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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스튜디오H Apr 23. 2020

나는 왜,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을까

프리랜서 공무원 되기

가해자가 했던 폭언 중의 하나는 별 볼일 없는 프리랜서가 공무원이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게 감사할 일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공무원이 되었을까. 가해자 말대로 공무원이 된다는 게 무슨 신분상승이라도 되는 걸까. 나는 왜, 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그 시간들을 버티고 있었을까.


내가 임기제 공무원이 된 이유는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

경력을 그대로 살리면서

서울에서 받던 월급과 비슷하게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의 내 경력 정도면 쉽게 취업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나의 경력을 좀 부담스러워했다. 면접을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얘기는 페이를 못 맞춰주는데 괜찮겠냐 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역 업체에서 일하게 되었고 외주 업체 자격으로 그 지역 도청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방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지역 연고가 없는 나에 대해 조금은 배타적이었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역의 공익을 위해 일을 한다는 작은 보람도 있었다. 그러다 세종의 중앙 부처에서 일할 수 있는 채용 공고를 발견했고 지방에서 나름 내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그저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원했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었다.


프리랜서가 공무원이 되는 험난했던 과정

나는 기대를 했었다. 중앙 부처인 만큼 좀 더 합리적이고 유연한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이고 학연 지연으로 얽혀있었던 지방보다는 조금 더 능력 위주의 업무 환경이 가능하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치고 합격 통보를 받은 후,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그동안 열심히 경력을 쌓아오면서 일했지만 그것들을 '서류'로 증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정규직이 아니라 프리랜서 형태로 일해왔기 때문에 건강보험 내역으로도 고용보험 내역으로도 나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 분명 나에게는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포트폴리오'가 있었음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인사과에서는 내가 일했던 회사에 내가 낸 경력증명서가 맞는지 확인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것도 나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나와 친한 회사 대표는 인사과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좀 이상하다고 했다. 몇 주동안 수십 장의 서류를 마련하고 등기우편으로 보내면서 뭔가 가벼운 범죄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분명 확인을 위한 절차이지만 썩 좋지 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어쩌다 되는 공무원이 아니었다.


출근 첫날 시작된 갑질

나름 고단했던 절차를 거친 후, 첫 출근을 했고 동시에 팀장의 갑질은 시작되었다. 팀장의 첫인사는 '어디서 뭐 하다 왔는지 모르겠지만...'이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임기제 공무원'의 입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여러분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은 이 조직의 입양아다

다들 여러분이 받는 월급을 의심하고 시기 질투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공무원으로 신분 상승한 만큼 성과로 보답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월 25시간의 야근은 필수이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취향은 어떤지 왜 물어보지 않냐며

상사를 파악하는 건 조직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입사한 다른 주무관에게는 카톡 프로필 사진이 적절치 않으니 바꾸라는 말도 했다.   

 

입사 첫날부터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 고민은 1년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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