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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탓 May 04. 2022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기초공사 골조공사

칠순의 청년인 토목회사 대표가 공들여 다듬어 놓은 집터는 지상보다 삼 미터 아래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아주 잠깐 땅 한 켠에 스무 평짜리 집을 짓고 마당에 정원과 텃밭을 만드는 망상에 젖었다. 눈을 감고 그 행복감을 만끽했다. 눈을 뜨면 기초 공사를 하는 장비와 사람들로 행복이 깨질까 두려워 그대로 나는 하늘을 날았다. 아주 잠깐 몇 초간. 이 공사 준비에서 끝까지 긴 과정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 중 하나였다. 만남의 기쁨은 기다림의 설렘보다 못하고, 극치감은 짧아서 더 화려하다.


눈을 떠보니 현실은 공사판이다. 중장비와 작업자들의 일손은 큼지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느라 더 깊게 파내고, 거기에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부울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폭주하는 모터사이클 같다.



터 닦기와 흙막이를 끝내기 전에, 나는 평생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계약을 했다. 골조공사를 할 업체와 레미콘 공급 업체와 계약을 하고, 가설공사, 금속과 창호 공사, 전기와 통신 공사, 목공사 등등 챙겨야 할 꼭지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미리 계약을 해 두어야 해당 업체들이 때맞춰 시공을 준비할 수 있다.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며 공정별로 도급계약을 했는데, 아쉽게도 공사비는 두 가지 영향으로 오르는 중이었다. 하나는 인건비고 다른 하나는 자재, 그중에서도 철근과 시멘트의 가격이다. 인건비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철근은 한 겨울임에도 시공 견적을 낼 때보다 올랐다. 첫 구입과 마지막 구입 시점의 가격도 조금 달랐다. 모든 계약에서 하자 보증이 포함된 계약서,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세금계산서를 챙겼다.


흙막이 공사에 이어지는 건물의 기초 공사는 내 생일을 지나서 주욱 질주하고는 골조공사로 바통을 넘겼다. 말이 질주이지 기초 공사에 이어 지하층의 벽을 세우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해가 바뀌고 나서야 1층 바닥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미 겨울에 접어든 날씨 탓일까? 그렇지 않다.


G 도시건축 실무자들은 터파기와 흙막이 공사에 하루 건너 한 번씩 현장으로 출퇴근을 하더니, 기초 공사가 시작되고부터는 콘크리트 타설을 전후해서 매일 감리를 나왔다. 그들의 잦은 출현에 나는 설계 감리 계약서를 찾아서 보았다.


'계약서에 감리 횟수가 몇 번이더라?'


감리 계약이 8개월 전의 일이라 내 기억에는 4회 정도였는데 계약서에는 10회라고 적혀 있다. 기초 공사가 끝나갈 때 이미 감리 횟수는 10회가 넘었다! 건축주인 나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고, 반대로 시공자들에게는 추위를 잊게 하는 열 받을 일이다. 현장 시공 담당자들에게서 꼼꼼한 감리 탓에 설계대로 해야 하는 작업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무슨 철근을 이렇게 많이 넣는대? 돈 많은가 봐?!"

"콘크리트를 너무 두껍게 쓰네. 어휴 저거 언제 굳으라고."

"내 평생 공구리 해봤어도 이런 건 또 첨이야."


작업자들은 말로는 그랬지만 몸은 작업 지시에 충실했다. 현장에서 온통 투덜이들이 바글대는 와중에 내가 들은 말들을 가만 따져보니까 결국 작업자들이 공사기간과 비용을 걱정해 주는 말로 들렸다. 뭐, 착각은 자유니까 내 마음껏. 어차피 대금은 계약에 따라 지급될 거고, 그들은 일 해주고 돈 받으면 끝이다. 그들이 불만스러울 정도로 기초와 골조가 만들어진다는 건 작업자가 보기에 튼튼하게 짓는다는 평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G 도시건축의 청년들은 삼촌뻘 되는 시공업체 대표들과 맞짱 뜨며 굽히지 않고 철근의 규격을 재고 레미콘 차량의 콘크리트를 확인했다. 나는 현장소장과 G도시건축 실무자들과 식사를 같이 하며 순간순간의 불꽃이 갈등으로 불붙지 않도록 지원했다. 그거로 충분했다. 현장은 전쟁터 같이 숨 가쁘고 시끄럽게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 소음과 난리통이 설계자와 시공자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연주가 되고 나는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기분이었다.



