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난 예뻐~"라고 말해서 진짜 기가 막혀 웃었다. 넓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뜯어봐도 예쁜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말이 너무 예쁘긴 했다. 첫째에게 향하는 관심에 비해 둘째인 아들은 그저 웃고 있으면 나도 웃고, 울어도 설마 24시간 울겠나 싶어 웃고, 웃거나 울거나 얼굴이 찌그러지는 게(?) 너무 귀여워서 또 웃고, 정말 둘째는 발로 키운다더니 발도 안 쓰고 키우다가 어느 날 아들이 18개월이 되었다.
누나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같이 보내려고 계획했는데 가만 보니 말을 못하는 거라. "어어~, 맘마, 빵빵" 정도 말고는 하는 말이 없었고, 출현하지 않은 음소(말소리)도 많았다. 걱정이 밀려왔다. /ㄱ, ㄴ, ㄷ/이 들어간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아들이 하는 몸짓과 손짓으로 대부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신생아 시절부터 좀 예민한 편이었던 딸에 비해 아들은 딱히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는 소통의 답답함이 없었다.
"왜 말이 늦는 걸까요?"라는 물음에 나는
1. 보호자가 아동이 요구하기 전에 다 들어줘서
2. 다른 장애로 인한 언어발달의 문제
3.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울음, 제스처, 떼쓰기로 의사표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도로 대답해왔는데 하나의 보기가 더 생겼다.
4. 모른다
우리 부부의 맞벌이로 인해 친정 엄마와 내가 반반 정도로 육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교육학과 출신으로 아이들에게 쏟는 열정은 나보다 더한 분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도 하거니와 영상 등의 쉬운 방법(?)으로 육아시간을 떼우는 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둘째의 말은 느렸다. 어린이집에 갔을 때도 또래보다 늦은 편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첫째가 42개월, 둘째가 21개월 되었을 때 아이에게 언어검사를 해보았다. 이전에 내가 셀 수도 없이 많이 해왔던 검사였는데 막상 딸을 앞에 두고 해보니 검사도구의 한계랄까 조금 답답한 부분이 보였다. 간단한 편에 속하는 표준화된 검사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아빠도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이런 비주얼의 할아버지는 아니다. 그림책에 나올 법한 도사님의 모습이라 우리 딸도 "산신령"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른쪽과 같은 데스크탑 컴퓨터는 사실 가정에서는 잘 안쓸 것 같다. 우리 집도 노트북 쓴다. 딸은 모른다고 했다.
왼쪽 그림을 보면 나는 "바다"보다는 "파도"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 딸도 "파도치는 바다"라고 대답했다. 요즘 종이신문은 잘 안 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딸은 "책"이라고 대답했고, 나중에 "신문"이라고 알려줬는데 당시 42개월이었던 딸은 신문이 뭔지 몰랐다.
"첼로"같지 않은지?
혹시나 이 검사 도구의 개정판이 있는지 모르겠다. 좀 더 현실적이고 정확해졌는지. 아니라면 좀 더 표준화된 검사도구에 걸맞게 개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검사에 따른 아이의 언어 수준을 너무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언어치료사이긴 하지만 평균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아이일 경우에는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지만 목표를 "O세 수준으로"라고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 것 같다.
21개월 아들은 보호자의 문답으로 내가 나를 검사해보았는데, 이미 '아니오'가 시작되었다.
16-17개월
-매주 새로운 낱말을 말한다
-말하는 억양이 문장처럼 들린다
18-19개월
-자발적으로 사물의 이름을 말한다
-3-4음절로 된 새로운 낱말을 비슷한 발음으로 모방한다
20-21개월
-말할 수 있는 낱말이 적어도 10~20개가 있다
22-23개월
-신체적 욕구에 대해 말로 표현한다(배고파 등)
-5개 이상의 일상적인 동사를 사용할 수 있다
-두 낱말 문장에서 부정어를 사용한다(안 먹어 등)
이미 16-17개월 문항부터 '아니오'가 시작되었고, 다 적을 수는 없어 인상적인 문항만 적어보았다. 아들은 15개월 수준이었던 것이다. 아득한 마음이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엄마와 누나, 외할머니까지 계시는 언어적 환경이 앞의 글에서 처럼, 그냥 틀어놓은 "샹숑"으로 들리나 싶었다.
찬찬히 아이를 뜯어보았다. 비록 말이 늦긴 했지만 다른 문제로 인함인가 싶은 징후는 일단 보이지 않았고, 어린이집에서도 별 다른 언급이 없었다. 말이 늦는 것으로 인해 과격한 모습이 나타났다면 직접적인 조치를 취했을텐데 답답할 때 발을 구르는 정도라 '좀 더 지켜보자'의 태도를 가졌었다.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사실 복지관으로 찾아오는 아이와 부모님들을 뵐 뿐, 만약 나의 경우라면 어떤 절차를 밟아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그 과정은 나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막막했다. 지켜보긴 했지만 사실상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갔던 보수교육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었다.
검사도구마다 같은 내용에 대한 평가 월령이 다르다. 대명사 사용이 가능한 월령을 어느 검사 도구에서는 19~24개월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검사 도구에서는 30~32개월로 평가한다. 많은 실험과 참고 문헌을 가지고 만든 검사 도구이지만 검사 도구에 따라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영유아기의 언어 발달은 사실 복합적이지 일정한 순서나 통일된 경향성을 찾기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다.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었고, 내 마음만 편하게 먹었지 아들은 "엄마, 아빠, 어어어어~"로 한동안 살다가 24개월을 넘기면서 말이 늘기 시작했다. 26개월 즈음, 친정 엄마가 아들의 세수를 돕는데
"할머니 때문에 옷이 다 젖었잖아." 라고 말해서 엄마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나의 마음은 더 편해졌고 지금은 섬세하고 깐깐한 누나의 비위를 맞춰 드리며 잘 자라고 있다.
이 글을 "아들이 말이 늦 트이긴 했지만 마음 편히 먹고 기다렸더니 괜찮았다."로 맺는 것에는 약간 우려가 있다. 링크해놓은 글 처럼 누나가 말이 빨랐고 언어적 환경에 있다고 해서 말이 자연스럽게 트이고 느는 것만은 아닌 경우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말이 늦었던 아이를 지켜보니 심리적 장벽을 부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위한 스텝을 옮기는 것이 참 무겁고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입장을 갖는 것은 직업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위기'라고 느껴지는 순간일수록 그 어려운 일에 대한 결단이 빠르기를......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