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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Aug 31. 2022

파란 하늘 종이비행기 (단편 소설)

알버트의 하루

13살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종이비행기는 아이의 머릿속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입으로 중얼거리는 비행기 엔진 소리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 진지했다. 그런데 무전기에서 누군가 나를 호출하고 있는데...?


"치... 이잌.. 치... 알.. 알버.. 알버..."

".... 들리... 느.. 는."


앗!!!!!


"알버트!"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선생님이 몇 번이나 널 불렀는데.."


선생님은 마치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찔러 넣고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아차, 지금은 수업시간이었지..'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건지,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곁눈질로 동급생들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나는 그야말로 순둥이다. 낯선 아이들 앞에선 아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그런 순한아이.


"알버트... 지금 종이비행기나 가지고 놀 때가 아니란다. 앞에 설명한 문장을 읽어는 보았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냐.. 수업에 집중하렴"


문학수업은 언제나 지루하다. 알지도 못하는 내용의 저 책을 줄줄이 읽는다고 여기 앉아있는 아이들이 모두 문학가가 되지도 않을 텐데, 그레이스 선생님은 왜 저리도 열심히 똑같은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는 것일까? 심지어 내년에도 그 내용은 그대로 일 텐데 말이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라면 마치 약에 취한 듯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나는 어려서 크게 고열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보다도 더 어렸을 적을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기구들이 둥둥 떠있는 새로운 세상이 지금 이 교실에도 공존하고 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우리는 총알처럼 교실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젠 축구를 할 시간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쉬는 시간 15분간의 진정한 의미는 축구라는 의식을 통해서만 성스럽게 사용될 수 있다. 군인은 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우리는 운동장에서 땀을 흘린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없다. 성스러운 의식을 마친 전사들은 헝클어진 머리와 흙투성이가 된 셔츠를 입고 자랑스럽게 교실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나는 축구에 관심이 없다.


운동장 저편 계단 한편에 앉아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뭐가 좋다고 저 동그란 공을 죽자 살자 쫓는 거지? 친구들의 저 열정이 부럽다..'


무표정한 채로 터벅터벅 교실로 향한다.


'아냐! 잠시 혼자 바람을 보러 가자~'


수업 종소리를 못 들은 척 옥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파란 하늘 아래 혼자일 수 있게 되었다.


"아.. 다음 시간은.. 뭐였더라? 종교활동 시간이구나. 그럼 아마 몇 시간은 다들 내가 없어진 것도 모를 거야.. 킥킥"


마음 편히 다리를 죽 펴고 하늘을 바라본 채로 깍지 낀 두 손을 베개 삼아 누었다. 잠시 눈을 감으니 산들바람이 느껴진다. 그러나 잠들기는 싫다. 얼른 그늘을 찾아 그곳에 자리를 다시 잡았다. 그늘은 언제나 내게 선글라스가 되어주는 소중한 친구다. 이젠 눈을 감지 않고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미소가 절로 흐른다.


나는 파란 하늘을 캠버스 삼아 아까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종이비행기를 저 높이 그려본다.


"쳇 그레이스는 뭘 몰라~ 그깟 책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어차피 다 잊어버릴 그런 내용을 읽어서 뭐한담."


소심한 내 마음은 괜스레 선생님을 탓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곤 잠시 상념에 잠긴다.


저 하늘의 구름은 흘러가지만, 생각은 잠시 멈춰버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비행기가 긴 꼬리를 남기고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상상 속의 종이비행기는 항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한참이 지났을까 문뜩 시계를 본다.


'어? 지금 몇 시지?'


"앗! 차.. 차차차.... 아.... 하핳.. 하하하하하"


'바보 같은'


"아직 15분도 안 지났잖아.."


파란 하늘에 취했던 탓일까, 나는 분침과 시침을 거꾸로 읽었다. 오히려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긴장감이 제 시간을 찾은 안도감을 극대화 시켜주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희열은 또 다른 기쁨이다. 안도감이 찾아오자 천천히 눈이 감긴다.


완전히 자유를 만끽하며, 고요한 편안함을 즐긴다.


누군가 깨워줄 때까지 지금의 자유로움을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차분한 미소를 짓는 알버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브라보. 알파. 제로.제로 원...BA001 ....고도 3만 피트....  순항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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