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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ul 15. 2020

번외1. 여자와 남자의 심한 평행선

6. 부부의 여행 시리즈에 앞서

                                                                             

작년 가을이 오던 여름,

내 입속에 목돈을 들여 충치치료를 했다. 그동안 통증이 없었으니 상황이 이런지 몰랐던거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2년에 한번 있는 구강검진에 가서야 알았다. 의사는 통증까지 있었으면 신경치료였다고 하셨다. 신경치료까진 아니지만 총체적 난국의 내 입속을 치료받았다.


제주도 여행 경비 수준의 돈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벤트하는 항공권 소식은 매일 날아 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입 속에 완전 목돈이 들어 앉으셨다.



아침에 나 치과가야 한다고 서둘러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아들이 치과 치료  받고 먹으라며 주머니에서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비타민을 쥐어주었다. 눈물 날 뻔 했다.


돈을 이렇게 해먹었으니 남편한테 여행가잔 말도 못하겠고, 그래도 하늘 높은 가을이 오고 있는데 여행을 안가도 되는건가 싶고.

 여행을 꿈꾸다가 내 입 속에 여행비를 처넣는 바람에 비행기는 커녕 시외버스도 못타게 된 여행의 가지가지. 내 머릿속에 살아 숨쉬는 여행 계획은 대략 이러했다.


십전대보탕 한입 드시고요


1. 독일 여행


작년 추석이 있는 주간 화요일부터 그 다음 화요일까지 아시아나 프랑크푸르트 직항이 90만원대 초반이었고, 어느 날은 89만원에도 검색되었다. 프랑크푸르크가 유럽으로 가는 허브도시라 그런지 유럽의 도시들 중에선 비행기표가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했다.


1일차 프랑크푸르트 도착

2일차 프랑크푸르트 돌아보기

3일차 본에서 베토벤의 흔적 따라가기

4일차 기차 3시간타고 뮌스터에서 시인 허수경을 생각하기

5일차 렌터카로 니체의 고향 뢰켄에 가기

6일차 뉘른베르크 근처 플레이모빌펀파크에서 놀기

7일차 뮌헨의 슈바빙에서 전혜린의 흔적찾기

8일차 뮌헨 구경 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서 렌터카 반납

9일차 한국으로 귀국


이미 한인민박도 알아놨고 예산도 거의 짜놓은 상태고, 지금도 머릿속에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 집행될 지 모르고 그 돈을 어느 천년에 모을 수 있을지가 문제.


2. 제주1년살기


요즘은 외국은 물론이고 제주도 뿐 아니라 다른 국내 지역들도 한달살기가 대세인데 한 달이면 회사를 관두기도 뭐하고 관두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2주는 아쉽고.

사실 2주라도 가면 너무 좋지만, 만약 간다고 해도 2주간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것도 고역이고 남편은 나와 아이 둘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눈치다.

그런척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1년살기!


제주엔 전세가 아닌 연세(1년세)가 흔하다고 하니 500만원 정도면 네 식구 살 만한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여기 집을 월세놓고 보증금으로 제주에서 연세집 얻고 여기 월세를 생활비로 하고,

1년 사는거니까 첫째는 전학시키면 되고 둘째는 유치원 다니면 되고.

둘 다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면 난 제주에서 취직할 수 있고!

나는 "내가 벌게 자기가 살림해!"

그러면 남편은 오랫동안 바래 왔던 전업주부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내 스스로 이 아이디어에 넘 감동해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남편이 막 열불을 참으면서


"내가 자기 2주살기 한달살기..이런얘기 할때도 그냥 참았어. 독일얘기할때도 아.. 내가 밖에서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이러나, 하면서 그냥 참았어. 뭐 아이디어는 떠오를 수 있는거니까. 근데 1년이라니 이건 진짜 너무하지 않아? 지금 자기는 사는게 여유로워서 이런 생각이 막 떠오르나 본데 사는거에 바빠서 발버둥치고 살면 이런거 생각할 시간이 없거든. 머리에서 이제 여행을 지워. 자꾸 레벨업하지말고. 나 진짜 힘들거든. 먹고 사는거 말곤 생각을 하지마"


이러셨다.


그러나 내가 저런얘기 한두번 듣는게 아니다. 그냥 얘기 할 타이밍을 잘못 잡았구나 싶었을 뿐 내 아이디어를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약간 격앙된 남편에게

"알았어 흥분하지마. 내 추진력을 통장으로 보여줄게."

라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 보여줘."


추진력 당겨보려했는데 내 이빨이 말썽.


3. 서울살기


난 같은 동네에 25년 넘게 살다보니 좀 답답한 느낌이었다. 직장도 친정도 교회도 이 동네라서, 특히 작년엔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컸었다. 사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신도시를 베드타운이라고 배웠고, 나는 베드타운이라는 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다 보내보니 여기는 다이내믹보다는 안정과 편리함이 주가 된 도시였기에 참 편하고 좋았다.

거기까지였다.

지금도 그렇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주변 덕에 내 참조틀이 높아졌나 싶기도 하고, 내 주제에 비해 너무 경제적 문화적으로 좋은 것들을 누리게 되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나도 그 대열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서울이 만만하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지만 한 동네에서만 25년 살아온 나의 몸부림이랄까.

 그냥 익숙한 곳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하면서 신도시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새 도시 남자가 다 되어 뭔가 구획이 없고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는 별로란다.

언제부터 신도시살았다고.

버거킹이랑 수제버거 구분도 못하던 사람이.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일상을 여행처럼 그렇게 주거지를 옮겨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막상 실천해보면 일상은 일상답게 여행은 여행답게 보내는게 제일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꿈꾸듯 살아보고픈 열망이 1g정도 있는 아직은 젊은 지금은,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은 더 여행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독일여행에 가지 못했고,

대신 파리여행을 갔고.

그러나 독일은 언젠가 꼭 가고 싶고.

제주 1년살기는 사실상 철회한 상태이고.

서울살기는 남편도 나도 꿈처럼 갖고 있는 환상같은 것이다.

서울이 고향인 나와 남편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음은 열망인데 돈이 폭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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