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째가 하는 홈스쿨 프로그램 중 여러가지가 획기적이지만 그 중의 하이라이트이자 아들래미도 가장 기대하고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모의재판 mock trial 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한학기 동안 분석하고 역할을 정해서 다른 지역의 홈스쿨 그룹과 검사인단 변호인단으로 나뉘어 경쟁한다.
간혹가다 인맥이 닿으면 모의재판을 실제 법정에서 실제 판사 앞에서 하게되기도 한다. 엄청난 기회.
우리 홈스쿨 그룹은 남편이 연방검사인 지역코디네이터를 둔 관계로 별 무리 없이 매년 법원에서 모의재판을 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년 코로나 때문에 법원 전체가 닫히는 바람에 작년 그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연방검사#코로나법정#모의재판이란
2022년 올해도 법원에 설수 있는지가 불투명했다. 1월말에나 법정이 다시 열릴지 알수 있다고 했다.
어제 홈스쿨 선생님 안드레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 법정이 다시 선다고.
- 우리 그룹도 실제 법정에서 판사를 모시고 모의재판을 할수 있게 되었다고.
- 모의재판과는 별개로, 실제 재판을 참석할 수 있는 견학기회가 생겼다고.
우리 홈스쿨 그룹과 법원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 사람은 홈스쿨 지역 코디네이터의 남편으로, 주립법원의 검사이다. 그 검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법정 케이스가 있는데 홈스쿨 학생들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았다.
견학날이다. 재판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도 재판장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재판에 초대(?)를 받아 가니 왠지 신났다. 사실 생각해 보니, 미국에서 나도 재판정에 들어가 본적이 두 번 있긴 하다. 첫번째는 과속으로 걸려서 법정에 소환되었던 것. 두번째는 집주인한테 보증금을 떼이고 소액재판정으로 내가 집주인을 고발했을 때, 8년 전 소액법정에 참석한 이후 오늘이 처음이었다. 패소를 당하고 보증금을 못 받은 내 아픈 과거... 8년 후에 이제는 구경꾼으로... 또 민사재판이 아닌 형사재판으로 오늘 처음 경험하러 간다.
범죄 케이스다. 다름아닌 우리 지역에 고등학교 갱단이 있다고 한다.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 그냥 순박한 시골뜨기들이 사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튼 그 갱단의 리더급 되는 멤버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오늘이 형량을 결정하는 날이라고 한다.
- 법정에 갈 때 의복차림 -
의복차림을 드레스코드라고 한다. 법정 드레스코드를 알아봤다.
남자는 긴바지와 셔츠 구두면 된다고 했고, 여자는 치마 또는 긴바지와 블라우스 차림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운동화보다는 구두를 신을 것을 추천하는데, 아들은 그냥 운동화 신고 갔다.
- 법정에 들어갈 때 참고사항 -
- 코비드 : 마스크 필수
- 보안 검색 :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보안 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금속감지기에 들어가기 전 허리띠도 빼고 신발도 벗어야 한다. 공항에서 하는 검색보다 더 심하게 한다고 보면 된다.
- 핸드폰 : 들고 못들어간다. 검색대에서 있는 사물함 같은 곳에 넣고 가야 한다. 사물함은 자물쇠가 없이 책꽂이 같은 열려있어서 내용물이 다 보인다. 아예 차에 두고 내리는 것이 현명하다.
- 음료수 : 들고 못들어감. 커피 등 모두 버려야 한다. 대신 빈 물컵 (종이컵)은 들고 들어갈 수 있다. 건물 안에 물 water fountain 마시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이 없으니 사진은 못 찍고, 집에 둘째와 셋째가 자기도 법정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나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흔히 텔레비전, 영화 등에서 본 광경과 비슷하다.
왼쪽 변호인 쪽에는 죄수가 수갑을 채우고 앉아있었고 그 뒤쪽으로 가족으로 보이는 젋어보이는 여자들이 많이 와있었다. 흑인들이었다.
변호사는 키큰 여자였다. 늘씬하고 기다란 생 금발머리를 정장 뒤로 풀어내렸다.
