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 재구성하는 우리의 인지체계
아이돌 팬들, 그 중에서도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을 오랫동안 좋아한 팬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내 심장에는 SM의 피가 흐른다. 그 피는 바로 SMP(에스엠피)."
SMP는 원래 Sm Music Performance의 약자로 SM 특유의 프로듀싱 방향성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에스엠'피'라는 어감 때문에 이렇게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SMP의 정체성을 구축한 두 명의 SM 작곡가, 켄지와 유영진을 두고 "어머니는 켄지, 아버지는 유영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팬들은 자신의 취향이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야기하며, 그들의 노래는 처음엔 별로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심장이 먼저 반응하더니 그 음악을 되뇌이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증언한다.
이건 SM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SM이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오래되고 시장의 규칙을 만들어온 회사이기에 그 선두에 있는 것일 뿐이다. 모든 아이돌 팬들은 자신들의 최애가 노래하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머리로 아무리 막으려고 애를 써도 몸과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서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을 최애의 행동들도 팬들에게는 하나하나에 의미가 생기고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주변에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심쿵'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팬에게 진짜 일어나는 신체반응이자 현상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덕질의 분야는 정말 넓고 다양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쉽게 동요하게 만드는 데에는 음악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창작물과 콘텐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긴 흐름이 필요한 영화나 문학, 공연 등과 달리 단 시간내에 사람을 사로잡는 데에는 음악이 아주 톡톡한 힘을 발휘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뿐만 아니라 그 공간의 기분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음악의 힘은 예술 전 분야에 있어 아주 폭넓게 활용되기도 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영화가 기존의 예술과 달리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데에는 음악의 역할이 아주 크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OST(Original Sound Track)이라는 형태로 그 작품에 적합한 음악을 새로이 만들거나, 기존에 음악을 감독이 발굴해내 장면과 결합하여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히 소리를 채워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혹은 모니터라는 한정된 공간을 긴 시간 집중해야 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의 공기를 전달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별거 아닌 장면이 음악 하나만 넣었을 뿐이데 엄청난 분위기와 감정들을 유발하기도 하고, 아주 잘 만든 장면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음악이 나와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에서 'OST의 중요성'이라는 검색어만 넣어봐도 그 힘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릴러 영화 <샤이닝>에도 무한도전 배경음악을 넣으니 왠만한 예능에 버금가는 코미디 영화가 되고,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에도 무협영화나 서부영화 OST를 넣으면 비장함이 감도는 액션물이 된다. 이것말고도 다른 건 그대로 유지한 채 OST만 바꿔놓고 사실상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듯한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코난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재적소에 활용되는 OST는 작품의 몰입을 극대화하고, 잘못 활용된 OST는 몰입을 방해하며 실소만 나오게 한다. 코난에서는 다양한 OST가 활용되진 않지만, 워낙에 여러 번 반복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코난을 보며 OST를 들을 때면,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스토리보다 음악에 더 집중이 될 때도 있다.
코난도 예외는 아니다. 코난, 하면 가장 유명한 그 음악. 당신이 머릿 속에 떠올리고 있을 바로 그 음악. 빠밤 빠밤빰, 빠밤 빠밤빰, 빠밤 빠바바밤 빠바바밤빰. 추리극의 서막을 알리는 코난의 메인테마다. 미스터리 시리즈의 오프닝답게 웅장함은 물론 비장함까지 탑재한 이 노래는, 극장판 타이틀은 물론 각종 예고편과 홍보영상, 뿐만 아니라 코난을 패러디한 수많은 콘텐츠들에서 활용하고 있기에 여러 사람들의 귀에 아주 익숙한 곡이다.
