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장지갑을 든 채로 우리 엄마또래로 보이는 젊은 할머니가 부동산으로 들어오셨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간단한 목례와 함께 말씀을 시작하셨다.
"어머, 사장님이 젊으신 분이시네. 사실 나 강남에서 살았고 강남에 건물도 있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맞아서 뭐 이렇게 되긴 했는데, 나 사실 이런데서 살 사람이 아니거든요. 우리 딸이 어제 여기 와서 집 보고는 울었어, 우리 엄마 이런데서 살아야 하냐고. 오늘도 같이 왔어요. 지금 집 보고 있어. 이 주변을 내가 다 돌아봤거든요. 공실이 엄청 많아. 공사하시면서 싱크대도 좀 하시지 왜 그대로 두셨데? 바닥은 또 왜 그대로 두시고? 근처에 오피스텔들은 다 풀옵션인거 알죠? 여기 전세값이 낮은 것도 아니고."
"........"
"뚝방길 홍차가게, 뜰" 에서 먹은 가든티세트
집을 보고 온 것으로 보이는 30~40대 여성 두 명이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부동산으로 들어왔다. 역시 남편과 눈이 마주치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주인 되시는 분이세요? 싱크대랑 바닥 좀 어떻게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틈이 벌어져있어서, 그거 안보이셨어요?"
답을 들으려고 하는 질문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
"엄마는 어떻게 이런 집을.."
사장님이 거들어주셨다.
"전세같은 경우는 보통 세입자가 도배랑 장판은 해요. 월세는 주인이 해줘도. 또 여기가 동네에 비해 전세가 싸잖아요."
"나는 인덕션만 쓰거든요. 인덕션쓰려면 싱크대 바꿔야하는데, 사장님 인덕션 안써요?"
"네, 인덕션 한 번도 안 써봤습니다. 비싸서."
"안쓰시는구나.... 하아......나 되게 집 깔끔하게 쓰는 사람이에요. 강남 살 때부터 그렇게 살았어."
"........"
"블라인드랑 하수구쪽 구멍에서 벌레 나올 것 같아, 거기도 막아야 하고요. 말할 수록 답답하네."
사실 들을 수록 답답했다. 안방만한 공간에 말하고 싶은 사람 셋과 분위기상 듣는 역할을 해야할 것 같은 사람 셋이 그냥저냥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 저, 제가 장사하는 사람이라 좀 바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공사한 거고요. 이 정도에 맞춰서 살아주실 분을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쎈척 말은 했지만 좀 쫄았었다고 후에 남편이 고백했다
.....적막하던 중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진짜, 사실 이런데 살 사람이 아니야. 우리 둘째 아이는 집이 두 채에요. 00아파트(그 지역 완전대장아파트) 살아. 돈 냄새를 잘 맡는 애야. 에휴, 내가 뭐 여기서 오래 살겠어? 잠깐 사는거지 뭐."
싸인도 하고 도장까지 찍기 전에 입금을 받아야 해서 가까운 은행으로 가있던 딸들이 엄마 본인이 와야한다고 연락이 와서 계약자분도 프라다장지갑을 들고 은행으로 가셨다.
뚝방길 홍차가게, 뜰
기운이 빠졌다.
엄청 깐깐하시네. 이런데 살 사람이 아니면 이런데 살지를 말...... 아니, 나도 인생 중반 너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험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하자. 그러게, 내가 싱크대 상판이랑 문짝정도는 바꾸자고 했잖아? 굳이 박박 닦으면 깨끗하다고 말 한 사람 누규? 화장실이랑 싱크대는 집의 얼굴이라고.
화장실 A급으로 했으니 됐다고? 화장실은 화장실이고 부엌은 부엌이지. 하긴 뭐 나도 1인가구나 젊은 사람이면 굳이 부엌 쓰겠나 하며 더 주장하지 않았지.
돈은 적게 쓰고 부자되고 싶기도 했고, 자제값이 오르기도 해서 싱크대와 장판을 안하고 샤시와 문교체, 화장실, 벽지 정도 하는데 800만원이 들었(15평)지만 그닥 티가 안났나보다.
서로 도장을 꽉꽉 눌러 찍고 입금했다는 계약금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날의 일정을 마무리한 뒤 팽 하고 프라다 장지갑 휘날리며 돌아선 여사님의 뒷모습에 애쓴다고 썼지만 아무 티도 내지 못한 우리의 한숨은 조용한 BGM이 되었다.
시절이 그냥 왔다 그냥 가는 것 같지만 뭔가 각오를 하고 다가오듯 시절은 풍파를 주기도 하고 운을 주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온 시절은 풍파일까 운일까. 아직 그런걸 헤아릴 연식이 안되어 이렇게 어리벙벙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이런 데'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가 판단하는 걸까. 인생의 어떤 질곡끝에 이런 데서 살 결심을 하는 걸까.
나도 결혼할 때 프라다 가방 샀는데, 그것도 두 개 씩이나. 지갑 아니고 가방으로 샀었는데, 나도 프라다가방 들고 갈 걸 그랬나. 나는 프라다가방이 어울리는 곳에 살았었나. 지금은 어울리나. 프라다가방이 어울리려면 어디에 살아야 하는걸까.
프라다 지갑을 들고 오신 사모님이 강남에 살았던 시절은 찬란하고 아름답고 꿈같았을까. 지금의 삶은 현실이고 지난하고 힘들까.
우리도 노후에 잘 살살아보겠다고 이렇게 고고군분투하건데, 고군분투와 상관없이 시절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흘러왔다 흘러간다. 인생에 흔적을 남기고.
어디에 살든 좀 여유로웠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프라다 가방이 어울리는데서 여유롭게 살고 싶네. 솔직한 맘이 그랬다. 지금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