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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Jul 15. 2022

아기와의 첫 여행

어쩌다 주간 일기

바다를 보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남들은 다 아기를 낳기 전에 기분전환 삼아 제주도라도 다녀온다는데, 고위험 산모였던 나는 누워만 지내느라 옆 도시에 단풍구경을 가려고 했던 일정도 취소해야만 했다. 임신을 확인하기 전에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강릉에 갔던 것이 우리 부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출산을 하고 정신없이 육아를 하다 보니 바다를 보러 간지가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가버렸는데, 남편이 장기근속 특별휴가를 받아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다 여행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기는 이제 5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남다른 식욕으로 이유식도 시작한 상태였다. 아기와 동네 외출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늘 아기 짐을 가득 채워 나가도 돌발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수유실도 없는데 대변을 봐서 차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거나, 수유 텀이 되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밥 먹는 걸 보고 빨리 배고파한다거나 하는 이벤트들이 소소하게 있어왔다. 그래도 길어야 30분이면 집에 갈 수 있는 환경에서의 돌발상황은 대처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어딜 가도 어린이를 볼 수 있는 우리 동네는 조금만 큰 건물에 들어가면 언제든 수유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 특히 바다를 보기 위해 멀리 떠나는 여행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후기를 찾아보다 보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숙소였다. 아기를 데리고 여러 포인트를 돌아다니는 것은 우리 부부 체력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가서 아기를 맡기고 구경 다니자니 그건 그것대로 제약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 숙소 리뷰를 찾고 또 찾으며 우리의 조건에 맞는 숙소들을 추려냈다. 맨 먼저, 아기 용품을 최대한 빌려주는 곳일 것. 요즘 아기침대 정도는 어디에서나 대여가 되는 것 같은데, 아기욕조와 젖병소독기까지 빌려주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를 보러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5개월인 우리 아기에게 아직 대부분의 아기의자는 큰 편이었고, 혼자 앉기는 버거웠다. 아기와의 여행은 숙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만큼 뷰가 중요했다.


그렇게 오래 고르고 고른 숙소는 속초에 새로 생긴 리조트였다. 한 달 전에 예약을 했는데도 빈자리가 거의 없어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 객실 오션뷰라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고, 아기 물건도 많이 빌릴 수 있는 데다 여분의 방이 있어서 아기를 따로 재울 수 있었다. 소리에 예민한 우리 아기와 잠만 자면 기관차로 변하는 남편이 모두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숙소라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연박으로 예약을 할 수도 없었지만, 혹시나 아기가 새로운 장소에서 너무 힘들어할까 봐 우리는 욕심내지 않고 1박 2일로만 일정을 잡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전날이 되자 왠지 마음이 들떴다. 드디어 여행을 간다는 설렘과 아기랑 오 가는 길이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 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온종일 맴돌았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부부 짐뿐이었고, 아기 짐은 거의 다 당일 아침에 챙겨야 했다. 저녁 마지막 수유를 할 때까지 사용해야 하는 물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있는 워터파크나 인피니티 풀이라도 이용을 해보는 게 좋을까 싶어 마지막까지 아기 수영복과 방수 기저귀를 고민했으나, 집 근처 매장에 5개월 아기에게 맞는 것들은 없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눈병이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혹시라도 사람이 많으면 아기에게 좋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결정적으로 체온 유지가 어려운 아기가 차가운 여름의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남편의 강력한 의견이 수영 관련 짐을 모두 빼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당일 아침 짐을 모두 싸놓고 보니 한가득이었다. SUV의 커다란 트렁크가 빼곡하게 찰 정도였다.


여행하는 날, 들떠있는 엄마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아기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차라리 좀 더 먹일 수 있고 아침 두 번째 수유에 이유식을 먹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이른 기상을 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아기를 먹이고 짐을 싸고 움직이다 보니 금방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아기를 데리고 장거리는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처음 두 시간 정도는 아기가 졸기도 하고 밖을 보기도 하면서 잘 견뎌주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성공적인 여행길을 기뻐하며 첫 번째 목표였던 가평휴게소까지 신나게 달려갔다.