겉보기에 샌님 같은 젊은 직원들이 일하는 작업자를 괴롭히는 것 같기는 했다. 이 집은 C 건축사라는 건축가가 설계했고, 그가 뼈대와 근육과 살을 그렸다. 그래서 시공자는 건축가가 제시하는 대로 시공을 하는 건 맞다. 그런데 건축가는 그의 설계를 가지고 직접 집을 짓지는 않는다. 설계대로 만들어 내는 일은 시공자의 몫이다. 집짓기 전체로 보면 설계자인 건축가가 가장 중요한데, 작업으로 보면 시공자의 비중이 대부분이다. 일을 할 때 현장을 중시하는 편이었던 나는, 집의 내용으로 보자면 9:1, 작업으로 보자면 1:9로 건축가와 시공자가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집짓기 곳곳에 시공자의 의견이 반영되어 설계 수정과 추가 작업이 있었다. 문제는 케바케이지 누가 맞고 누가 틀린 양단간의 이슈는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골조 공사가 부담스럽다. 겨울의 낮은 기온과 눈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최고 기온이 영하 5도 밑으로 내려가면 구청에서 공사하지 말라는 공문이 날아온다. 눈이 쌓여서 꽁꽁 얼기라도 하면 다시 공사를 재개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게 뻔하다. 한중 콘크리트 공법으로 한다지만 사람의 힘이 어찌 대자연을 넘어설 수 있으랴.


이 집 짓기의 골조공사에서 최고의 기여자는 날씨였다. 하늘은 그해 겨울을 따뜻하게 내려주었다. 1월에 한파가 와서 소장이 작업을 며칠 동안 중단한 것 말고는 대부분 평균 기온이 영상을 유지해서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현장 소장은 공사 전 열흘에 한 층을 예상하고 진행했는데, 설계를 따라가다 보니 그의 욕심대로 되지 않았다. 골조 공사는 평균 보름에 한 층씩 진행되어, 지하층부터 마지막 옥상까지 가는 데 4개월 조금 넘게 걸렸다.


얼마 전 건축 중이던 고층 아파트가 붕괴된 사고 현장에서, 최고 빠르면 4~5일에 한 층씩 올라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H사의 경이로운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현장보다 열 배 이상 되는 엄청 큰 규모의 건물 한 층을, 절반 이하의 기간에 해내는 그 시공사의 실력은 그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신기다.



타설 직후에는 콘크리트 자체가 뿜어내는 열기가 있어서 한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거기에 커다란 비닐막을 덮고 열풍기나 난로를 켜서 말렸다. 화재가 나지 않도록 한 사람은 현장을 지킨다. 겨울철 작업 중인 도로공사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며 궁금했던 김 오르는 풍경을, 내가 직접 집을 지어보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지하층과 1층이 끝나 2층 골조 공사를 하면, 아래에서는 배관, 전기, 통신, 소방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통신, 소방은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완성되지만 중간에 끊임없이 결합했다. 내가 처음 보는 또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건축은 과정도 결과도 예술이 맞다.


집 짓기에서 설계와 건축허가, 공사 허가가 주로 문서 작업이라면, 시공은 문서 작업이 아니다. 현장에서 기계와 공구와 자재를 손에 쥐고 온전히 사람이 집의 실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문서의 문구를 바꾸거나 도면의 선을 수정하는 일과 현장의 작업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문제를 수정하려면 일단 작업한 부분을 철거하고 다시 작업을 해야 한다.


3D 프린터로 집을 짓는 걸 보면서 '언젠가는 마우스 질과 클릭 한 번에 집을 짓겠네.'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건 몇십 년 지나서 가능한 이야기고 지금은 아니다. 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무한대로 소통하고 협업해야 이루어지는 작업이 집 짓기다.


나는 계속 지연되는 입주일 때문에 끝없이 마음 수련을 했고, 이제 봄 입주는커녕 초여름 입주가 분명해졌다. 봄 입주를 기대하는 K어집 부모들은 어집 임대인과 어떻게든 두세 달을 더 버티어 내야 한다. 전생에 큰 죄지은 사람이 집을 짓는다는 말이 속담집에 수록되어야 한다고 믿게 된다.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서울에서집짓기 #집짓기 #건축 #기초공사 #골조공사 #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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