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못 잡고 있는데 안 잡는 중
나는 독서애호가이다. 책 읽기 좋아하고, 책 읽은 느낌을 말하고 적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은 뒤로 좋아하게 된 것이 독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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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도 책은 그저 놀이감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책을 읽어주고 나서 느낀점을 말하게 한다던지, 내용을 간추려 보라고 하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니까 쓸데없이 재미있는 것이 '책 읽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 먹은 나의 의지를 내가 칭찬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나의 그 의지는 과연 옳은 의지였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온라인 개학이었어도 일주일에 한 번 씩은 등교하는 날이 있어서 나머지 4일 동안 해야하는 학습지를 받아오곤 하는데, 동화 읽어주는 유튜브영상 보고 내용에 대한 문제풀기, 느낀점 쓰기가 국어 학습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방학 때는 독서록 쓰기도 있었다.
"이 동화 듣고 느낀점이 뭐야?"
"느낀점?"
"어, 뭘 느꼈어?"
"느낀점이 무슨 뜻이야?"
"(앗.....) 음... 기분이 어떠냐고, 이 동화 영상 보고 어떤 생각을 했어?"
"동화 영상은 재미없고 터닝메카드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고ㅠㅠ) 동화 내용이 어땠어?"
"재미없었지. 근데 내가 뭘 느껴야 돼?"
이런 식이었다.
아무래도 동화책은 책으로 읽었기 때문에 별 다른 영상없이 책만 읽어주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집에 있는 책이면 책으로 읽게 하기도 하고, 아이 옆에 앉아 아이의 집중력을 부여 잡아주며 영상을 같이 보고 느낀점을 말하고 쓰게 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무슨 기분일 것 같은지, 다음엔 무슨 내용이 쓰여지면 좋겠는지, 네가 주인공의 친구라면? 등등..
학교에 제출해야하는 숙제이기 때문에, 대면 수행평가가 어려운 상황이니 학습지 하나하나가 참 신경쓰였다. 지금도 신경쓰는 중이다. 겨우 1학년의 수행평가에 입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청약에 당첨되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이 동네에서 계속 살건데, 딸에 대한 선생님의 기록은 이 학교에 살아있을 거라서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독서록은 아직 1학년이라 그림으로 대신해도 되는데 그림만 업로드하기가 뭐해서 아이에게 느낀점을 또 물어봤는데
인어공주를 읽고 "인어공주가 있다는게 신기하다."
호랑이와 곶감을 읽고 "호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니 신기하다."
혹부리 영감을 읽고 "얼굴에 혹이 난다니 신기하다."
역시 이런 식이었다.
답답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의지. 책은 놀이감, 책 읽기는 쓸데없이 재미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나의 굳은 철학 때문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보내 준 학습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것이 힘들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건지, 무슨 생각을 하며 읽는건지, 그림만 보고 있는건지, 글씨는 다 읽고 있는건지... 모든 것이 궁금하고, 궁금해서 답답하다. 학교에서 내준 학습지를 할 때 전혀 다른 세상의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아이의 이해력을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괜찮은 걸까. 지금이라도 나의 의지를 철회하고 줄거리를 간추리고 느낀점을 말하고 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고학년을 앞둔 3학년 쯤 부터 해도 되지 않을까. '온전히 누리기만 해도 되는 독서'가 허락되는 시기는 일부러 떼어놓지 않으면 20살이 될 때 까지는 아예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딸은 책을 만든다.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니까 많이 그리고, 그려놓은 그림이 많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오는 손님들은 딸의 그림들을 보고 "잘 그린다"고 칭찬한다.
아이가 만들어놓은 책을 보고 생각했다. 딸 아이가 자주 보고, 자주 봐야 하는 책들이 이런 것들이 되었구나. 앞선 글(링크되어 있는)에서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이라고 하기는 좀 어거지이긴 하지만)을 만들었다면 학생이 된 지금은 학습적인 내용이나 척도를 나타낸 그림이다. 어른으로서는 순수함을 조금 잃은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많이 대하는 것, 배워가야 하는 것들이니 자신이 성장해가는 과정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쓸데없이 재미있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욕심이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없이 아이에게 책은 그저 놀잇감이길 바랐는데 기대치 못한 아이의 창작 활동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더 큰 기대감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서에 정답은 없다. 방향도 없다. 아이가 가는 곳이 방향이고 도달하는 곳이 정답이다. 학습지가 올 때마다 나의 마음은 번뇌하고 방황한다. 이제 국어문제집도 풀게 해야 하고, 공교육에서 원하는 답을 도출하는 연습도 해야한다. 본격적으로 '교육'과 콜라보해야하는 '독서'가 부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스며들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그 과정에 잘 적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