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말이 좀 늦게 트였다. 26개월까지 엄마아빠어어어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다 했다. 딸은 20개월에 이미 문장발화가 가능하여 천재구나, 언어치료사 집안의 명예다 싶었다. 그런데 아들은......언어치료사인 나로서는 좀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걱정이 고조되던 30개월 무렵 다행히 말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폭발적으로 는 것은 좋았는데 용량 대비 요구가 넘치다 보니 못 알아듣겠는 말이 태반이었다. 그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베스트5를 뽑아본다.
ep.1 두 아이의 저녁시간
첫째인 딸아이는 먼저 밥을 다 먹고 놀고 있었고 나는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데 이 놈은 입에 밥이 한가득 있는데도 또 퍼서 또 넣었다. 과하면 뱉을 것 같아서 앞에 손을 대주면서 욕심내지 말고 먹어라, 어차피 다 니꺼다 했더니 아들- 다다다다다다떠 나- 뭐라고? 아들-다다다다다다떠 나-(들리는 대로) 다다다다떠? 그랬더니 딸아이가 딸- 다 삼킬수 있데 나-다 삼킬 수 있다고 말한거야? 아들- 응 (우걱우걱 다 씹어삼킴) 나- 딸님 대박이다..
ep2. 두 아이의 양치시간
보통 딸아이 먼저 세수하고 양치시킨다. 딸은 내가 해주는건 아니어도 옆에 서 있으라고 해가지고 늘 옆에 서 있는데 아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아들- 차떠더더이차더 나- 입에 있는거 다 삼키고 말해 아들- 알떠, (다 삼킨 후)차떠더더이차더 나- (진심 혼잣말)아직도 못 알아듣게 말하냐 쟤는... 딸- 차가운 보리차 달라잖아. 아휴 왜 못 알아 듣는거야 대체!! 나- 아들, 차가운 보리차달라고? 아들- (해맑)어 나- 딸, 너는 어째 그 말이 그렇게 들리냐.. (언어치료사는 너인듯ㅋㅋㅋㅋ)
ep3. 냉장고 앞에서
아들- (컵을 나에게 주며)아니아니!! 아니!!!! 나- 아니? 컵 엄마 가지라고? 아들- 아니아니!!!아니아니!!! 나- 뭐가 아니야.. 하이고 참.. 딸-(저 멀리서 듣다가) 많이 달래, 물 많~~~이 달라고~ 나- (아들에게) 물 많이 달라고? 아들- 어!!(서러웠다는 듯이)엉엉ㅠㅠ (와..이 말이 그 말이여? 어떻게 알아들을 수가 있는 걸까요)
ep4. 베란다에서
아들이 베란다를 가리키며 아들- 엄마 아또띠 아또디!! 아또띠더!!! 나- (이미 한 두 번이 아니라 외계어를 하면 빨리 지쳐감)아또띠는 또 뭐다냐... 아또띠? 니가 가리켜봐 뭐?? (베란다엔 택배박스들이 있고, 잡동사니들의 창고이지 아이들 장난감거리는 없었다) 아들- 아또띠더!!아또띠!!!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아들놈도 짜증게이지가 올라갔다. 내가 여기에 아들의 말을 한 두 번 반복해서 써서 그렇지, 사실은 이 외계어를 너댓번씩 반복했다. 나-(제발 도와줘) 딸, 쟤가 뭐라카는거야? 딸- 청소기 달래 청소기~ 나- (헉!!) 청소기 달라고? 아들-(다시 북받쳐오르며) 어! 아또띠더!!(청소기줘) 엉엉ㅠㅠ 하아....;;; 우리 딸램 없었으면 의사소통 어쩔뻔..ㅠㅠ
ep5. 딸님은 통역AI인가
인형들 싣고 다니는 장난감유모차를 갖고 놀던 아들 아들- 엄마 이더떠떠떠떠.. 히임.. 나- (쟤 또 시작이군. 바로)딸! 잘 듣고 통역좀 해줘! 아들, 누나한테 말해! 아들- 운나(누나) 이더떠떠떠떠.. 히임.. 딸- 유모차에 안전벨트 채워달래. 나-뭐? 정말? 아들! 안전벨트 해달라고? 아들- 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신기하다. 다행히 아들은 점진적으로 발음도 좋아져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래도 누나랑 같이 놀다보니 더 섬세한 말도 할 줄 안다고 한다.
작년 말, 어린이집에 면담을 갔었다. 선생님께서 보통 아이들끼리 충돌이 일어나면 쌍방의 의견을 듣고 서로 "미안해", "괜찮아. 용서할께"라는 말을 하고 안아주도록 하는데, 우리 아들은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해서 선생님이 중재하시다가 웃음이 터지셨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남아는 처음이었다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