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와 한나의 연애 및 결혼 이야기를 했었다. 결혼식은 미국으로 와서 크리스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했다고. 벨리즈에서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도 왔다. 러시아에서는 도저희 결혼식을 할 수가 없었다. 여러 비자 문제로 타국민이 러시아에 들어오는 것이 힘들었다. 그 둘이 결혼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1980년 말기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러시아에서 혼혈 부부로서 여러 고생을 하였다. 러시아는 외국인을 많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많이 궁금해 하면서도 배타적이라고. 크로스빌이 밖에 나가면 모두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한다.
경찰들도 괜히 와서 문서 좀 보자고 하며 외국인을 괴롭히곤 했다고 한다. 합법적 체류를 증명하는 문서가 없으면 곧바로 경찰서로 끌고 가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그런 괴롭힘을 크리스가 특히 많이 받았다고 한다. 외출을 나가려면 꼭 여권과 비자 등 서류를 챙겨서 들고 다녀야만 했다고. 러시아에 간 선교사들 중 아시안계들도 비슷한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는데, 그나마 그들은 모자와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다니면 되었지만, 크리스는 피부 색깔 자체가 너무 튀었다고 한다.
그곳에 나치 추종자들 스킨헤드가 판을 친다고 한다. 심지어 히틀러의 생일을 기념하기도 하는데, 그 기념기간이 일주일을 간다고 한다. 그 때가 되면 크리스는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12년을 지냈다고 하니, 정말 오랫동안 고생을 한 것이다. 그래도 뭔가 보람이 있고 뜻깊었으니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겠지.
그 둘은 러시아에서 사는 동안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았다. 사실 실제로 출산을 한 것은 미국에서라고. 그 둘은 미국시민권과 벨리즈 시민권을 갖고 있다.
그렇게 러시아에 사는 동안 둘째인 딸은 여섯 살부터 실내체조를 시작했고, 열 여덟살인 지금껏 실내체조를 계속 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다.
러시아에서 12년을 살고 그 후 브라질에서 8년을 살면서 또 해외 선교사로 살았다고.
첫째 아들은 브라질로 이사했을 당시 열살이었다.
둘째인 딸은 여덟살이었다.
그 둘은 브라질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러시아어가 아닌 브라질어, 즉 포루트갈어를 다시 배워야만 했다.
그래도 러시아에서 살던 것에 비하면 브라질은 훨씬 대우도 좋고 살기가 좋았다고.
브라질로 가서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셋째를 낳았고 그 아이는 브라질에서 낳았다. 그 결과 셋째 딸은 미국시민권자이면서도 브라질 시민권자라고.
그 아이 셋을 집에서는 영어하고 학교에서는 포루투갈어를 배우고, 방과후에는 실내체육을 계속 배우면서 키웠다. 우선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상황에 놓이고, 미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 국제적인 시민으로 자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곳 크리스의 고향인 미국 텍사스로 다시 이사온 것이 3년 전이었다.
크리스는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한나는 insurance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이사다니고 특히 해외이주를 여러 번 한 가족답게 많은 가구나 decoration 없이 단촐하게 살고 있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 가끔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나누고 자녀들이 부모님 말씀을 정말 잘 듣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은 무형자산이 부자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특히 첫째와 둘째가 일반 미국아이들 같지 않게 성숙하고 점잖았다. 그리고 남에게 관심을 갖고 흔쾌히 집에 초청하고 식사에 초청하는 등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에게 거리를 두는 미국아이들 같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그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것도 그 둘째 딸이 우리 첫째와 둘째에게 "너네가 우리집에서 머물면서 중고등부 여름성경학교를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초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름이 한창인 7월 중순에 그 집에서 일주일, 정확히 9일 동안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