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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Sep 09. 2020

따뜻한  5월, 출근은 재개했지만

 확진자의 증가추세가 한풀 꺾이면서 5월 연휴가 끝난 다음날 부터 업무재개에 들어갔다. 종전에 '40분 수업+10분 상담'으로 이루어지던 시간표는(아, 제 직업은 언어치료사입니다) '40분 수업+10분 상담+20분 환기'로 70분 간격으로 이루어졌다. 시간표 조정하느라 애먹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보니 메인 출입구나 주차장에서 이용자를 데리고 오고 데려다 주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나중에 공익요원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처음 두 주 정도는 조금 정신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일상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게다가 바깥 출입이 더 통제될 수 밖에 없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복지관에 오는 것이 간만의 외출이라며 다소 힘찬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당연하지, 나도 이렇게 흥분되는 걸.


 출근길에 커피를 사들고 한입 쪼옥 들이켰을 때 그 쾌감이란!

집에서 아이들과 몸으로 정신으로 싸움하며 커피마시는 일 조차 속도전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카페인 충전'이라는 제 1의 목표만이 충족가능한 커피타임이 아니라 제 1목표달성은 물론 분위기, 맛, 적절한 속도를 누리며 인간답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그 쾌감!

덤으로 문닫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나의 존엄성을 획득한 것으로 나 역시 그 흥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온라인으로만 수업하고 있는 온라인 초딩, 실상은 유아백수인 우리 따님은 외할머니와 함께 참 창의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울 아이들이 창의적이라서 참 좋다.


 매일 아이들과 집에 있다보면 아이들 챙기다가 끼니를 놓치기도 하고, 요리하는 중에 냄새로 이미 다 먹어버려서 막상 밥맛이 없기도 했다. 거의 1일1식 수준의 식사를 했었는데 출퇴근 하느라 걷고, 건물안에서도 오르락내리락 하고, 워낙에도 말이 많은 나지만 더 말을 많이 하다보니 허기를 많이 느꼈다.



매일 소고기를 먹은 것 같다. 점심에는 많이 먹고, 저녁에는 조금만 많이 먹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다.


어버이 날엔 어버이댁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족발을 시켜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사실 친정 부모님은 옆 단지에 사셔서 기어가도 10분이나 걸린다. 무뚝뚝하고 틱틱대는 나와 달리 친절한 김서방은 장인어른의 잘 수긍이 안가는 발언에도 다 맞춰드리고 있었다. 덕분에 빨리 끝났으면 하는 식사시간은 더 길어졌다. 다행이다. 남편덕분에 아빠가 신나게 수다떠신 것 같다. 아빠가 아주 개운해 보였다.

 시부모님은 강원도에 계시는데 코로나때문에 어머님도 안오시고, 우리도 오지 말라신다. 집에만 있으라고 신신당부. 다소 불편하기에 안뵈면 참 좋긴한데, 좀 죄송한 마음도 없는건 아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의 노래와 사랑한다는 말이 담긴 영상을 보내주셔서 같이 봤는데, 아들놈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저러고 있다. 어찌나 귀엽던지. 부끄럽거나 창피하다는 감정이 밤에 오줌을 쌌거나 떼를 쓸 때만 드는 감정이 아니라 저런 상황에서도 '부끄럽다', '창피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시절이 어떻건 아이는 자라고 있구나, 잘 자라고 있구나, 사람이 맞구나 싶었다.




확진자의 증가추세가 주춤한 것이지 확진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고, 사망자도 그렇다. 더군다나 사망자는 감소할 수도 없다.  


 맞는 말씀이시다. 수렁을 허우적대는 듯한 고민 속에서 사이다를 마신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싱글때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부모님을 앞선 죽음이 아니라면, 내 장례식이 지나면 모두들 전과 다름없이 자기의 인생을 지속할 것이다. 아니, 가족이 없으니 장례식을 안할 수도 있지. 사후는 모르는 일이니까.

 지금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다. 아이는 둘이지만 남편은 하나다. 남편이 하나뿐인 것이 죽음을 앞두고는 다행인 일이려나. 내가 죽음까진 아니더라도 병에 걸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가사일을 감당하지 못 한다면 브레이크가 걸릴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면, 죽었다고 홀가분할 건 나 하나일뿐. 남겨질 혈육의 슬픔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무게는 나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울텐데.

 수시로 죽음을 생각했지만 막상 실제일수도 있는 죽음을 상상해보니, 죽음은 생각보다 많고 깊은 흔적을 남기는 일인 것 같다. 전염병 걸린다고 다 죽는건 아니지만 격리되고, 격리되는 동안 느껴야 할 고립감과 죄책감 같은 것들. 당면한 일이 아니지만 누구에게라도 가능할 수 있는 일을 겪으며 나는 이 상황과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있어야 할지 생각을.... 그런데 사실 답답한 만큼 내면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5월이었다.


 나의 직업은 세상에 꼭 필요한 직업이긴 하지만 대면이 필수이기에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세 달 동안 휴관을 했던 것이다. 이 사태가 장기화 되니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전업주부의 삶도 충분히 가치있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것에 보람이나 가치를 잘 못 느끼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언택트로 할 수 있는 블로그 애드포스트, 쿠팡 파트너스, 월간지 독자투고 등의 발버둥이 있었지만 사실 여기서 오는 모든 금액을 합쳐봤자 테슬라 주가 한번 올라주면 뼈도 못 추리는 금액. 투고하고, 투고해서 채택이 되고, 그래서 더욱 더 투고할 용기를 내고, 인생의 또 다른 길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조급했다. 더 잘하고 싶고 빨리 인정받고 싶고 그랬나보다.


  내가 언어치료사가 되어 적절한 수입을 갖기 까지는 2년 반의 대학원 생활, 2번의 자격시험, 자존심 깔아뭉개는 실습과 논문 등 시간과 마음, 그리고 등록금과 차비 등의 '돈'이 들었듯이, 뭐가 되려고 하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과정이 당연한거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다. 다행히 돈을 들일 필요는 없으니 시간을 더 들여보는 걸로,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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