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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25. 2024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물방울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갤러리같은 신창여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예상치 못했던 수묵화의 깊은 여운을 배고픔으로 바꿔담아 우리는 숙소 근처 맛집으로 검색한 "풍차와 전복"이라는 곳에서 음식을 포장해와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늘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가격도 고려해야하고 아이들이 즐길 부대시설들이 중요해서 리조트 중심으로 검색하곤 했는데 이번엔 어른들끼리의 여행이기 때문에 인스타감성 충만한 스테이폴리오 느낌의 숙소를 고르고 골라 힘들게 예약했다. 6월 여행을 위해 3월초부터 예약문의를 넣었는데 주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불가능하거나 연박이 어려운 곳이 꽤 있었다.  


다행히 우선순위로 가고싶었던 숙소를 일정 앞부분에 예약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제주 서부에 있는 신창여관, 돌담집이 멋지기도 하다. 이런 집이 있는 동네를 스쳐만 갔지 투숙해 본 것은 처음. 너무 설렜다.




내부도 갤러리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나무색과 돌색으로 채워진 공간은 제주스러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주었고, 거실에서 폴딩도어를 열면 땅과 대나무가 보여 마음이 차분해졌고, 외부엔 자쿠지가 있어 물을 채워 몸을 담그면 신나는 여행 중에도 쌓이는 피로를 풀어주었다. 어른 여행의 아주 막대한 장점!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김창열미술관으로 향했다.

물방울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그의 그림들을 몰아서 보고싶었달까. 육지에서는 특별전에 한 두점 정도, 작은 사이즈의 그림밖엔 볼 수 없어서 그의 인생의 작품들이 궁금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는 본인이 기증하신 220여점이 소장되어 있고, 도슨트님의 설명으로는 3-4개월마다 전시작을 바꾸신다고 했다.





입구에서도 물방울의 느낌이 찬란하다. 6월 제주의 맑은 날씨와 어우러져 너무 멋있는 풍경이었다. 이 미술관은 2016년에 개관해서인지 깨끗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미술관 또한 그의 작품의 일부인 것 같은 기분.






김창열의 첫 물방울 그림이다.

별안간 침잠과 고독에 빠지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는 전쟁의 기억들을 떠올리곤 했고, 물방울들이 망자들을 위한 진혼곡을 대신하도록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였고, 불교에서 정화의식을 거행할 때 나쁜 영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는 행위와 거의 마찬가지였다."


그의 물방울의 이유이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본다.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 그림들이 2차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어쩜 그런 입체감이 가능할까.








천고가 상당히 높아서 작품들을 여러 각도와 방향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다른 작품들과의 조화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셔널갤러리명화전>을 하고 있었는데 역사를 대표하는 웅장하고 멋진 작품들을 좁은 공간에 때려넣고, 인원제한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감상이고 뭐고 쓸려가듯 봐야했던,


이건 작품에 대한 예의도 작가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았던 기분을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캡션마저 바닥에 붙어 있어서 고개를 내렸다 올렸다하며 머리도 아팠었는데.


김창열미술관에서는 충분히 머물고 충분히 감상하며 관람객들이 조심스럽게 옮기는 발자국 소리도 품의 일부인 것 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은 <물방울>그림이나오기 전의 그림이다. 회화의 완성 없이 추상으로 진입할 수는 없는듯 하다.

대가가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전 단계를 완성하고 넘어가는 것이지 이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꺾는 것이 아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의 장수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피카소 같은 경우도 구상과 추상, 큐비즘까지 다 완성했으니 말이다.


나의 세계가 온 세계에 다 들어있다면.








위 작품은 모래 위에 물방울을 표현한 것이다. 모래 위엔 물방울이 맺힐 수가 없는데, 예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자칫 특징이 심히 강한 예술가들에게 그의 발전이나 변화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창열의 작품을 보며 그 편견이 깨져갔다.

그의 물방울은 캔버스위에서, 한자위에서, 모래 위에서 등 다양한 배경과 모습으로 변주해갔다.

예술의 가능성은 무한한 것이었다.


게다가




작품의 옆면에도 그의 사인이 들어있어 작품마다 들어있는 그의 사인감성도 엿볼 수 있다.


내부의 작품들을 감상한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경사로로 이어져있어서 이동하기 편했다.




약간 무서워보이긴 하지만, 붓을 들고 있는 김창열화백의 동생이 있고, 뒤쪽으로는 그의 수목장도 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풍경도 너무 좋은 곳이었다.


정기적으로 전시작품을 바꾼다는 도슨트님의 말씀때문에 친구들과

"우리 3-4달에 한 번, 1박2일 정도로라도 왔다갈까?"

라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농담인 듯 했지만 진심이었던 이 말은 실현되어 지난 2023년 12월말에 한 번 더 제주에 다녀왔다.


최우선순위는 당연히 김창열미술관 재방문이었다. 전시품이 바뀐 것도 궁금했고, 다녀와서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보니 영상관을 오픈했다고 해서 더더욱 궁금했다.




굴곡진 화면에 그의 물방울 작품들이 나타났다. 물방울이었다가 물방울들이었다가, 그의 작품은 후대에 미디어로 재탄생하며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라는 말에 내 마음의 무게를 더 싣는다.


유한한 그의 작품은 후대에 와서는 미디어로 영화로 무한히 재탄생하고, 재탄생하면서도 원작을 목격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커질 것이다.




겨울의 전시는 <서정적 실험>과 <김창열과 뉴욕>이었다.  




그의 물방울 그림은 뉴욕에 상륙한 팝아트의 영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천재성이 물방울을 그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러 실험과 관찰을 통해 그의 작품이 탄생했던 것이다. 천재가 노력까지하면 나 같이 보통 사람은 그 감동이 감당이 안됩니다





오죽하면,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거다.


저런 나무판엔 색을 입히기도 힘들텐데

색 뿐아니라 물방울까지.


감동을 지나 명상을 해야할 것 같다. 이젠.




조각작품도 있는 줄 몰랐는데, 어느 비엔날레에 출품하셨던 작품이라고 한다.


역시 한 작가에 대해 종단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는 것은 너무 소중하다. 내가 받은 감동의 기원을 찾고도 싶고, 내가 목격한 한 지점에서는 그가 그 이후로 어떻게 뻗어갔을까 예상하고 싶기도 하고.


규모에서나 컬렉션에서나 주변풍경에서나

큰 감동을 주었던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도보로 3-4분거리에 저지리예술마을이 있고 그곳엔 제주현대미술관도 있으니 여유있게 하루를 '예술의 날'로 잡아 예술의 깊음을 만끽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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