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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an 08. 2024

목표는 부담스럽지만, J는 계획이 세우고 싶다

마의 삼일 벗어나기





        가는 카페마다 자리가 없다. 보통 일인석은 한두 자리 남아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가는 곳마다 꽝이다. 새해는 새해구나. 네 번째 카페문을 닫고 뒤돌아 가는 발걸음에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민망한 마음에 괜스레 가방을 뒤적인다. 게으른 주인을 만난 죄로 내 다이어리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함께 집에서 첫 시작을 맞이할 운명이다. (쏴리 마이 다이어리..)


        비닐을 뜯고, 첫 장을 연다. 옅은 종이 냄새가 제법 좋다. 신년 계획, 글쎄 올해는 또 무엇을 작심삼일 해볼까.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매년 하는 다짐으로 귀결한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운동. 목표를 적고 나니까 뭔가 뿌듯하다. 그래, 이 맛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신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겠지. 작심삼일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귀엽게 봐주면 나름 “삼일씩이나” 성장한 셈 아닌가.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재개했다. 어떤 사랑꾼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사랑을 했다고 하던데, 나는 내 운동을 그 정도로 사랑하진 않았나 보다. 날이 추워지면서 야외 운동을 멈췄다. 달리기를 해야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걸 경험상 잘 알고 있음에도 그만두었다. 또 그즈음해서 스트레칭 루틴을 그만두었고, 그러다가 결국 오른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었다. 부상, 아 이보다 더 좋은 핑곗거리가 있을까. 그렇게 거의 한 달 넘게  운동을 멈췄다. 마음의 배둘레가 늘었다.


        역시 아침 운동이 좋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순수 스트레칭에 가깝지만 그래도 좋다. 10분 정도 폼롤링을 하고, 스트레칭 한 세트, 맨몸 운동 한 세트를 번갈아 가며 한다. 세트 사이사이에는 이를 닦고, 이을 개고, 어젯밤 허물들을 쓸어 담는다. 새로운 하루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안 다치고 오래오래, 꾸준히 이어갔으면. 혹여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같은 이유는 아니었으면. 낭만주의자는 목표 세우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돌이켜보면 지난번 실패도 무리하게 세운 목표 탓이다. 목표를 세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시간" 축을 전혀 고려하지 않다. '이런저런 운동이 좋다더라'만 생각하고, 그 운동을 매일, 몇 주에 걸쳐 꾸준히 해야 하다는 사실은 관념하지 못하였다. 


        시간 축을 고려하니 세 가지가 좋다. 첫째, 최종 목표가 명확해져서 좋다. 강히 원하지 않더라도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고 종착지를 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 할 일이 명확해져서 좋다. 이는 최종 목표로부터 역추론하여 얻는다. ‘최종 목표가 무엇이므로, 중간 목표는 무엇이고, 따라서 오늘 할 일은 무엇이다’는 식이다. 셋째, 오늘 할 일의 지속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 할 일을 붙잡고 다시 최종 목표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 행위를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다다음주도 지속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러할 수 없다면 최종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실패가 뻔한 도박은 피하는  상책이 때문이다.


        겸사겸사 글쓰기 습관 돌아본다. 내 글쓰기 “시간” 축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는 결국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그토록 많은 기회비용과 정력을 소모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고민이 없었. 모든 글쓰기를 관통하는 정수를 깨치기 위해서? 글쎄, 지금은 그런 게 있는지도 회의적일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방법이 잘못되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쓰기는 재미없는 글쓰기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재미가 없다. 좋은 글은 특정 취향을 저격하는 하나의 놀이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모험이 있고, 목표가 있다. 시 축이 있다.


        새해도 벌써 한 주를 가득 채웠다. 목표란 단어가 부담스러운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제자로 삼일차를 무사히 넘겼는데 이번 신년 계획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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