도 함께 보실 수 있지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자녀의 시험지를 다운 받아볼 수 있으니까 오답표와 함께 놓고, 아이와 이야기 나눠보시면 좋겠어요. 아니면 다시 풀어보게 도와주셔도 좋고요. 저는 아이에게 '기말고사를 준비할 나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습니다만....
오답분석이 뭐 별건가요? 스스로 '아~!! 이거 왜 이렇게 풀었지?' 하는 정도의 메시지면 충분합니다. 김경일 교수는 이걸 '하이퍼 코렉션 효과'라고 부르더군요.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정도까지인 것 같네요. 공부는 아이가 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