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는 물리학도 이야기
우리 남편은 물리학자이다. 형이상학의 학문의 사고는 잘 하는데, 그 외의 것은 잘 못하고, 관심도 없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크루드라이버 하나 돌리는 것도 왼쪽 오른쪽 방향을 헷갈려하고, IKEA 에서 사온 것 조립도 못한다. 귀찮아한다기 보다 두려워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런 남편은 항상 정당화와 변명으로 하는 말이
- 물리학자들은 원래 그래.
그러면서 다른 과학자 이야기를 한다.
- 뉴턴이 어땠는지 알아? 한번은 친구들을 초대해 놓고, 음식을 다 차려놓고는 친구 기다리는 시간에 다시 연구를 시작한거야. 그동안 초대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데, 친구들은 제 시간에 와서 뉴턴이 없으니까 계속 기다리다가 그냥 자기네들끼리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뉴턴이 나왔네? 그러면서 친구들한테 하는 말이, '아, 자네들 왔는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배고프겠네. 식사 준비한다는 걸 깜빡 잊고 말았네' 라고 했대.
-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어떤지 알아? 한번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데 차장이 와서 기차표 좀 보여달라고 하는거야. 근데 기차표를 잃어버린거야. 계속 뒤적뒤적 하는 걸 보고 차장이 아인슈타인을 알아봤어. 반가와그러면서 기차표 안보여줘도 된다고 하는데, 아인슈타인이 계속 표를 찾는거야. 그래서 기차표 안보여줘도 된다고 하니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 제가 기차표 찾아야 합니다. 제가 어느 역으로 가는지 잊어버렸거든요.' 했대.
그러니까 물리학자는 워낙 연구에 집중하고 생각을 골똘히 하기 때문에 건망증 심하고 덜렁거리고 자주 잊어먹는 것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자기합리화이다. 그럼 자기도 노벨학상을 받아와보던지. 하면서 쳇 하는게 내 평상시 반응이다.
자기합리화인줄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하도 듣다보니 우리 남편 말고 다른 물리학자들에 대한 그런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고정관념을 뒤집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여행할 때 민박하게 된 어떤 사람이었다.
주어진 주소로 도착하니 그 주변에 온갖 목자재와 프로젝트 타프천막이 널려져 있었다.
- 이건 왠 공사 프로젝트지?
집 짓기에 관심이 있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트렘폴린 방방이가 있는데 그 주변을 맨발로 다닐 수 있도록 산책로를 공사하고 있었다. 집 한켠 뒤쪽에는 발코니를 개조해 한 방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집 주인 남편이 목공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20대 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은 60대 노인이 된 중국계 미국인이다. 프랭크.
그 아내 제인은 백인이다. 우리를 환영하며 쿠키와 아이스크림을 준비해줬다. 둘이 만나 결혼해 슬하에 자식 둘이 있다고 소개했다.
집이 신기하게 생겼다. 두개의 집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Corrie Ten Boom 의 <Hiding Place>. 그 집은 높이가 맞지 않는 건물 두개가 연결되면서 구조적으로 특이하게 된 집이었는데, 그 특징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 나치점령 시기 동안 여러 유대인들을 숨겨줄 수 있었다.
-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기에 좋아하겠네.
집을 찬찬히 구경하니까 설명을 해준다.
- 원래 집 하나 였던거에다가 추가로 옆을 터서 또 집을 확장한거에요. 프랭크가 그렇게 했어요.
- 어머나 정말요?
최근에 외국에서 돌아온 딸을 위하여 밭을 꾸미고 그 주변의 둘레를 세우고 있다. 루이스는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아내와 딸이 그런다.
- 좋긴 한데, 공사가 끊이질 않아요. 깨끗하고 정리정돈 상태로 유지되는 적이 없네요. 이제 그만 뭐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원래 이런거 만드는거에 소질이 있으셨나봐요?
제인이 손사래를 친다.
- 아니요~ 드라이버 하나 못 쓰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한 10년 전부터 뭘 짓는걸 한두개 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여기에 빠져들었어요.
그러자 프랭크가 거든다.
- 내가 진짜 하고 싶던게 물리학박사 따는 거였어요. 중간에 그만뒀지.
