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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남캐 Jun 30. 2022

매일 아침 이불 정리하고 환기해 보았습니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

 


 5시간의 얕은 잠을 잔 것 치고, 오늘 아침은 꽤 일어날만했다. 물론 평소보다 약간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걱정했던 것보단 나았다는 얘기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이불을 정리하고 환기했다. 거의 단 한 번도 어겨본 적 없는 루틴이다. 이불을 정리한다는 것이 곧 갠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예쁘게 침대 위에 잘 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베개도 가운데 정렬로 각을 잡아 둔다. 바로 옆에는 잠옷을 개 둔다. 그 뒤 잠에 덜 깬 채로 비틀거리며 베란다 문을 열어젖히고, 블라인드를 드르륵 올린 후 밖으로 통하는 창을 연다.


 대단할 것 없는, 아주 단순한 습관이다.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계획들은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고, 특히 최근 글 같은 경우엔 거의 진전이 없는 수준이었다. 6월 내내 몇 번인가의 슬럼프를 반복하며 바닥을 기는 자존감과 싸워왔다. 그 와중에도, 침대를 정리하고 창문을 여는 일은 결코 거르지 않았다. 아주 쉬운 일인 동시에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올해 나를 지탱해준 가장 고마운 습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태하게 보낸 하루에 무거운 마음으로 잠들게 되어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조금은 희망이 샘솟는다. 가지런히 정돈된 잠자리, 열린 창 밖으로 이어져있는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10분 정도는 책을 읽고 밖을 나선다. 출근길엔 오디오북을 듣는다.






 지난 5월에 쓴 글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긍정에 대한 주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속된 말로 오픈빨이라고 해야 하나. 올해 2월부터 크게는 "평생 글 쓰는 사람", 작게는 "브런치 작가 선정"을 목표로 달려왔다. 매일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썼다. 친구집에서 하룻밤 자게 되는 날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단한 메모라도 하고 누웠다. 그리고 주에 반드시 3일은 야외 달리기를 했다. 단 몇 개월뿐이었지만, 난생처음으로 살아보는 자기 주도적인 삶이었다. 이런 하루들을 이어나가면서 뭐랄까, 처음 겪어보는 일상들의 반복에 스스로 도취되어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난 참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어, 난 훌륭한 사람이어야 해. 멋진 사람이어야 해." 이런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글의 문장들 사이사이에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기계발서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듯, 매번 멋들어진 삶의 교훈으로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애썼다.


 물론 의미 있는 글들이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모든 글들을 '깨달음과 교훈'으로 채워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쓰는 속도가 더뎌져갔다. 최근엔 아예 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글을 쓰는 것이 무서웠다. '이상적 모습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생겨나는 뼈아픈 괴리감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못되었고, 훌륭한 사람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다만 지극히 평범한 스물아홉의 청년일 뿐이었다. 다만 오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었고, 매일 조금 더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내기를 바라는 사람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  이불을 정리하고 환기하고 난 뒤엔 꽤나 높은 확률로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퇴근하자마자 산책하러 나가야지, 혹은 근처 무인카페에서 책을 읽어야지, 혹은 작은 접이식 책상을 사서 독서용으로 써야지. 나태를 자주 반복하는 자신을 회유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잔꾀들이다. 그러다 보면 아직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혹은 포기할 생각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기뻐진다. 이 작은 습관이 지극히 평범하고 모든 일에 서툰 나를 비밀친구처럼 지켜주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사유하고, 몇 줄인가의 문장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어김없이 정돈된 아침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더 넓은 세상과 이어지길 바라며 창을 열어젖혔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좀 더 가볍게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불을 정리하듯 내가 아는 만큼의 글을 쓰고, 창을 열어 환기하듯 세상에 대해 자주 읽고 보고 듣자.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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