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원장님.”
“어머, 안녕하세요, 00 어머님~”
“우리 00가 집에 와서 저번 한국사 논술 시간에 새로운 선생님이 와서 수업을 했는데 너무 재밌었대요. 학원이 재밌다고 한 경우가 처음이거든요. 어떤 선생님이세요?”
“우리 아들도 선생님 되게 재밌다고 그러던데, 어느 분이세요?”
“어머, 그래요? 너무 다행이에요. 선생님 너무 좋은 분이세요. 모음 선생님~ 이리 와보세요. 여기 학부모님이 선생님 한번 보고 싶으시대요.”
‘아.. 나 진짜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천직일 지도 몰라. 뒤늦게라도 나의 재능을 찾아서 참 다행이야.’
하지만 이런 자뻑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업을 하면서 제시간에 수업을 못 끝내기 일쑤였고, 일단 나는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제로였다. 지금도 카리스마 부분에 대해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게도 내 수업에 대해 좋은 반응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부원장이 보였다.
“저도 어머님들이 학년 바뀌어도 꼭 제가 수업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부탁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하하~”
하지만 그런 의심이 들 때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과 함께 내가 너무 과하게 의식하는 거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난 그 사람의 상대가 될 만한 레벨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이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고 여러 방면으로 허점 투성이에 어설픈 사람이다. 그리고 원장이 학원의 거의 모든 일을 맡길 정도로 두둑한 신임을 받고 있는 부원장과 달리 나는 그냥 시간제 알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쯤 없어도 금방 대체 가능한 인력, 알바 말이다.
이 일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 나의 과한 ‘촉’에 대해 얘기했다.
“널 경계하는 거야.”
“왜?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난 그냥 알바야. 그 사람은 부원장이고. 그리고 그 사람 일도 잘해. 열심히 하고.”
“그런 사람 있어. 일단 자신보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한테 지기 싫어서 경계하는 거야. 티 안 나게 살짝살짝 떠보는 거지.”
“나 그 사람 보다 한참 모자란데?”
“그 사람 기준에선 네가 경쟁자로 보일 수도 있는 거지.”
내가 경쟁자라는 부분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원장에게 대놓고 “나한테 왜 이러세요?”라고는 할 수 없었다. 대놓고 나를 괴롭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회생활 생존 팁 중 하나가 일터에서는 뭐든 마음에 꾹 담아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둔한 척 하기인데, 나의 주특기를 살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 의심이 들었지만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어가자 나는 부원장의 테스트를 통과한 듯 보였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부원장은 나에 대한 긴장을 놓은 듯했고 이젠 적의라던가 그 어떤 느낌도 느끼지 못한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과연 그때의 촉이 나의 과한 의심이었을까, 진짜 경계의 눈초리였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