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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Sep 15. 2020

한 해의 절정과 내 생일 6월, 그리고 내 남자

내 남자친구였던 남편

6월은

6월이 채 되기 전 부터 6월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설렜다. 6월에 내 생일이 있기도 하고,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26~27도에서는 없어진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코로나가 줄어들겠구나, 이전과 아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비슷하게 돌아갈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던 날들이었다.




내 생일이라 남편이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하고 저녁도 빨리 먹었던 날, 고기를 먹은 탓인지 유난히 아이들의 에너지가 너무 넘치고 나도 좀 더부룩해서 다같이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 선물은..




자기들끼리 앞질러 가는 모습을 보며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뛰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뭉클하기도 했다. 한 놈은 아기띠에 한 놈은 유아차에 태워 아이들의 잠못드는 밤을 저주하면서 안고 밀며 잠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 발로 걷지도 않고 뛰어가고 엄마아빠랑 거리가 떨어져도 당황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했다.


오랜만에 남편의 손을 잡아보는 듯.

손에 꼬옥 들어오는 아이들 손만 잡다가 남편 손 잡으니 왜이리 투박하지? 속이 더 더부룩해지는 느낌. 손만 스쳐도 두근두근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손잡으면 답답해.....



어느 날

6살 아드님은 누나에게 '공룡카드' 한글로 어떻게 쓰냐고 묻더니 종이를 같은 크기로 수십장을 잘라 모든 종이에  '공룡카드'라고 쓰고 그걸 다 가지고 다니면서 길에서나 교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저걸 한 장 씩 주었다.

 "사주고 싶으면 사줘도 되요." 하면서.

정말 당황했고 창피했다. 사달라는 공룡카드가 있었는데 집에 있는데도 새걸 사달라고 하는거라 사줄 생각이 없는 중이었다.

 어느 카페에 갔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했던 분에게 아들이 저 종이를 건네서 순간 진짜 진심 완전 당황해서 숨을 곳을 찾았다. 다행히 멘트는 하지 않고 쑥스러운 듯 건네기만 했다. 세상 다행이었다. 정말.


따님은 신나게 창작활동을 하신다. 사실 플레이도우는 소근육발달에도 좋고 창의력을 키우고 역할놀이에도 좋은 소재인 것을 알고 있지만 후처치가 대부분 엄마인 나의 몫이다. 아이들보고 치우라고 해도 저 잔잔바리 나노급 파편은 내가 치워야해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주지 않는 것인데, 저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흔쾌히 내드렸나보다.



베란다에도 풍년이 왔다. 장마가 올 때가 됐는데 해만 쨍쨍할 뿐 비는 안와서 식물들이 더 목말라 하는 것 같았다. 물도 많이 주고 자주 들여다 봐줬더니 열매도 많이 맺었다. 7월까지는 잘 맺히다가 8월 들면서 날씨가 여름같지 않게 흐리고 볕도 잘 안들고 바람도 셌던 탓에 익은 것들이 조금씩이야 있었지만 저렇게 손에 가득 찰 만큼의 수확은 없었다.



언택트의 시대에는 캠핑이 대세라 한번 시도해볼까 싶었지만 그동안 캠핑에 관심이 있어 용품들을 조금씩 사모았다면 모를까 한번에 저지르려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호텔이라는 허세와 지역맛집을 찾아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기적의 논리로 캠핑은 포기했다.



도무지 걸어다닐 줄을 모르는 아이들 덕분에 카페인은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먹고 힘이 넘치는게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다.  그런데도 정말 '힘들다'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될 때가 있다. 나는 왜 그럴까.


