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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29. 2024

제비는 이렇게 이삿집을 찾는다.

 내게 꼭 맞는 이삿집은?

지난봄

겨울이 지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절기에

문경 누이집에서 며칠 머물렀다.


사과나무엔 하얀 꽃망울을 맺히기 시작했고

앞 개울엔 봄나들이 나온 올챙이 새끼들이 까맣게 몰려다니고  

로터리를 쳐서 높은 두둑과 깊은 고랑이 만들어진 텃밭은 모종 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5일장이 열리는 읍내 시장에 들러

고추, 가지, 참외, 토마토 모종을 사 와서 정성스럽게 심고 물을 주었다.


종류대로 심은 서너 포기의 이 모종들이 자라면

누이의 식탁뿐 아니라 멀리 부산에 사는 우리 집과 세종에 사는 형님 집의 식탁을

싱그러운 푸성귀로 가득 채울 것이다.

농사일로 바쁜 가운데도 누이는 철마다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택배로 부쳐준다.

감사할 따름이다.




농사일하느라 흘린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마당 위 전깃줄에 앉아 재잘거리던 제비 여러 마리가 수시로 현관 처마밑으로 날아들었다.

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현관 앞 전등갓 커버에 제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현관 처마밑에 둥지를 틀 모양이다.

비와 외풍을 막아주고 뱀 같은 상위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인가의 처마밑,

둥지 후보지 바로 앞 전등갓 커버와 마당 위 전깃줄은 날개 접고 쉬기도 하고

먹이를 물고 와서 새끼를 보살피는데 최적의 환경으판단한 모양이다.

제비 한 쌍뿐 아니라 여러 마리가 수시로 처마밑을 날아들었다.


작년까지 살았던 헌 집을 버리고 새로운 둥지를 틀 수 있는 최고의 장소를 발견하여

'위치가 어떠냐?' 묻거나 '최고의 장소이지!'라고 자랑하고

서로서로 새 둥지 후보지의 위치와 여건을 살펴봐 주는 듯했다.

새집으로 이사할 제비뿐 아니라 이웃 또는 형제자매 제비들이 다 한 번씩 찾아왔다.     

낮부터 저녁까지 제비 여러 마리가 기웃거리고 거실창 가까이 날아드니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부에게 박 씨를 물어다 주고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라는 판단으로 비교적 친근한 제비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잠을 깨울 재잘거림, 새똥과 진흙으로 지저분해질 현관 밑을 생각하면

제비의 입주를 허용해선 안될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처마밑에 지어놓은 땡벌 집을 떼어낸 적이 있다.

'상부상조의 마음으로 입주를 허용했다가 땡벌에 쏘일 위험이 있다'는 판단은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입주 불허' 표시로 빗자루를 집어 들고 처마밑으로 날아드는 제비를 향해 흔들었다.

제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처마밑을 확인하고자 수시로 날아들었고

더러는 하늘 높이까지 날거나 마당 위 전깃줄에 조롱하는 듯 앉아 있다가     

소리치며 흔드는 빗자루를 빠른 날갯짓으로 비껴 날랐다.

몇십 분을 그렇게 다투었고 팔이 아파 잠시 휴전을 청했으나 제비는 번갈아 가면서 날아들었다.  


다시 전투.

짧은 팔로 흔드는 빗자루로는 제비를 막을 수가 없었고

반복되는 시도에 지쳐갔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있는 인간은 하늘을 나는 날개를 가진 제비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가?



전략이 필요했다.  

'스스로 떠나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닐봉지로 현관 앞 전등갓 커버를 씌웠다.

먹이를 물고 와서 노란 주둥아리가 째질 듯이 짹짹거리는 새끼를 바라보거나  

새끼들 등쌀을 피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전등갓 커버가 무엇에 덮혀져 있는 것을 발견한 제비들은

수 차례 처마밑을 확인한 후 아쉬운 듯 하늘높이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처마밑으로 날아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기까지 제비 한쌍이 몇 번 더 마당 위 전선에 앉아 있다가 처마밑을 스쳐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제비 한쌍이 몇 번 처마밑을 확인하듯 날아들더니만

어딘가로 가버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입주 환경이 변하자 미련을 버리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 버렸다.




결혼 후, 이사를 열 한 두 번쯤 했다.

이삿집을 물색하고 좋은 집을 발견한 후 이사 전에 친구들에게 자랑하거나

나에게 어울리는 지역과 여건인지 물어본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자식 키우기에 좋은 장소에 내 삶의 터를 일구지 않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투기심으로 몇 차례나 이사를 했고

남들에게 알려지면 가격이 오를까 봐서 계약을 서두르기도 했다.


이삿집을 선택하는데 고려할 여러 조건 중에

두 가지라도 조건과 환경이 맞지 않으면 선택을 주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돈과 투자에 관련된 것 외 다른 모든 조건은 무시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도 무모하게 결정하는가?


제비와 같은 미물도 좋은 이웃, 편안한 기운, 편리한 시설 등을 따져 이삿집을 찾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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