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서 Sep 16. 2022

범인 한자와 씨

범인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이야기

    근육질의 몸에 훤칠한 키, 검정색 쫄쫄이를 입은 듯 칠흑같이 어두운 실루엣. 얼굴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빛나는 하얀 눈. 음성을 변조한 목소리에 입이 찢어질 듯 이빨을 보이며 웃는 의미심장한 표정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코난의 모든 범인은 이렇게 생겼다. 진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의 모습은 검정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어둠 속에 정체를 숨긴 범인은 코난의 추리를 통해 정체가 밝혀질 때, 비로소 빛이 드리워지며 얼굴을 드러낸다.

    범행 현장 혹은 범인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싶지 않은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기법이다. 이 기법은 오로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름의 매력을 갖는다. 범인의 외양을 묘사하지 않고 행동만을 묘사해 그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소설과, 범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그림자로 대체하거나 신체의 일부만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실사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기법이다. 소설과 실사영화 사이에서 2D만이 해낼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방식의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눈코입이 완전하지 않은 범인의 모습에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공포를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큼지막한 두 눈만 동동 떠디는 검정인간이 이빨을 보이며 씨익, 웃어보일 때면 시체 장면보다 더 소름이 돋아 후다닥 책장을 덮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현실감 없는 검정인간이 그저 유머코드이자 밈으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현재의 나 또한 과거의 공포는 잊은 채 검정인간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실소를 터뜨린다. 심지어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범인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재현할 땐 긴장감이 감돌아야 하는데, 과거 예능프로의 단골 의상이었던 쫄쫄이 전신 레깅스를 입은 것처럼 묘사된 그의 외양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코난의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시작했지만 웃음 코드로 자리매김한 범인. 그런데 놀랍게도 이 범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가 존재한다. 바로, 코난의 스핀오프(spin-off) 성격을 띄고 있는 칸바 마유코(かんばまゆこ)의 <범인 한자와 씨(犯人の犯沢さん)>다. 이름마저 범죄(犯罪)의 '범'자를 가져다 쓴 한자와 마코토의 이야기는 원작자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팬들도 인정하는 꽤나 재미있는 스핀오프 시리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한자와 마코토는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코난 시리즈의 주 무대가 되는 베이커 가로 이사를 오게 된다. 하지만 동네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사람들은 '이곳은 범죄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당장 떠나라고 말한다. 여기서 코난의 주요 인물들은 한자와 씨를 귀찮게 하는 지역 주민들로 그려진다. 그들과 티격태격 부딛히며 자신의 목표인 복수를 향해 전진한다.

    복수극을 표방한 비장한 줄거리와 달리, 이 작품은 블랙 코미디이다. 추리물의 스핀오프이니 만큼, 중간중간 수상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작품의 웃음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시리즈를 읽다보면 계속해서 피식, 하고 웃게 된다. 코난 시리즈를 좀 봤다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웃지 않고 지나갈 순 없을 것이다.


    <범인 한자와 씨>가 원작 팬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작품 곳곳(이라기보다는 대부분)에 등장하는 코난 속 주요 인물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 리 없는 한자와 씨는 원래의 성향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그들을 묘사한다. '안경잡이 꼬맹이'(코난)라거나, 그와 붙어다니는 '콧수염 탐정'(모리 코고로, 유명한)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 의문의 뿔 달린 고등학생'(모리 란, 유미란), '꼬맹이 주변의 성가신 애들'(소년 탐정단)과 '하품하는 여자애'(하이바라 아이, 홍장미)까지. 원작에선 다양하게 활약하는 주인공이 여기선 그저 지나가는 주민 1, 2 정도로 치부된다. 물론 그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주연과 조연들이 단역과 특별출연으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코난의 팬들은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원작 시리즈에 대한 비꼬기와 풍자도 재미의 큰 몫을 담당한다. 내가 이 시리즈를 쓰게 되었던 계기처럼, 코난을 보다보면 재미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적지 않은 '어이 없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성의 없는 스토리나 설정, 안이한 마음으로 만들어낸 듯한 뜬금없는 범행동기와 트릭, 때로는 유치할 정도로 느껴지는 과도한 러브라인과 코믹요소까지. <범인 한자와 씨>는 나를 포함한 여러 팬들이 느끼는 이러한 지점들을 정확히 파고든다. '이거, 당신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 아니에요'라며 원작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 당찬 모습은 팬들의 사랑을 얻기에 충분한 자질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웃음포인트 중 하나는 연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그의 복수가 한참 멀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복수의 대상이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코난의 본체, 쿠도 신이치(남도일)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코난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이 복수(를 빙자한 코미디) 시리즈 또한 끝이 날 수 없다. 이마저도 원작에 종속되어 있는 스핀오프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100권에서 끝내겠다는 작가의 결심과 달리 끝을 모른 채 이어지는 코난 시리즈처럼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범인 한자와 씨>의 세계관이 점점 더 기대가 된다.

