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포털사이트엔 ‘싸이월드 폐업’이 실검 1위였다. 이미 전에도 싸이월드가 먹통이라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었기 때문에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고는 있었다. 싸이월드가 다른 포털사이트에 밀려 전성기를 약간 벗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미니홈피와 블로그로 네이버 못지않게 활발했을 때 나는 싸이 블로거로 나의 결혼 출산 육아기를 올렸었고, 그 전엔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내가 싸이 블로거였던 시절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과정과정마다 과하다 싶을 만큼 세세하게 포스팅 했고, 그 덕에 네이트 메인에도 몇 번 올랐었다. 파워블로거는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방문객이 늘어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당시에도 역시 네이버가 굳건한 1위였지만 네이버에는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한 스쳐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짐작에 나는 싸이월드에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싸이월드는 정보획득 보다는 서로의 일촌을 기반으로 한 나름의 친목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전체공개가 두렵지 않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블로그를 하기 전, 미니홈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블로그는 낯설었던 시절에 나는 내 개인 페이지를 클럽에 만들었었다. 할 말이 많아 미니홈피 대신 클럽을 했고, 친구들의 가입을 독려했고,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대학원 졸업을 할 때까지 클럽으로 다른 SNS를 대신했다. 대부분 친한 친구들이 가입을 했었지만 간혹 낯선 사람이 가입을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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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소재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잡대인 내 출신 대학을 나는 재수까지 해서 들어갔고, 심한 좌절감과 자괴감을 안고 입학하던 그 날부터 내 소원은 빨리 졸업하는 것이었다. 삼수를 할 용기도 없었고 귀찮기도 했고, 다른 잘하는 것이 없으니 배우고 싶은거나 배워서 빨리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재수를 했으니까 동기들은 20살 동생, 선배들은 21살 동갑이었다.
학교의 수준이 그닥 높지 않다는 것은 재수생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과 정원이 50명 정도 였는데 재수생은 네 명 뿐이었다. 그러니까 재수까지 해서 갈 학교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 아니 내 손으로 쓰기 좀 민망하지만 나는 좀 예쁜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안 먹히는 얼굴이었는데 유독 그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그렇게 먹혔다. 특히 나와 동갑인 한 학번 위의 선배들이 그렇게 내 주위에서 얼쩡거렸다. 남자들의 경우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 것이 보통이라 내가 입학했을 때 학교에 남아있는 남자선배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 별로 없는 남자선배들이 밥 먹었냐고, 언제 집에 가냐고, 다음 날 수업은 몇 시냐고 묻고 그랬던 기억이다.
밥 먹었냐길래 먹었다고 했고, 다음 날 수업은 없기에 없다고 했다. 철벽을 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학교도 아니었고, 마음 붙일 생각도 없고, 동기들은…… 착하긴 한데 좀 구렸다. 오죽하면 전공수업 들어오시는 교수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왜 이리 옷을 못 입냐고 핀잔을 줄 정도.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좀 착한데 촌스럽고 그래서 좋은데 좀 구리고.
그 구린 아이들 사이의 군계일학이랄까. 눈에 띄는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우리 과 학생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