남편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폰으로 뭐 보싶어 엿보면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이다. 막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무서워한다고 표현하는게 더 맞는 나는 굳이 시간을 들여 동물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 <TV동물농장>이었단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반려동물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이들이 뛰고 소리지르고 노는 모습이 강아지같다고 좋아한다. 흐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강아지같다고 하는게 좀 그렇긴 하지만 강아지만도 못한 인간이 많은 세상에 강아지 같다고 하는건 오히려 칭찬인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별로 어렵지 않게 아이들을 본다. 주말에 나에게 2~3시간의 자유시간은 허락해줄만큼 혼자 아이들을 보는 것에 별로 거부감이 없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살긴 하지만 더 이렇게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코로나의 계절을 겪으며 산후우울처럼 우울감이 밀려오고 그 와중에 글은 써보겠다고 구닥다리 노트북 앞에서 탁탁탁탁 거리고 있던 날, 남편은 카페에 가자고 했다. 마침 아이들은 텔레비전 보러 할머니댁으로 보낸 뒤였다. 나도 기분전환을 좀 해야할 것 같아서 따라 나섰다.


우리는 무슨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든 깔때기와 같아서 결국 남편은 돈 얘기, 나는 여행 얘기를 하다가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자' 로 대화를 종료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졸라 맬 구멍도 없다!'는 나의 말을 메아리처럼 남겨두고.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남편은 내게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진담반진담반진심으로 불륜치정멜로를 쓰고 싶다고 했다.


 "호정이나 호정이 주변 사람들은 다 단조롭게 살잖아."

 "단조롭다고?"

 "아, 건전하단 얘기지."

 "좀 그런 편이긴 하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써? 경험해봐야 더 실감나게 쓸 수 있는거 아니야?"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험해봐도 되나?"

 "오, 좋겠네."

 "하하하하하하하"

  

 건전한 생활을 해온 나는  '그런' 소설을 쓰는데 한계가 있을거라며 외운건지 즉석에서 나온건지 괜찮은 문장도 읊어주고, 사례도 들어주고 했었다, 여기에 다 쓸 순 없지만.  

 늘 같은 결론으로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사뭇 진지하고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이 날 만난 남자는 좀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시덥지 않은 티키타카든, 조금은 진지했던 대화든 다 재미있고 의미있었다. 그는 문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책을 안읽고, 읽는 속도도 무지 느려서 내 글에 대한 피드백 요청은 포기한 상태이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내 말에 늘

 "호정인 이미 충분해! 바로 책 내도 돼!"

라고 해서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기도 하지만(왜냐면, 내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진정성이 없(는 것 같)기 때문), 그러고 있다고 돈이 나오냐며 진짜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 생각했다.

괜찮은 남자와 괜찮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고, 한번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애프터신청하고 싶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아이들 저녁까지 먹여 주신다고 해서, 이 남자에게 바로 애프터신청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남자가 애프터에 응해줘서 저녁식사까지 같이 다.


남자랑 단 둘이 식당에서 밥 먹는게 꽤 오랜만의 일이라 조금 떨렸다. 이 남자는 남자친구였을 때 처럼 음식을 많이 시켜주고 많이 먹고 잘 먹었고, 내가 게걸스럽게 먹던지 자기보다 많이 먹던지 상관없이 '맛있다!'를 연발하며 신나는 저녁식사를 했었다.

 

 한 때 남자친구였던 이 남자는 남편이 되어서도 가끔은 남자친구처럼 위트있는 말과 매너있는 행동으로 평소에 내게 주는 괴로움을 보상해주곤 한다.




 6월엔 코로나가 한풀 꺾이긴 했어도 많은 것이 조심스러웠던지라 맘 편한 외식은 아니었지만 간만에 설레고 좋았던 었다. 갑자기 더워져서 에어컨을 개시했고, 그덕에 집에 있는 시간이 쾌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칼출근 칼퇴근, 가끔은 재택근무, 집콕 단합대회 등으로 우리 가족 끼리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그만큼 가사노동이 많아지긴 했지만 가사노동이 많아진 이유가 우리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라면 기쁘게 해야 할 일이었다. 진짜 기쁘진 않았지만.


월간지에 투고했던 글이 채택됐다는 소식이 '글'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더 들뜨게 하기도 했던, 한 달 전체가 나의 생일같았던 그런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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