    이런 기대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범인 한자와 씨>는 점점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만의 팬층을 확보해가고 있다. 인기 만화의 반증이라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화도 진행되었고, 넷플릭스로도 공개된 바 있다. 특히 코난의 또 다른 스핀오프인 <제로의 일상>과 함께 넷플릭스에 입성했는데, 반응은 이쪽이 더 좋은 것같다. (참고로 <제로의 일상>의 주인공은 코난 속 손꼽히는 꽃미남 캐릭터로 고정 팬층이 있어 흥행을 했지만, 이 부분을 제하고 작품 자체에 대한 인기로 보자면 한자와 씨가 더 두텁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처음엔 이 시리즈를 아류작 정도로 치부했던 원작자 아오야마 고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인터뷰마저 했으니, 스핀오프로썬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원작 시리즈와의 더 많은 콜라보를 통해 코난 시리즈의 확장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어쩌면 한자와 시리즈의 작가가 아오야마 고소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허황된 상상이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범인 한자와 씨>와 같이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혹은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품을 스핀오프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작가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원작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제한된 환경에서 극상의 창의력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꽤 독특한 분야라 할 수 있겠다. 스핀오프의 서사는 원작에 종속되어 있다보니, 원작을 뛰어넘을 만큼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와 동시에, 원작이 되는 콘텐츠가 흥행을 하면 할수록 함께 사랑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스핀오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의 즐거움을 확장시켜 준다는 점이다. 원래 덕질을 하면, 세상에 나와 있는 콘텐츠들만으로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진다. 덕질의 대상을 계속해서 보고 싶고, 더 내밀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바로 스핀오프의 대표적인 사례, '팬픽'(fan-fic)이다. 팬들이 직접 서사를 재창조해내는 이러한 방식은 원작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이렇게 팬들의 즐거움은 나날이 확장되고, 그것이 또 하나의 '세계관'이자 시장으로 자리한다.

    스핀오프는 팬들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애초에 스핀오프는 원작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소비하기가 쉽지 않다. 스핀오프가 지향하는 재미의 지점들은 대부분 그 자체로 완전하기보다는, 원작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원작의 팬들은 스핀오프를 소비하며 자신이 얼마나 원작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경쟁하고, 스핀오프를 매개로 하여 상호 간의 소통을 이어간다. 이것은 다시 원작에 대한 충성도와 높은 지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원작보다 더 어려운 장르일 수도 있다. 원작의 흥행에 묻어갈 수 있지만, 언제나 '잘해야 본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워낙에 원작에 대한 지식이 출중한 이들이 스핀오프 시장에 몰리다보니,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재미가 반감되어 팬들이 빠르게 떠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핀오프의 저자는 그 누구보다 원작의 팬이거나 그만큼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 덕질을 해본 사람만이 덕후의 마음을 아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는 단선적인 서사로 구성되는 전통적 서사방식과 달리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가는 스핀오프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에 더욱 근접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이 있기에,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욱 극대화시켜줄 수많은 조연과 단역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이야기의 시점에 따라 조연과 단역도 언제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서사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창작자, 혹은 관객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는 단선적 서사로 구성되지 않는다. 77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에는 77억명의 주인공들의 77억개의 서사가 존재한다. 각자의 삶에서 자기 자신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선 언제든 조연이나 단역이 된다.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는 수많은 답이 존재하고 각각의 답을 선택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소모적인 생활만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 인생이라는 서사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 같다면,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스핀 오프를 써내려가자. 주인공은 태어나지 않는다. 내가 주인공이기를 선택한다면 언제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원작의 감초 캐릭터에서 어엿한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한자와 마코토 씨처럼 말이다.

이전 05화 푸아로가 되고픈 셜로키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