우리는 우리를 초대한 검사 뒤로 앉았다.
변호사와 검사는 한번도 뒤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여자 변호사는 왠지 젊은 초짜배기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죄수가 제대로 변호를 받을 수 있을지?
판사가 입장하자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사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FBI 요원으로서 재판이 시작되자 검사 측 증인으로 나와서 증언했다.
곧 이어 검사는 이 죄수가 ( 24세) 얼마나 악질이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그가 판매한 마약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났는지, 이 조직에 계속 미성년자를 섭외하며 얼마나 더 많은 범죄자들을 양성해왔는지, 그리고 감옥에서조차 페이스북과 조직내 동료에게 연락해서 증인들을 협박했다고 여러 증거를 보여주며 이렇게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자는 형량을 낮추지 말것을 촉구했다. 법에 대해 전혀 존중하는 마음이 없는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고.
검사가 제시한 이 사람의 형량은? 무기징역 + 10년. 그가 유죄로 입증된 범죄들 (마약소지 마약판매 총기소지 미성년자 범죄섭외 등) 각각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다 더하면 이러한 형량이 나온다고 한다.
13세부터 도둑질과 차량절도를 일삼아 온 그의 과거를 낮낮히 들추며 그의 형량을 낮추지 말것을 판사에게 촉구했다.
이제 변호사의 차례였다.
변호사는 이 사람이 죄질이 많지만, 어찌 보면 이 사람 자체도 사회의 피해자이며, 이미 피고인 자체도 미성년자일 때 자기 학교 운동코치였던 마약사범을 통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불쌍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죄수는 어릴 때부터 같이 친구며 가족 등이 모두 전과자로서, 범죄자로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하나의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그를 변호했다.
이미 감옥에서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죄를 뉘우치고 서서히 나아진 삶을 살고 있다며 형량을 낮출 것을 구했다. 법에 대한 존중심은 30년 형이면 충분하다고. 무기징역을 때린다고 해서 법에 대한 존중심은 생기지 않을 것이고, 이미 사회적인 인식을 봐도, 마약과의 전쟁에 있어 이렇게 형량만 늘려서 사람을 감옥에 집어 넣는 것이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사범이 살인자보다 더 많은 형을 사는 일은 여론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유죄판결 받은 죄수를 열심히 변호한 변호사에게 나는 이미 마음이 홀딱 가있었다.
솔직히 재판 시작 전에 '금발의 백인여자가 흑인죄수를 온전히 제대로 변호해줄 수 있을까?'라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이다. 그런 내 편협적인 생각, 기대 이상으로 전심을 다해 이 죄수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왠지 고마웠고 감동이었다.
특히 판사에게 변호사가 "이 사람도 어찌보면 피해자이다" 라고 말할 때 눈시울 까지 뜨거워졌다. 그 죄수의 증명된 죄목 너머의 그의 인생, 어쩔 수 없었던 그의 상황을 파악하여 그를 효과적으로 변호하려는 이 사람의 노력에 내가 고마웠다. 정말 흥미진진한 재판이었다. 그리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주 젊지만 그 얼마 안되는 삶을 낭비해 버린 한 인생을 보았다. 그 십여년간 연이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의 인생을 감옥에서 썩게 생긴 죄수를 보며 마음이 참 착잡했다.
반면 그를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금발 백인 여자 변호사를 보며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이슈에 대해, 또 내 안에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또 저 흑인 피고인과는 정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 변호사, 검사, 판사를 보며, 이들은 어떻게 이 자리에 서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범죄자들 사이에 자란 피고인과는 달리, 유복한 환경에서 자녀를 위해 최선의 환경을 주려고 하는 부모 밑에서 잘 크지 않았을까? 대학교도 잘 들어가고 로스쿨을 가고 지금까지의 삶에 열심히 투자하면서 살아왔겠지.
삶을 결정짓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족의 배경, 개인의 노력, 주변 사람의 영향...
