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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11. 2020

이 여름, 스타벅스와 싹쓰리가 있었기에

겨울부터 이어진 코로나가 봄 되면 사그라들겠지, 여름이면 없어지겠지, 했지만 8월이 되어도 상승세가 꺾였을 뿐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우리 일상과 함께 하고 있다. 여행이 아주 불가인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맘먹었다고 쉽게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애도 남편도 있다 보니 더 조심스럽다. 사실 여행도 외출도 외식도, 못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각오'하고 행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 와중에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던, 화려했던 기사!

스타벅스 레디 백을 받기 위해 커피 300잔을 주문하고는 커피는 그냥 두고 레디백만 가져갔다는.


사실 그 기사의 최대 수혜자(?)는 '나'라고 생각한다ㅋㅋ

커피 좋아하고, 스타벅스도 좋아하고, 여름 겨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굳이 커피 17잔을 마셔가며 굿즈를 탐할 일인가 싶어 10년 전쯤 다이어리 한 번 받고는 프로모션과는 빠이빠이였는데, 그 기사를 보고 나서 정말 대단한 프로모션인가 본데? 싶어 알아보니 레디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캠핑의자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은 좋아해도 캠핑은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캠핑 좋아하시는 우리 부모님 따라 몇 번 가보니 캠핑의자가 필요하긴 하던데, 캠핑의자는 종류도 많고 싼 것도 아니던데, 이 참에 캠핑의자 가져볼까? 해서 뒤늦게 이 프리퀀시 대열에 합류했다.

프로모션 기간 중엔 내 생일도 있어서 케잌 기프티콘을 보내준 친구의 선물을 거절하며 스벅 아메 쿠폰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어이없는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런 어이없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였다. 소문들은(?) 친구가 스벅 카드도 주고, 아메 기프티콘이 쏟아졌다. 그 친구들에게 다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루하고 지쳤던 날들의 균열이랄까, 설렘이랄까, 예상치 못한 바람이랄까.

막 더운 날이 아니면 운동삼아 스벅이 있는 읍내로 걸어가 커피를 사서 마시기도 했다. (우리 집은 숲세권이고 스벅은 역세권에 있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역 근처를 읍내라고 부른다.)


7월 1일에 오렌지를 받았다.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마침 스벅 카드에 충전되어 있는 금액이 남기도 했고, 이왕이면 짝을 맞춰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하나 더 도전할까 했을 때 남편이 보였던 표정을 기억한다.


이런 표정이었다고 믿는다

내 눈엔 이렇게 보였다


레디 백이 조기 소진되어서 캠핑의자만 가능하다고 했고, 그러다 보니 다소 인기 있었던 오렌지와 스카이는 재고가 별로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모션 종결 바로 전 주말 아침에 재고 조회해보니 우리 읍내 스벅에 다 있다고 나왔는데, 점심 먹고 나가볼까 하며 조회했더니 재고 없음이라고 나와 잠시 몇 초간 멍했다. 옆 동네 스벅까지 가서 받아오는 투혼을 발휘했다.


코로나 시절을 사는 동안 낙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밝았고, 조심하며 외식도 외출도 했고, 여행도 못했던 것은 아니다. 최대한 조심하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최소한으로 누리며 지냈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던 즐거움에서 누군가 허락해야만 가능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즐거움은 어느 면에서는 죄책감도 옵션으로 붙어 있었다.


그 와중에 불어 온 바람.

여행이 무리라면 집에서 캠핑의자라도, 짐 싸는 흉내라도, 아님 사진이라도.

물론 굿즈 받는다고 길게 줄 서는 바람에 사회적 거리가 지켜졌냐 아니냐, 또 되파는 일 등으로 말이 많기도 했지만, 이런 설렘과 들뜸을 주는데 어떡해. 코로나 더 심할 때 줄 서서 총선도 치렀는걸요.


감히 코로나 시대의 낙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에 카페인을 충전하며 신생아급으로 붙어있는 아이들과 보낼 정신줄을 재생산하고, 엄마인 나에게만 향해 있던 아이들의 시선을 베란다에 놓아 둔 캠핑의자에 앉혀 바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언니 효리언니

레전드는 세월이 가도 레전드구나 싶다

10대에도 우릴 흔들었고, 20대에도 흔들었고, 30대에도 흔들더니 40이 됐는데도 흔들려. 막 흔들어. 이 언니 어쩜. 내 인생에 길게 걸쳐져 있구나. 싸이월드처럼ㅋㅋ

https://brunch.co.kr/brunchbook/cyward



우리 부부생활을 아니?

넌 촉촉하니?


언니 진짜...


저도 딸이 둘 있는데 특종으로 보내 드릴께요


비 너마저ㅡ


한 때 탑 오브 탑을 찍었던 사람들이 예능에 나와서

나 메인보컬까진 안되는데, 트레이닝받고 있어, 등의 말을 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자기의 부족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탑클래스의 미덕인가.


옛 스타들이 가끔 방송에서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보이면 많이 안타깝기도 하고, 노력해도 오를 수 없을 현재가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야속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만큼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나도 다음 메인 몇 번 갔을 때에 비해 그냥 평민(?)이 된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든데ㅋㅋ


유재석이야 딱히 공백기 없이 계속 활동을 해왔으니 약간의 오르내림도 다 보아온 터지만

효리언니와 비는 가끔 나와서 더 화제를 모았던 건가.

가끔 나와도 그 가끔이 비슷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화려한 모습과 수수한 모습을 넘나 들면서도 어색함이 없는 모습이나, 기혼자라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그녀 역시 하고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탑의 자리와 가정을 지키며 별다른 스캔들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화제인 것 같다. 그들에게 집중해야 할 관심 말고는 다른 군더더기가 없으니 말이다.


탑의 자리를 유지하며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까.

그 에너지 덕분에 90년대의 향수를 가진 우리에게,

90년대의 향수와 함께 2020년의 첨단도 더불어 누리고 사는 우리에게,

너무 큰 에너지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


우리의 인생 중에는 노력해서 무언가 해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시절이 있지만

또 나의 현재를 인정하고 그 현재의 흐름에 올라타야 하는 시절이 있는 것 같다.


그 흐름을 거슬러 탑의 자리에 억지스럽게 잔류하려고 했던 이들이었다면 지금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을까.

무엇도 쉽지 않은 지금, 이들의 활약과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고 지금을 기뻐할 수 있었을까.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축제도 공연도 여행도 심지어 날씨마저도

여름 같지 않은 여름

여름 답지 않은 여름

이 여름에

선물 같았던, 설렘이었던, 춤추게 해 주었던

스타벅스 캠핑의자 고맙습니다

싹쓰리 고맙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

남은 것이 태풍과 화염 같은 더위라도 나는 기대해 보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여름 뒤에, 여름이 기억도 안 날 만큼 말도 안 되는 높은 가을이 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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