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가족모임 식사 이모저모
추수감사절 당일인 목요일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가장 큰 명절이다. 독립기념일과 함께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가장 미국스러운 명절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된 영국 청교도 이민자들을 아사 직전에서 구해준 인디언들과의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명절이다. 인디언들이 가르쳐준 농사법으로 전멸 위기를 이긴 청교도인들은 새 땅에서 처음 수확한 농작물과 야생 칠면조를 잡아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귀향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미국 사람들은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기도 하며 가족을 찾아간다. 땅덩이가 워낙 커서 자동차보다는 비행기를 이용하긴 하지만.
한편 사회적으로 가족이 없거나 이민자, 저소득층 등의 사람들도 최대한 소외받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 도시에서는 교회가 주최가 되어 여러 단체가 시민들에게 추수감사절 커뮤니티 식사를 제공한다. 굳이 소외계층이 아니더라도 그 동네 살면 누구든지 가서 음식을 받아올 수 있다. 단체들 이름도 알리고, 함께 모여 서로 얼굴 트자는 의미
유학생들도 추수감사절에 참여할 수 있다. 유학 시절 당시 난 가족이 미국에 없었음에도 추수감사절은 기다려지는 명절이었다.
첫해에는 다른 외국 친구들과 그랜드캐년을 놀러갔고, 그 다음 해에는 근처 가족에 초대받아 갔다. 국제학생센터에서 근처 미국 가정을 연결해줘서 추수감사절 미국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주선해준 것이다.
또 어떤 해에는 추수감사절 음식 몇개 하는 법을 배워서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끼리 모여 우리끼리 잔치를 했다. 요리해 먹고 그 영수증을 학교에다 제출하면 학교에서 음식값이 나왔다.
코로나 시국에도 추수감사절의 전통은 이어져야만 한다. 추수 감사절 한달 전부터 자기네 OO에 와서 Community meal 을 받아가라는 현수막/ 푯대가 군데 군데 보이기 시작하고 페이스북에 로컬광고가 뜬다. 그중 한군데 신청을 해놓았다. 당일날 가서 추수감사절 커뮤니티 식사를 받아왔다.
다인인 dine in (안에 들어가서 식사하는 것)은 안되고 캐리아웃 carry out 만 된단다. 코로나 때문이다. 차를 길가에 정차해놓고 기다리면 봉사자들이 건물에서 음식을 비닐봉지에 넣어 갖고 나온다. 가족 숫자대로 여섯개가 나왔다.
집에 와서 땡스기빙 도시락 파티를 했다.
햄, 터키 (칠면조), 스터핑 (빵조각인데 칠면조 육즙과 시즈닝으로 버무려놓은거), 매쉬포테이토. 그린빈, 그레이비 (소스) , 크랜베리소스, 펌킨파이 등 추수감사절 트레이드마크 음식이 다 들어있다. 미국 전통 음식이라 할만 하다.
안면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음식을 주다니.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 나라를 축복해 주소서. 참 미국은 넘치는 풍성의 나라이다. 아이들도 이렇게 공짜로 나눠주는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신나하면서 잘 먹었다.
그리고 진짜 추수감사절 하이라이트는 오늘 저녁이다.
매들린네서 우리를 초대 했다. Pot luck 팟럭 스타일이다.
일반적인 땡스기빙 음식이 아니면서도 다들 좋아할 것 같은 걸 고민하다가, 아시안 스타일 누들, 카사바로 만든 쫄깃한 떡 같은 디저트, 베이컨과 채소볶음을 준비했다.
코스트코 펌킨파이 선물 받은 것도 가져간다.
형제가 여섯인 매들린. 부모님과 모든 형제 부부와 그 아이들이 온단다. 동생네 시부모도 온다니...
어른만 세어보니 18명이다.
애들은 몇명인가?
세어보기를 포기했단다. 매들린네는 애가 다섯명인데, 우리애들만 네명, ... 애들 많이 낳는 남부인 기준으로 평균 세명이라 치면... 족히 스무명은 넘겠다. 한 서른명 되는거 아니야?
우리 애들이 "꺅~~ 사람들 진짜 많겠다!! "
지금까지 여러 가정에 가봤지만 가장 붐비고 사람많은 곳이 될것 같다.
매들린네 집에 도착. 몇명과 인사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가 도착해도 별 동요가 없다. 우리가 있는 동안 거기 있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못했을 정도.
매들린의 엄마와 아빠를 만났다. 매들린의 엄마는 아빠의 두번째 부인이다. 매들린이 미리 귓띔으로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첫번째 부인이 집을 떠나고 매들린의 아빠는 졸지어 홀아비가 되어 혼자 아이들을 봐야 했다고. 그 때 베이비시터 하던 엄마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이 정도 썸 탄 이야기는 이제 미국에서는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 쎄고 쎈 이야기.
첫째 부인으로부터 난 매들린의 배다른 형제--언니와 오빠--도 와있었다. 같은 엄마에게 난 오빠의 부인, 즉 올케는 푸엘토리코 사람인데, 나에게 아주 따뜻하게 대해줬다. 학교 급식선생으로 있는데, 자기는 자기 직업을 사랑한다고 했다. 취학자녀가 있는 사람에게 완벽한 직업이라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들을 모두 세어보니 스물한명의 손자와 증손자 한명. 그중 세명은 (매들린을 통해) 입양한 손주들이다.
거기 우리 애들 네명까지 더해져서 총 스물 여섯명의 미성년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을 더하면 50명이 넘는다!!
음식이 부엌스탠드에 펼쳐있다. 어마어마하다.
칠면조 고기만 몇 트레이가 되고 사이드디쉬가 열개는 넘는 것 같다. 이 정도 되면 부페 수준!
디저트를 위한 테이블은 아예 따로 있다.
우리가 가져간 것 까지 포함해 펌킨파이 두개 말고도, 고구마파이, 초콜렛파이,치즈케익, 에그노그파이도 있다. 에그노그는 음료 이름인데... 그걸 파이로 만든다니. 신기.
오레오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누가 사왔는데, 그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그거 먹으려고 아이들이 줄 섰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케이크를 못 먹은 아이는 급기야 울기까지 했다.
음식을 서빙하기 전에 매들린 남편 BJ 가 대표기도를 했다.
이 나라를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
우리 선조를 이 자유의 땅으로 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다고.
가족이 모여서 감사..
짧지만 굵게 기도했다. 가족이 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진 않지만, 애국심 하나는 동일하다. 미국 사람들처럼 애국심이 출중한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배불리 먹고 난 후에도 음식이 많이 남았다. 과일과 디저트를 먹으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저 많은 음식은 이제 나중에 다들 싸들고 갈거다.
이런 미국적인 전통을 미국가정과, 그것도 50명이 넘는 대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