- 어머나. 우리 남편이 물리학 했는데. 놀랍네요. 물리학자는 손으로 뭘 못 만드는줄 알았어요. 우리 남편은 자기가 물리학자라고 스크루드라이버도 못 만지다고 그랬는데.
하며 입술을 삐죽내밀었다. 그러자 허허 웃는다.
- 그러게. 난 그가 부럽다오. 사실 물리학은 나한테 그렇게 맞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사실 나보단 아버지가 원했지.
사람 참 살고 볼 노릇이다. 이렇게도 사람은 변할 수 있나?
사람은 변한다고도 하고 안변한다고도 한다.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이 하도 안 변해서 이혼한다고 하고, 남편은 여자가 너무 변해서 이혼한다고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난 남편이 제발 변했으면 좋겠다.
근데 난 사람은 안 변한다에 표를 실어주는 편이다.
그냥 관심이 있으면 내가 직접 배워서 하는게 속편하다.
아주 흥미로운 가족사를 지닌 루이스.
루이스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여덟 명 중 셋째로 태어난 루이스. 그 아버지는 아주 특이한 캐릭터인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캐릭터가 없다고.
아버지는 일본어가 능통하고 인텔리한 사람이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에 가서 중국 스파이로 일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중국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의 스파이 시절의 생활습관은 그대로 남아서 자꾸 밖에 돌아다니시고 집에 계신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가족의 실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으면서 자식욕심은 있어서, 꼭 자식 중에 박사를 만들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첫째 형이 집을 떠나자 그 둘째 아들인 루이스에게 그 기대가 모아졌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미국에서 물리학공부를 시작. 그런데 결혼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할 필요 떄문에 변리사 자격증을 따고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리학공부를 그만두었는데, 그 아버지는 실망을 이만저만 하신게 아니였다고 한다. 아들놈들 믿을 것 하나 없어... 를 되내이던 아버지가 어느날,
- 아들들이 박사가 안되니, 내가 해버려야겠다.
하시더니 아예 집에서 나가셨다고 한다. 2년 동안 잠적하시고 깜깜 무소식이었던 아버지는 acupucture 수지침 박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직도 어떻게 수지침박사를 2년만에 하고 오셨는지, 가족 모두 알 수 없는 미스테리라고 한다. 아무리 서양의학과는 다른 수지침이라고 해도, 그런 쪽의 의료박사가 되려면 어느정도 석사에 해당하는 의료 관련 상응하는 자격이나 경험이 있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스파이 시절 당시 거짓말(?) 하는 데 능통하신 소질을 발휘한게 아닌가 싶다.
그 아버지는 미국으로 오셔서 LA에서 미국 최초 수지침 의료전문 훈련기관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후예를 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곳에 가면 아버지에 대한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교과서로 쓰이는 책을 쓰셨는데, 그 책은 아직도 아마존에서 살 수 있다.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나 될 법한 인생이다. 일본과 중국, 미국을 넘나드는 게, 스케일 큰 것도 그렇고, 전직 스파이라니! 스파이를 아버지로 둔 사람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전직 스파이 수지침 의료박사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Catch Me if You Can >영화가 생각난다. 어릴 때의 삐딱한 인생으로 인해 비록 도둑질과 사기를 치고 다니지만 타고난 명석함과 천재성이 돋보이는 주인공의 이야기. 미국과 프랑스를 누비며 때로는 의사로, 때로는 법률가로 지내며 사기를 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은근히 매료되면서 그런 주인공이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성공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과 일본과의 전쟁 등 아군과 적군이 뒤바뀌고 한번에 시대가 바뀌는 광풍의 시기를 지나면서 그 아버지는 참 카멜레온처럼 상황마다 변하며 일인다역의 참 많은 것을 이루어 낸것이다.
내가 보기엔 물리학박사를 하다가 집짓기 명사가 된 이 아들도 아버지 못지 않다. 아버지는 스파이를 했으니, 이것저것 둘러대는 능력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한데, 물리학을 했으면 (우리 남편에 의하면) 오로지 할 줄 아는 것이 공부 하나 밖에 없어야 하는 사람이 변리사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이제는 집까지 짓는다니!
이런걸 부전자전이라고 하나.
미국에서 살면서 여행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는 이렇게 시대와 나라를 뛰어넘는 인생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간극장> 이 아니라 <세계인간극장> 이라고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