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도 좋아하고(산후 우울을 독서로 극복한 케이스, 2013년부터 매년 50권정도 읽으며 블로그에 독후감기록 중_자랑), 지금은 쓰는 것도 좋아한다. 책이 주는 배움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경험과 여행, 관찰과 멍 때림에서 오는 배움도 책 이상이라고 생각한다.책에만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읽기도 중요하지만 느끼고 듣고 놀고 만져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동질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랄까 계급 문화랄까 양반 선비문화(?) 같은 것, 그런 것들 때문에 그 어떤 도덕적인 행위보다 책 읽는 것을 더 높은 수준의 행위로 인식하고, 이것이 도덕+윤리적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서"라는 행위는 많은 행위보다 우위에 놓인다.
예를 들면
"오구오구 우리 딸 책 읽어? 오구오구 대단해~"
"동생 책 읽으니 심부름은 니가 해!"
이런 식으로.
책 읽는 일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책 읽는 게 중요한 만큼 블럭 놀이나 자석 놀이, 흙 놀이, 놀이터에서 구르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독서교육 철학은
"쓸데없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독자의 최고의 권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권리"
이 두 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재울 때를 제외하고는 책 읽어주지 않고, "책 읽어라"라고 말한 적도 없다.
이런 철학에 흔들릴 때가 사실 더 많았다. 수준 있는 활동들이 사실은 독후 활동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고 지금처럼 <그림책 육아>라는 말이 고유명사처럼 언급될 때면 내가 고집하는 "쓸데없이 재밌는 독서"를 철회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이런 흔들리는 마음에 대해서는 차차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애들이 너무 생각이 없고, 생각을 하긴 하겠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좀 과격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슬슬 나도 줄거리를 말하게 하고, 등장인물이라도 기억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교훈이나 깨달음은..... 이런 것들에 대해 갈등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 중이다. 특히 첫째 아이는.
어느 날 첫째(만 6세 2개월 때)가 책을 만들겠다며 폼을 잡고는 자기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다. 책? 얼씨구?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아이가 책을 읽고 느낌이나 줄거리 정도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수준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째의 작품(?)은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적절한 그림을 그리고(바닥에 쏟은 거라던지 넘어진 아이의 표정, 몸에 묻은 모습) 배치하는 창작을 했다.
내용은 앞 뒤가 안 맞다. 조사 사용에 오류가 있어 안맞는 것 같기도 하고, 도둑이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이야기인지 도둑이 여자를 감옥에 가둔 건지.하지만 나는 솔직히 엄청 감격했다.
이야기의 계기 사건이 되었던 '쏟았다'는 에피소드가 뒤에 다시 등장하며 뭔가 마무리 구실을 하는 것이 훌륭했다는 생각:)
또 하나,
이거 너무너무너무 재밌지(웃기지)않나요?:)
이런 에피소드는 어디서 경험을 한 건지, 어떻게 생각한 건지 창작의 계기와 의도를 묻는 질문에 그냥 자기가 생각한 거라고 했다. 그림에 눈썹으로 표정을 표현한 건 너무 귀엽고.
독후감을 말하거나 쓰지 못해도 그냥 "놀이로서의 책", "놀이로서의 책읽기"를 나는 계속 고집했을 것이다. 독후활동이나 질문에 대답하기는 솔직히 내가 귀찮기도 했고. 활동하면서 나오는 쓰레기나 뒷정리는 아이들을 시켜도 결국 내 몫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므로.
재구성을 넘어서 창작을 한 우리 첫째.
(그림)책은 놀잇감이다!
그림을 그리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이렇게 만화처럼, 그림책처럼, 일기처럼 중요한 일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한다. 엄마로서는 아이의 기록들을 보관하고 싶기에 종합장이나 스케치북에 일관적으로 해주면 좋겠는데, 사실 아이는 이면지나 책표지, 박스에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언제까지 나의 이 철학(이라고 쓰고 고집이라 읽는)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고집을 지켜온 것에 대한 뿌듯함을 누리고 싶다.
큰 격려다.아직까지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책을 읽고 보고 만지는 모든 것들이 놀이처럼 장난처럼 재미있는 것으로 아이의 어느 부분에다 스며들어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