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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Sep 16. 2020

앞으로 살 날이 고민, 7월은 안 더웠다

날씨가 왜 이래

우리가 통상적으로 '여름'이라고 부르는 6,7,8월에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왜 이리 더워?"

가 아니라

"날씨가 왜 이래?"

였던 것 같다.


더워 죽겠네, 겁나 더워, 으악 더워! 이런 말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습한 날이 더 많아 '제습'으로 에어컨을 틀었지 '냉방'으로 돌린 날은 서너 번도 아니었던 것 같다.



 긴급 보육으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냈고, 딸은 주 1회 등교를 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집콕이 대부분이었기에 아래층에서 고생이 많으셨다. 매트를 새로 깔았다. 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로 연락은 안 오는데, 힘이 넘치고 건강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우울해질 때가 있고 아래층에 죄송하기도 하다.


 코로나와 4계절을 겪는 와중에, 아파트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학교 교육도 다 온라인으로 하는 마당에 학군이 뭐시여 싶고, 넓지 않아도 마당 딸린 집이 최고지 싶고, 무엇을 위해 여기 살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회의감에 대해서는 즉시 대답할 수 있다.

'돈' 때문이다.

근로 노동만으로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식비를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오를 만한 곳'에 집을 '사서'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살고 있으면 집값이 오르니까, 오를 테니까. 미래는 단정할 수 없으니, 오를지도 모르니까 혹은 오를 확률이 있으니까.


 오를지 안 오를지 모르는 확률에 아직 젊은 나와 어린아이들이 심한 제약을 스스로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무아지경으로 노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저러고 노는 게 애들이지' 싶은데, 막상 놀이터에서 집으로 오는 길엔 "놀았으니 집에 가서 씻고 수학 문제집 풀어"하는 나를 보면, 좀 질린다. 질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나 10대였을 때 태지오빠가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노래할 때 나도 목놓아 같이 외쳤었는데, 그렇게 외쳤던 나와 내 또래들은 사교육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10대를 잊었나. 진정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라.



 7월은 거의 스타벅스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듯 하다. 코로나시대에 그나마 안전한 것이 캠핑일 것 같아 그랬는지 서머체어와 레디백은 엄청난 화제였다. 나도 이미 하나 받았는데도 굳이 또 하나 더 받기 위해 안 그래도 열심히 마시는 커피를 더 열심히 마셨고, 이벤트 종료날이 가까워 오면서 갖고 싶은 디자인 소진될까봐 옆동네까지 가서 받아왔다.

 백화점도 이렇게 발리? 다낭?에 온 것 처럼 멋지게 꾸며 놓았다. 괴로움에 숨이 막혀오던 날 중에도 이렇게 발빠르게 상황을 새롭게 만드는 분야도 있었다. 기분전환, 코로나시대의 일탈같고 재미같은 일, 이런 낙이 있어 7월을 보낸 것 같다.


 확산세가 주춤했다가도 다시 확산되고, 모든 바깥 활동이 위축되는 와중에 출근은 계속 했던 7월이었다. 적당히 더럽게 사는 것이 일상이던 나였는데, 마스크 하는 것을 싫어하고, 장난감을 아직 입으로 탐색하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서 거의 강박 수준으로 치료실을 소독하고 환기하고 장난감을 닦아놓고 했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앞으로 퇴직하기 전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정말, 나 어떡하지, 내 직업은(언어치료사) 시대가 어떠해도 꼭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오는 아이의 상황에 따라선 대면이 필수이기도 하고, 공교육에서 온라인이 장기화되면 우리 애는 어떻게 해야하나, 내 직업은 어떻게 진화해야 하지, 난 무엇으로 돈을 벌고 살아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살림과 육아에 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기혼자라서 더 고민이 많았다.



주택에 사는 사람이 애국자.

친구 중에 땅을 사서 집 짓고 사는 친구가 있다. 3층 집에 작지만 마당도 있어서 바비큐도 할 수 있고 이렇게 물놀이도 가능하다. 나는 속물을 택했고 친구는 가치를 택했다. 맛있는 거 많이 사갈게. 정말 고맙다.


 갑자기 비가 왔다가 갑자기 그쳤다가 해가 나왔다가 갑자기 구름이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날씨예보에 "날씨가 왜 이래?"를 연발하던 7월 어느 날, 기억건대 딱 하루! 해가 쨍쨍했던 토요일이 있었다. 그날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고, 우리는 풀빌라에 온것 마냥 거실에서 '비긴 어게인 코리아'를 연속 듣기로 틀어 놓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저 텔레비전 음소거 모드로 보듯이 보고 있었다. 악을 쓰면서 과한 파워를 뽐내는 아이들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그저 헨리와 수현의 스윗한 목소리만 들릴 뿐. 이런 비현실이 현실일 수 있다니. 아파트에선 누리려야 누릴 수 없는 한 컷!


 7, 8월엔 남편회사도 바빴고 나도 좀 마음이 쓰여 휴가를 안 갔었는데, 이 날 이렇게 놀지 않았으면 이번 여름에 물총은 한 번도 개시를 못할 뻔 했다. 올 초여름에 사놓은 건데. 튜브는 포장도 못 풀었다. 여름성경학교도 워터파크도 올해는 빠이빠이.





 

앞으로 살 날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결정한 것이 다시 한번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미 두 번 낙방했었기 때문에 잔뜩 주눅들어 있었지만 도전은 무한해도 된다는 믿음으로. 도전해서 실패하는 것이지 도전하지 않는다면 실패도 못하는 것 아닌가.

 

 삼수만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7월의 가장 큰 선물.

 코로나와 함께 온 새로운 세계에서 원래 갖고 있던 직업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것 같은 예감.

그것은 나의 한계에 직면하게 만들고 자괴감도 느끼게 했지만 10대나 20대가 아닌 40이 되어 만나게 되는 나의 한계는, 육아를 할 때 느낀 인내심의 한계를 제외하고는, 차라리 반가운 것이었다. 내 인생에 아직 새로운 것이 남아 있고 기대할 것이 있다는 것이 자괴감을 이기게 해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했다는 사실을 뺀다면

습했지만 아름다웠던 7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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