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나는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할 줄도 몰랐고그런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신여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부엌 근처엔 얼씬도 안 했고, 들락날락 중 들락 조차 안 했었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을 프로페셔널하게 잘했던 것도 아니면서.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하고 나니 집안 살림도 해야겠는데, 청소나 빨래야 딱히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사실 남편이 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끼니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이 좀 민망한 일이긴 했다. 사랑하는 자기에게 냉동식품 녹여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니!
장 보러 마트에 다니다 보면 아기자기한 주방도구에 관심도 많이 가고, 사놓고 보니 사용하고도 싶어서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신 친정엄마와 인터넷의 도움으로 음식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웬 걸,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만든 것이 맛있기까지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셨던 엄마가 내가 닭볶음탕 하는 모습을 보시고 한마디 하셨다.
“그게 음식 하는 사람의 태도냐?”
계량컵이나 계량스푼, 도마도 없이 대충 만드는 걸 보시고 혀를 차셨다.
“다됐어. 드셔 봐.”
“뭐? 벌써? 말도 안 돼.”
드셔 보시고는
“어머, 맛있네? 이게 왜 맛있어? 참 나.”
왜 그러실까. 엄마한테 배운 대로 한 건데.
문제는 첫 번에 성공했다고 그 음식을 또 만들면 두 번째엔 망하는 것이었다. 망해도 굴하지 않고 또 만들었다. 계속하다 보니 손도 빨라지고 요령도 붙고 만들 수 있는 음식도 몇 가지 더 생겼다. 레시피보다는 촉에 의지한 요리였지만 촉도 나름 괜찮지 않았다 싶다. 다행히 남편은 미각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아서 망한 음식도 잘 먹는 편이었다. 맛있으면 더 잘 먹고.
두부조림은 내가 먹어도 띵작이었고 불고기도 양념 사지 않고 직접 만든 건데 단짠이라 그런지 실패가 없었다
비 오는 날엔 부침개, 쉬울 것 같아도 은근 농도 맞추기 힘들고요, 김밥은 요즘 수제김밥(?)이 땡긴다. 좀 맛없고 싱거운 김밥! 발도 없이 벌써 몇 번 만들어 먹었다. 반응 굿!
우리 가족의 식사는 대부분 집밥이었다. 아이 둘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먹는 일에 목돈이 들게 되자 외식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고, 시절이 지금에 이르자 외식은 물론 배달음식도 일단은 중단하고 있다. 대부분 집밥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중이다. 그 덕(?)에 나는 나날이 장금이가 되어, 가끔은 남편이
“나 짤려도 걱정 없겠어. 자기가 식당 하면 대박일 걸. 난 설거지할게.”
라며 나를 칭찬하는 말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인지 속이 뻔한 말을 하곤 한다.
"엄마가 해준 거 정말 맛있어. 할머니가 해주신 것 보다 더 좋아."
와우. 극찬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집보다는 밖으로 돌던 나였다. 지금은 세상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 가족에게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비록 밥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전혀 몰랐던 나의 소질을 드러나게 해 준 가족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