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로가 되고픈 셜로키언
코난... 너 셜록홈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니?
미궁에 빠진 사건. 사건 현장의 증거들과 뛰어난 추리력으로 탐정은 마침내 범인을 알아낸다. 하지만 탐정은 경찰에게 바로 범인을 밝히며 체포를 요청하지 않는다. 사건의 가장 중심이 되는 그곳에, 모든 용의자와 관련자들을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사람들은 탐정의 말에 따라 한 자리에 모인다. 그중에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운 이도 섞여있다. 이 귀찮은 시간이 언제 끝나냐며 투덜거리는 이들, 빨리 범인을 밝히라며 재촉하는 이들 앞으로 탐정이 나타난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탐정은 이제, 브리핑을 시작한다.
증거가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누군가는 범인으로 의심받고 누군가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다. 그렇게 여러 번의 티키타카가 반복되면, 몇 가지의 증거들이 지목하는 하나의 교집합이 생긴다. 지금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한 사람, 탐정은 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이 모든 범행이 가능한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이러한 추리 방식은 많은 이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20세기 추리소설의 거장, 아가사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이른바 '푸아로 파이널'이다. 지금은 고전적인 형태의 추리소설들이 채택하는 클리셰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작해낸 탐정인 에르큘 푸아로는 작품 말미에 항상 이런 식으로 범인을 지목한다. '푸아로 파이널'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푸아로 파이널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추리 방식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쇼맨십이 뛰어난 푸아로와 달리 인간과의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 오히려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홈즈는 공개적으로 추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왓슨이나 마이크로프트 홈즈 같은 주변인에게만 추리를 읊고, 주변인들이 추리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반면 푸아로는 주목받는 걸 너무도 좋아한다. 소설 내내 다른 등장인물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러한 그의 '관종'끼가 푸와로 파이널이라는, 미스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클래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푸와로 파이널은 현대 추리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데, 명탐정 코난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코난은 언제나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면, 형사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유명한 탐정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사람들이 웅성 웅성대며 모이고,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한 유명한 탐정에게 푝, 마취침을 쏜다. 침을 맞은 유명한 탐정이 매가리 없이 픽, 하고 쓰러지면 사람들은 그 유명한 '잠자는 유명한'의 추리를 기대한다. 그리고 거기서 코난은 나비넥타이 음성 변조기로 유명한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추리를 시작한다. "범인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서 포인트는, 코난은 셜로키언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아가사 크리스티 팬을 무시할 만큼 강성 셜로키언이다. 셜로키언들이 모인 추리 여행을 배경으로 한 하인성과 코난의 첫 만남 에피소드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곳에서 하인성이 자신은 셜록홈즈보다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를 더 좋아한다고 밝히자, 그곳에 있던 수많은 셜로키언들은 그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코난도 그 경멸에 일조한다. 그에게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저 코난 도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범한' 추리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 강성 셜로키언에 푸와로 파이널을 따라 하다니. 푸와로 파이널을 알고 난 후 코난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이 나의 웃음 버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코난은 셜록 홈즈가 되기엔 사교성이 너무 뛰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남도일로 살았을 때에도 언제나 매스컴에 자신의 얼굴을 비췄으며, 범인을 밝히고 경찰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다. 게다가, 엄청난 수다쟁이다. 주변인들에게 셜록홈즈의 문장을 줄줄 읊어대며 자신의 홈즈 사랑을 뽐내고, 쉴 새 없이 추리를 통해 잘난 척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푸와로의 모습이다. 셜록 홈즈의 포인트는 고독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독함을 찾아보기엔 쉽지 않다.
셜로키언 캐릭터로 설정된 코난에게 마저 푸와로 파이널을 사용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모두 훌륭하지만, 극적인 완성도가 더 높은 건 후자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설정이나 모티프, 오마주까지도 셜록 홈즈에서 가져왔지만 가장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인 추리 장면을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에서 가져왔으니 말이다. 물론, 코난이 워낙에 장기 연재 시리즈이기도 하고 재미와 흥행이 중요한데, 셜록 홈즈 시리즈만을 활용하면 소재가 한없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결말의 기본구조나 클리셰 자체를 가져온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활용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활동과 살았던 시기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추측이 무리도 아니다. 코난 도일의 전성기였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신문 문학의 전성기였다. 셜록 홈즈 시리즈 또한 신문의 정기 연재물에서 시작한 것이고, 실제로 당시 영국 추리소설이 부흥했던 이유 또한 신문 문화의 발전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아가사 크리스티가 활동했던 20세기 초중반은 연극을 비롯한 이른바 '쇼 엔터테인먼트'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다. 아가사 크리스티 본인도 극작가로서 많은 희곡을 남겼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쥐덫>은 전 세계에서 가장 롱런한 연극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코난 도일이 활자 중심의 문학 활동을 했다면, 아가사 크리스티는 하나의 추리 쇼를 만들어냈다.
작품의 길이만 보더라도 그렇다. 연재물이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는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단편이다. 짧은 길이 안에 최대한의 재미를 주어야 하기에, 최대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설정하고 기상천외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겨야 한다. 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부분 장편이다. 장편은 한 두 가지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완성되지 않는다. 견고하게 짜인 틀 안에서 기승전결에 따라 독자들과 밀당을 이어가야 한다. 단편 작가였던 코넌 도일과 장편 작가였던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구했던 작품 세계는 이렇게나 다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차이는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남겼다. 사람들이 캐릭터 자체를 애정하고 열광하는 것은 셜록 홈즈 쪽이다. 연재물이라는 특성상, 장기 연재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주인공에 대한 대중들의 몰입이고 코난 도일은 이것의 귀재였다. 사람들은 코난 도일이 만들어 낸 트릭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기억한다. 셜록 홈즈가 후대에 변주되는 방식 또한 모두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다. 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페르소나인 에르큘 푸와로와 미스 마플은 셜록 홈즈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작품 속 클리셰나 트릭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리메이크되는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 쪽이다.
아오야마 고소는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차이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가져온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푸와로 파이널을 채택하지만,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이 일대일로 만나 추리를 설명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추리에 스스로 실망했을 때, 혹은 여러 탐정들이 경합할 때, 그리고 자신의 우상이 범인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추리와 마주했을 때, 셜록 홈즈의 방식을 택한다. 모두 그의 심리적 고뇌가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코난이라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할 때는 셜록 홈즈의 방식을, 쇼적인 측면을 통해 사건의 재미를 부각할 때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코난이라는 제목부터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사건들까지, 아서 코난 도일에 대한 오마주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요소를 주요한 설정으로 가져올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 개방적인 태도가 필수적인 요소임을 말해준다. 셜록 홈즈를 오마주 했다고 해서, 셜록 홈즈의 정통성을 지킨다거나 그 설정만을 활용하려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가사 크리스티든 다른 작품이든 나의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든 가져와 나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개방적 태도, 그것이 코난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세상에 없던 완벽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미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창조되었다. 현대를 사는 창작자들에 능력은 존재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잘 재조합하고, 그것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잘 다듬느냐에 달려있다. 아오야마 고소는 이런 부분에서 흥행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의 거장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자신의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까지 갖췄으니 말이다.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셜로키언이면서도 푸와로를 따라 하고, 또 고독한 셜록 홈즈보다 사교적인 푸와로에 가까워 보이는 코난의 모습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