평일의 애매한 점심시간, 우리는 한적한 길과 휴게소를 기대했다. 그러나 7월이면 이미 휴가 성수기가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명절 이외에 휴게소 주차장이 그렇게 꽉 찬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주차장부터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아기를 데리고 밥을 먹기엔 너무 힘든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의 모든 좌석이 꽉 차있었고, 당연히 기대했던 맛남샌드는 품절이었다. 유명하다는 잣국밥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식당의 대기를 아기가 함께 견뎌줄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바로 나오는 김밥과 어묵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숙소로 다시 향하기로 했다.


어른들의 합의가 어떻든 간에 아기는 본인의 수유 시간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이 적은 다음 휴게소에서 아기를 먹이려고 했지만, 서울 양양고속도로의 한쪽 도로를 막고 점검하는 구간이 예상보다 길었고 아기는 울기 시작했다. 계속 앉아만 있는 것이 지루했는지 더 이상 동요 메들리도 율동하는 엄마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했다. 길바닥이라는 걸 아는 건지 그렇게 울고도 아기는 충분한 양을 먹지 못했다. 그것은 다음 수유 시간이 다소 당겨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갈 길이 아직도 먼 것 같은데 이미 혼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고속도로를 나오는 시점에 아기는 겨우 선잠이 들었다. 그제야 나도 달라진 풍경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가 보이고, 커다란 카페나 횟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절벽 위에 튀어나온 우리 숙소도 보였다. 체크인이 붐빈다고 들어서 일찍 도착할 수 있게 출발했으나, 이미 체크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좋은 방을 받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가 없었다. 아기가 힘들지 않게 너무 기다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짐과 아기를 무겁게 들고 도착한 주차장 입구에는 셀프 체크인 기계가 한 대 있었는데, 문자로 받은 바코드를 찍자 바로 방 키가 나오고 체크인이 완료되었다. 후기에는 일찍 오지 않으면 한 시간을 기다린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바로 되다니 다행이었다.


좋은 기분으로 도착한 방에는 미리 전화로 예약한 아기 용품들이 다 세팅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내 예약엔 아기 침대 등을 세팅해야 해서 체크인 전에 방배정이 완료된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얼른 짐을 풀었다. 제일 먼저 아기 수유를 대비해 수유 포트부터 설치를 하고, 오래 앉아있어 칭얼대는 아기를 위해 바닥에 준비된 이불을 깔았다. 마음껏 뒹굴 수 있는 호텔 이불에 눕자 아기는 언제 보챘냐는 듯 방긋방긋 웃었다. 창밖에는 속초해수욕장에서 노는 사람들이 보이고, 먼바다의 푸른 물결도 잘 보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뒤집고 구르며 웃는 아기 모습에 그제야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자 방긋방긋 웃으며 다음 수유시간까지 세 식구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쁘기로 소문한 리조트 산책로를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푸르른 동해의 고요함을 셋이서 즐겼다. 곧 아기가 졸려해서 리조트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도 애매해지자, 남편이 얼른 근처 튀김 골목에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아기와 둘이서 조용히 방에서 바다를 구경하려다 보니 아기가 잠들어서, 나는 작은 방에 아기를 눕혀두고 바다를 원 없이 감상했다.


남편이 사 온 모둠 튀김에 컵라면을 먹고, 우리는 좀 이르지만 루프탑 바에 갔다. 아기 수면시간이 다가오고 있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보다 높은 층에서 보는 바다는 또 조금 느낌이 달랐다. 바는 요즘 유행하는 수제 맥주 바였는데, 원하는 맥주를 조금씩 먹고 따른 만큼 돈을 내는 시스템이었다. 아기가 보챌까 봐 일부러 유모차 대신 아기띠에 안고 갔는데, 역시나 아기는 우리 기대를 벗어나 보채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안은 남편은 앉지도 못하고 스탠딩 바를 즐겼다. 아기가 보채다 보니 좋은 경치도 눈으로만 즐기고 사진 찍을 틈이 없었다. 겨우 달래서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긴 했지만, 결국 아기가 피곤했는지 토를 하기 시작해서 일찍 자리를 정리해야 했다. 꽤 비싼 바였는데 우리가 얼마나 일찍 일어났는지 결제금액이 5천 원대였다.


