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정 Oct 30. 2020

그렇다면, 나의 아이는..?(1)

언어치료사인 나의 아이는...

 출산직후부터 한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 온 '최측근'이자, '언어치료사'의 자기 아이 언어발달 관찰기.


첫째는 딸이고 2013년 12월에 태어났다. 딸의 성장기를 떠올리면 돌 무렵까지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 역시 출산 후 1년간 3시간 이상 연속으로 자본 적이 거의 없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건가를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잠'이라는 인간의 기본욕구가 해결이 안되니 나는 퀭한 상태로 살았고, 그 상태로 직장에 다녔고, 산후우울을 겪었다. 돌이 지나고 부터 점차적으로 수면시간이 늘어 5-6시간의 통잠이 허락되었고 나도 점차적으로 산후우울이 나아졌다. 그와 동시에 둘째를 임신했다. 아, 자궁의 왕이여...ㅠㅠ


 복직하고 언어치료실에 신규로 들어온 지우(가명)라는 7살의 남자 아이가 있었다. 동반 장애는 없어 보였는데 단어 나열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대화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하고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을 끌어내기 까지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야 했던 아이였다.

 언어 검사 당시, 보통 검사는 그림을 보여주면 그림의 이름(예, 바나나 자전거 등)과 그림이 나타내는 표현(예, 배부르다 뜨겁다 무겁다 등)을 대답해야 하는데 준우는 "애기 때 먹었는데(바나나), 혼자 먹어(배부르다), 여기 검정색(자전거 바퀴를 가리키며)" 등 그림의 핵심보다는 국소적인 부분을 말하거나 정확한 명칭보다는 그림에 대한 말을 했다. 그래서 이거 이름이 뭐지? 라고 물으면 "이렇게 생긴 거"라는 등으로 정확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얘가 두살 터울로 누나가 있거든요. 누나는 20개월 부터 문장으로 말했어요. 여자애라 말도 빠르고 잘 하고 하니까 그렇게 언어적인 환경에 있으면 알아서 말이 트일 줄 알았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머님의 이 말씀을 듣고 솔직히 믿지 않았다. 20개월에 문장을 말하다니. 내가 배우기로는 만 1세에 한 단어, 만 2세에 두 단어(2어절), 만 3세에 세 단어(3어절)말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20개월에 문장발화라니.




 딸의 발달기가 눈에 띄었던 것은 18개월 부터였다. 쫑알쫑알 말도 많아지고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이 뭔가 분명해졌다는 느낌이었다. 21개월 차이로 둘째를 낳았고, 한 달은 또 내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던 중이었는데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날은 딸이 22개월 1주때

 "엄마 아치(같이) 밥 먹어요."

 "함머이(할머니) 아치(같이) 가요." 등의 문장을 말하고

 "엄마하구, 아빠하구, 함머이하구, 암춘(삼촌)하구..."하며 발화길이를 늘리기도 하고

하품하시는 외할머니를 보고

"할머니 졸려요?" 라고 묻기도 했고

우리집에 오셨다가 가셨던 친정엄마가 휴대폰을 놓고 가셔서 다시 오셨다. 놓고 가신 적이 몇 번 있다. 다시 오신 외할머니를 보고

 "할머니 또 휴대폰 놓고 갔어요?"

라고 말해서 나와 엄마 모두 기겁하듯 웃은 적이 있다.

 

 역시 딸이라 그런지 발달 속도는 빛의 속도 같았고 역시 내 딸이구나 싶었다. 지우어머니 말씀이 진짜였구나, 두돌 전에도 문장구사를 다 하는구나. 우의 발달 속도도 내 배가 불러오는 속도만큼 빨랐으면 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그림카드에 대한 이름대기는 곧잘 했지만 그림책을 보고 말하기를 유도하다보면, 그림책의 큰 부분(주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정말?> 의 한 장면 (최숙희 저)

예를 들어, 이런 그림책을 보여주면 내가 원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주로 하는 말은

"친구가 바나나 우유 먹어요."

"친구가 소풍(놀러)갔어요."

등이다. 하지만 우는

 "(구석에 신발을 가리키며)내 신발 크록슨데."

 "여기(바닥) 개미 없어?"

 같이 말이었다. 관찰력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주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주개념도 파악하고 작은 부분에도 관심을 보이면 좋지만 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도 조사사용이 거의 없거나 오류가 많았다.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때도 그랬고, 외국어를 배울 때도 ''언어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면 언어발달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의 누나 덕분에 우 어머니는 우가 늘 언어적 환경에 있었다고 생각하셨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우가 언어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건 논문을 찾아보거나 따로 연구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샹숑이 듣기 좋아서 늘 집에 샹숑을 틀어 놓고 불어가 멋지다고 프랑스드라마를 계속 본다고 불어를 익힐 수 있을까? 그냥 듣기만 한다고 늘까? 비슷한 발음으로 흉내야 낼 수 있겠지만 이게 무슨 뜻이고 어느 때 하는 말인지는 내가 그 언어에 관심이 있고 배우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 입장에서는 우의 엄마과 누나의 대화가 마치 프랑스드라마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에 대해 뭐라고 단정을 할 수가 없었다. 영유아 건강검진에서도 의사로 부터 특별한 소견을 들은바가 없고, 내가 영유아 건강검진 문진표를 보아도 우의 특별함을 필터링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나의 출산일이 가까워져 다음 선생님께 인계했는데, 그 선생님은 오십이 넘으신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라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하지만 선생님도 가끔 안부카톡과 함께 "(아이에 대해)잘 모르겠어요, 답답해요, 어머니가 참 좋으셔서 많이 도와주시는데 어렵네요. 대안학교로 간데요." 등의 우 근황을 알려주셨다.



 내가 둘째가 아들인 것을 알고 부터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누나나 엄마가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아들 본인의 언어발달은 큰 상관관계가 없을 것이다 라는.


 둘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소통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을 때 그 의사에 맞는 반응을 얻는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면 신체발달에 따라 제스처나 언어 등 의사표현의 발달을 이루어가야 할텐데.

 보통 사내아이는 늦고, 모르고, 좀 그렇고.... 그런 고정관념이라기 보다는 그런 팩트 때문에 이미 24개월에 성인급이 되어 나랑 말싸움하고 있는 딸 보다는 뱃 속에 있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를, 아니 낫인 줄도 모를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아들 말입니다ㅠㅠ




이전 05화 네가 오는 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