얼마 전 나는 이 OST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한 가지 버전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이 음악이, 생각보다 많은 버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무려 극장판마다 각기 다른 버전을 활용하고 있었다. 같은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 버전이 10개 이상은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극장판에서는 하나의 버전만 듣다보니 당연히 그 노래가 그 노래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메인 테마 모음' 플레이르스트를 통해 각 버전을 순서대로 듣다보니 버전 별 차이점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획기적인 편곡이 있는 건 아니다. 메인 리듬이 시작되기 전 8-10마디에 약간씩 다른 선율이 들어가고, 그 이후의 멜로디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그 음악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노래 속에서 활용되는 악기나 사운드 정도가 약간 다를 뿐이다. 나름대로 그 극장판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다. 컴퓨터를 활용한 트릭이나 추리가 많은 극장판에서는 조금 사이버틱한 음악이 활용되기도 하고, 고전적인 추리 서사를 따라가는 작품의 경우에는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전통 요소가 가미된 극장판의 경우에는 그 나름대로의 사운드들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건 버전마다 다른 초반 8-10마디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도 버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음표 몇 개가 바뀌는 걸 제외하면 5가지를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판 OST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이 OST는 어떤 극장판의 OST와 유사한지를 따져보는 내용이 적지 않다. 어떤 팬들은 이런 OST 멜로디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해당 극장판과 결말이나 서사적 측면에서 닮아있는 점을 발견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 짧은 멜로디가 팬들의 생각과 추리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이다.
특히 이 멜로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본격적인로 넘어가는 중간의 브릿지이자 타이틀 역할을 하기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 관객들에게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코난의 오프닝 시퀀스는 대부분 범죄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루거나,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며 혼란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코난이 마치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인가'하는 눈빛을 보이면 메인 테마가 흘러나오는 오프닝 타이틀로 넘어간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이 선전포고를 접한 코난 팬들은 마치 조건반사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노래를 듣자마자 몰입을 시작하는 관객들의 반응은 분명 조건반사다. 장기간의 덕질은 OST에 신체가 나도 모르게 반응하도록 팬들의 의식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확실하다. 극장판에 대한 별 기대 없이 관성적으로 보러가는 나 조차도 이 OST를 듣는 순간 약간은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런 나를 볼 때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 내가 얼마나 이 OST에 길들여져 있는 건가. 무의식 중에 자리잡은 습관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파블로프의 실험 속 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종소리에 아무 반응을 하지 않다가, 종이 울릴 때마다 먹이를 주는 과정을 일정 기간 반복한 후에는 먹이가 없이 종소리만 울려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는 그 실험 속 개 말이다.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의 조건반사를 보여주는 이 실험은 최애에 반응하는 우리의 심장의 메커니즘도 아주 잘 보여주는 실험같다.
어느 순간 세뇌와 학습을 통해 머리보다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그 모습이 조건반사 같다. 노래라는 외부적 자극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서, 그 노래에 따른 새로운 인지체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노래에 반응하게 만드는 인간이 된다.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지적 능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덕질의 영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조건반사는 탈덕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보통은 자신의 최애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탈덕을 하게된 경우, 그에 대한 마음이 식어 다시는 그의 노래를 듣지 않겠노라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디선가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멀찌감치 그 노래가 들려오면 외면하고 싶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박자를 타며 반응하는 자신의 몸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지만, 너무 오랜시간 주기적으로 학습되어온 만큼 이미 내 몸 깊숙한 곳에 체화되어 있어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든다. 코난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반응하는 내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기분도 찝찝하긴 마찬가지다.
마치 파블로프의 실험 속 종소리처럼, 덕질은 우리의 인지체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인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의 마음 속에 이렇게나 깊숙이 들어와 나의 무의식을 좌우할 리 없으니 말이다. 덕질과 과몰입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사람이 있다면, 쉽지 않을테니 욕심을 버리라 말하고 싶어진다.
한 번 학습된 조건반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듯이, 한 번 덕질에 최적화된 사고체계는 덕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덕후 세계의 오랜 진리처럼 살면서 덕질을 안 해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나도 코난으로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수많은 덕질의 역사를 거쳤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의 나에 이르렀다. 덕질의 세계에 발을 들인 당신이여, 마음을 비우시라. 당신은 이미 덕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덕질 최적화 인간이 되었으니. 지금의 덕질을 잊고 싶다면, 덕질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덕질로 잊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덕질은, 다른 덕질로 잊혀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