계획대로 일몰을 바에서 보지 못하고, 방에 돌아와 아기를 씻기고 재우니 해가 이미 지고 없었다. 그래도 저녁놀이 진 바다를 조용히 즐기는 것이 참 행복했다. 오는 내내 운전을 한 건 남편인데, 주량이 형편없는 나는 새로 맛본 맥주 딱 두 모금에 취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잠이 들어버렸다. 아기가 잠들면 나와 저녁 바다를 안주삼아 즐기려던 남편은 홀로 바다를 보았다고 했다.


조식 시간은 7시부터여서 7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우리의 아기는 6시에 일어나서 모두를 깨웠다. 아기를 키우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되는데, 여행을 와서도 아기는 늦잠을 몰랐다. 어쨌든 일어난 김에 아기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우리도 아침을 먹으러 내려갈 준비를 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침을 먹고 퇴실 시간까지 좀 더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식당에 내려갔는데, 평일임에도 만실인 리조트답게 사람이 많았다. 저녁과 야식이 부실했기 때문인지 우리 부부는 각자 두 접시씩 배부르게 조식 뷔페를 즐겼다. 다행히 배가 부른 우리 아기는 조용히 유모차에 앉아서 기다려주었다. 아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을 때, 우리는 디저트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일찍 일어나서 졸린 아기를 먼저 재우고, 어처구니없게도 숙취가 시작된 나도 잠이 들었다. 퇴실 1시간 전 알림 방송에 깨어 아침 바다를 보기 위해 커튼을 걷었는데, 아주 멋진 해무가 잔뜩 끼어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파스텔처럼 지우고 있었다. 역시나 비몽사몽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아기가 깨기 전에 하나씩 짐을 정리하고, 출발 전에 아기를 깨워 수유를 하고 그것까지 정리하고 나자 퇴실 시간인 11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부랴부랴 무겁게 짐과 아기를 들고 셀프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으로 리조트 산책로를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해무가 낀 바닷가는 무거운 습기가 지배하고 있어서 아침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생각해보니 세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길래 아기를 안고 셀카를 찍었는데, 더위를 타는 우리 아기가 어찌나 짜증을 내던지 정상적인 사진은 남길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도 피곤하게 부은 얼굴이라 역시 개인 소장용 사진밖에는 남길 수 없었다.


처음 생각대로라면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집에 가고 싶었는데, 푹푹 찌는 바닷바람과 가는 길에 서울을 거치는 우리의 경로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올 때처럼 아기가 중간에 울면 휴게소도 들러야 하고, 그러다 보면 늦을 테니 수유 시간이 또 걸릴 것 같았다. 정말 숙소에서만 잠깐 보내고 여행이 끝나는 느낌이라 너무 아쉬웠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속초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


서울방향 가평휴게소에서는 그렇게 바라던 맛남샌드를 샀다. 더위에 줄을 서서 기다리긴 했지만, 운 좋게 샌드가 나오는 시간 부근에 도착해서 많이 기다리진 않았다. 강원도 방향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스낵도 조금 사 먹고 아기 수유도 여유 있게 했다. 정부 지침 때문인지 휴게소 전체가 너무 더워서 더위 인간인 남편과 아기는 에어컨 근처에만 머물러야 했다. 가는 길과는 달리 아기도 지쳤는지, 보채지도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졸다가 반복하며 집에 성공적으로 왔다.


집에 돌아오자 풀어야 할 짐이 한가득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바로 어제오늘 본 바다가 현실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기도 오래 차를 타서 힘들었던지 일찍 잠이 들었고 나도 신경을 많이 썼는지 두통이 매우 심해서 일찍 잠이 들었다. 사실 내내 운전을 한 남편도 있는데 내가 너무 지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없어진 것을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전날 마신 맥주의 숙취였던 것 같다. 앞으로는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무알콜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몸이 엄청나게 피곤한데도, 그토록 바라던 바다를 보고 왔다는 점이 좋았다. 내년에는 내 체력도 더 키우고 아기도 좀 더 협조가 될 테니, 꼭 물놀이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년에도 행복한 세 식구의 바다 여행을 기약하며,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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