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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07. 2020

그러고 보니 내가 기득권자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코로나 시대의 한 복판을 지나면서 우리나라에 사재기가 없었던 건 김치가 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쌀과 김치는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길다 보니(사실 밀가루도 그렇긴 한데)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은 사실 메뉴에 대한 문제지 식자재에 대한 문제는 아니지 않았나 싶다. 김치만 있어도 찌개, 볶음, 부침개, 국 등 만들려고 들면 만들 수 있는 메뉴는 무한대니까. 돌밥돌밥하는게 고통이었지 사실 식자재는 늘 우리 옆에 있었다. 우리나라 만세.


 

솔직히 나의 일상은, 무너진 정도는 아니다. 비슷? 혹은 엇비슷? 하다. 집에 늘 있는 김치들 처럼.


내 근무지는 복지관 건물이다. 건물이 아예 문을 닫는 바람에 2월부터 4월까지 3달 동안 나는 출근을 못했지만 회사원인 남편은 계속 출근했다. 3주 정도 주 3회 재택근무를 했지만 남편의 일상은 코로나 전후에 큰 변화가 없었다. 우리 가정의 변화라면 내 월급이 없어진 정도.


  내가 이 삼백씩 벌었으면 큰 공백이지만 그만큼 안 벌었다. 그냥 소소하고 겸손하게 벌고 살았다. 몸 사리면서 약소하게 벌고 산거다. 다행히 만 7세 미만의 아동이 둘이나 있고 경기도에 사는 복으로 받은 지원금 덕에 한편으론 편해졌다. 남편 통장에서 출금되는 게 적어도 160만 원어치는 없을 테니까. 재산만큼 빚도 있지만 이 시국이라고 빚이 더 늘어나진 않았고, 매달 갚아야 하는 만큼은 갚을 수 있고,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건강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기득권자구나.'


 직장이나 일거리를 잃어 생계가 막막해졌거나 누가 아파서 병원비 조달해야 한다거나 하는 스토리가 나와 내 주변에 등장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가 기득권자구나, 싶었다.


 출산 때도 딱 두 달 쉬었는데, 세 달이 넘는 기간을 월급도 못 받고 살다 보니 주변에 '개인 경제 파탄이야'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해 나의 비자금 줄이 막혔다는 표현이었지 정말  내가 파탄 나고 내 가정 경제가 파탄에 이른 건 아니었다.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에 그 전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너무 쉽게 '돈이 없다, 가난하다, 힘들게 산다'라고 했던 것들에 대해 좀 겸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보니 잘난 척으로 읽힐까 싶다.

사실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놀랐다.

나의 일상이 그렇게 무너지지 않은 것이.

돌아갈 일상은 지금의 일상이다.

불혹,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셨단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겼는데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니, 그렇다면 판단을 밀고 나가기 위해 고집이 세진다는 말인가. 판단을 바로 할 나이인가. 그렇다면 싸지르기보다는 책임에 대해 더 생각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내가 기득권자라니 말도 안 되지만, 뒤틀리고 무너진 일상이 없으니 핑계가 없다.




별 일 없는 삶은 누구 덕일까.

누구의 희생 덕일까.

누구의 헌신을 밟고 내가 서 있는 걸까.

누구의 죽음 위에 내 별 일 없는 삶이 버티고 있는 걸까.

나의 버팀은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살어, 다들 그렇게 살어, 생각이 많네, 그냥 니 인생 살어, 그냥 사는 거야, 그냥...

(저런 내 생각에 이런 류가 위로의 말이라면 그냥 아무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 자신을 생각하는 방법이 이런 거다.

내 인생 사는 방법이 이런 거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다.

무너지지 않은 일상 앞에 아무 생각 없는 게 더 무서운 거 아니겠는가.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하루.

오늘 하루는 어제 죽지 못한 사람이 그토록 살기 싫어하는 하루.


내 하루는 어느 지점에 놓아져야 할지.

어느 지점에 있는 게 어울릴지.




오늘도 시작은 했지만 끝을 낼 수 없는 생각의 고리가 꼬리를 물어 이 시간이 되었고 결국 졸려서 생각을 끝내는 오늘과 같은 일이, 사실은 많았다. 생각보다 자주 이러했다. 그래서 다행스럽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애매한 감정으로 오늘과 오늘날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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