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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 읽기




한참을 옷장 문을 열고 서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무얼 하나 들었다 다시 집어넣고,

다른 것을 들었다 다시 도리질을 합니다. 


신중하고 신중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패셔니스타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분명히 이전에는 옷장이었음이 분명한 곳의 선반에

차곡차곡 수많은 책이 종이 냄새를 풀풀 풍기며

쌓여있습니다. 


그것에 머리를 박고 그리도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릅니다. 


오늘은 오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날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적절한 책을 고르지 못하면 

그 시간은 낭패로 이어집니다. 

재밌는 책 없이 시간을 버티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신중해집니다.


늘 책 한두 권은 쓱 넣을 수 있는 에코백을 선호하지만

자리를 갖추는 자리에 핸드백을 들고 가야 하면

고민의 변수가 늘어납니다.


핸드백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가뿐히 들어갈 정도의

두께와 크기의 책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얇은 책도, 두꺼운 책도

작은 책도, 큰 책도, 가벼운 책도, 무거운 책도 

모두 필요합니다.


멋쟁이들이 같은 하얀 셔츠도

재질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구비해두는 것과

같은 원리라 할까요? ㅎㅎㅎ


적당한 책을 고심 끝에 골라 

지하철 자리까지 확보하면 이제 가장 독서가 잘 되는

환경까지 세팅이 되어있습니다.

이제 몇 정거장을 가든 걱정이 없습니다.

수서에서 구파발까지도 거뜬합니다. ㅎㅎㅎ


아뿔싸.

변수가 또 생겼습니다.

펜을 챙기지 않았네요. 아 이럴 수가.

재난입니다.


가방에 늘 두세 개씩 펜이 굴러다니는데

오늘따라 어째 탈탈 털어도 연필 부스러기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아 불안해집니다.

이건 좋지 않습니다.

지극히도 평범한 머리를 가졌기에

눈만으로 읽는 독서는 

뇌에 스크래치를 남기지 못합니다.


줄 긋고 물결치고 꼭지를 접고, 심지어 양면이 통째로

맘에 들면 반으로 접기까지.

뜯고 맛보고 그리고 접고.. 오리기 빼고는 다해야

책의 일부가 뇌에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습니다.

일단 페이지를 접어댑니다. 

접는 걸로 부족할 때는 카메라의 힘을 빌립니다.

찰칵찰칵.

아 하필 이 책은 왜 이리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을까요.

지하철에서 찰칵대고 있으니

상대편 좌석에 앉은 분이 신경 쓰입니다.


어느 금은보화보다도 지금은 간절히 펜 한 자루가

필요하고 아쉽습니다. ㅎㅎ

내가 다음에는 꼭 필통을 지갑과 함께 챙기리라

다짐합니다.


책의 좋은 구절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동동거립니다.

손의 감각으로 느껴지지 못한 글귀는 그저 내 눈을

스쳐지나 영원히 떠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밑줄을 그어야 하기에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연필이 없으면 나는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도중에 꼭 기억해 둬야 할 내용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방에만 연필 서너 자루가 굴러다니고, 가방에는 연필 하나가 꼭 들어있다. 간혹 연필 없이 책만 들고 밖에 나가는 날엔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 황보름 [매일 읽겠습니다] 중


아니 나보다 더 심하신 분도 계시는군요.

무려 베스트셀러 작가,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를 쓰신 

황보름 작가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고 보니 침대 위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제 특성상

연필이 책에 끼여 있다가 가끔 이불 위로 굴러 나와

이불 곳곳에 연필 자국이 그어 있는 

어이없는 행태도 용인하는 일인이 바로 접니다.


이쯤 되면 책 덕후라 해야 할까.

필기구 덕후라 해야 할까요 ㅎ


이런 잡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아. 한 가지 더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탈 때는

가끔씩은 정신 차리고 어떤 역을 지나는지 

들을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구파발이 아니라 대화까지 가는 수가 있으니깐요.ㅎ


즐거운 책과 함께 하는 지하철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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