계속하여 변호사와 검사의 쌍방 심문이 있은 후 모두 자리에 앉았다. 이제 판정을 기다릴 차례이다. 그러나,
판사는 오늘 형량을 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양측 모두 주장을 설득력있게 해주었다고 하며 다음주까지 생각해서 형량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판정을 곧바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렇게 발표한 후 판사는 땅땅 판사봉을 내려치고 재판이 끝났음을 알렸다.
변호사는 뒤돌아 죄수 측 식구들에게 뒤돌아서 뭔가 넌지시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어디 룸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 같았다. 보니까 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긴 생머리 금발 때문에 훨씬 더 젊은 줄 알았다. 하튼, 존경심 뿜뿜이다.
검사가 뒤돌아서 우리에게 인사했다. 우리 홈스쿨 그룹을 초대한 장본인이다. 재판 중 죄수를 철저하게 고발하는 검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막상 만나서 인사하니 너그러운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40대 후반, 아마도 50대 초반 되는 아저씨?
우리를 판사에게도 소개해줬다. "Your Honor 판사님, 이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우리 지역의 홈스쿨 그룹입니다. 이 그룹이 올해 공부하는 내용 중에는 모의재판도 있습니다. 5월에 xx 판사님을 모시고 아마 이 동일한 건물에서 모의재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라며. 그랬더니 판사가 "Oh is that right?" 하며 놀라한다. 그러며 재판에 아주 잘 왔다고 우리를 환영해주며, 우리 앞에서 오늘 애써준 변호사와 검사는 자기가 아주 존경하는, 출중한 법조인이라고 소개를 했다. 둘이 너무 잘 해주어서 몇 일 간 고심을 하며 죄수의 형량을 짓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검사는 우리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해도 된다고 한다.
근데 모두 잠잠.... 홈스쿨러들이 아무도 질문을 안하네? 홈스쿨러 하면 질문 잘하는 걸로 유명한거 아닌가?
난 너무 궁금한데... 내가 손들었더니 검사가 반가워한다.
"Yes?"
"What did you do to be here? 어떻게 해서 판사가 되신건가요? 뭘해서 여기 계시게 된건가요? "
판사가 웃으며 자기는 어디 대학을 다니고 어디 로스쿨을 갔고 그 다음에 private 사립 로펌을 다녔고, 조지 부시 (아들) 대통령 때 추천을 받아서 연방판사가 되었다며 "Part luck, part effort 운도 있고 노력도 했지요" 라고 한다. "Just being at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시간과 장소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라며 겸손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 모의재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더니 정말 좋은 기회라고 하며 우리보고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하고 나가신다.
판사가 떠나고 우리 그룹은 남아서 검사와 잠시 또 이야기 했다. 검사아저씨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
"검사님은 어떻게 법을 공부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요? 언제 법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대학 3학년 때 로스쿨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 때 ROTC 에 있었거든요."
군사대학에 다니며 ROTC 를 하고 그 때 로스쿨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 변호사와 검사를 역임했다고. 군대 시절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대만, 한국, 등등...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반가워하며, 자기네들은 대구에서도 몇년간 살았다며 거기서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네들은 둘째 아이를 half Korean 반 한국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검사랑 얘기해 본 건 오늘 처음인거 같다. 그것도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아와 그 집 아들 콜비 그리고 우리 아들래미가 함께 차를 타고 오며 법정에서 느낀 것들을 나눴다. 안드레아에게 "내 주변엔 법조인이 아무도 없어서 이런 경험은 너무 좋았어" 라고 하자, 안드레아는 자기 여동생이 법조인이라고 한다.
가족의 직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가족을 통해 직업에 대한 창구를 갖게 된다. 그런 경험담을 더 자주 듣게 되기 때문에 그 쪽 진로를 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친정 아버지는 기자셨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래도 가족모임을 할 때 만나는 사람들도 기자들이 많았고, 아빠가 저녁식사 때 식탁에서 엄마에게 하는 직장 이야기, 직장 동료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신문 관련 직종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글을 쓰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글 쓰는 것을 업을 하는 아빠 밑에서 자라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빠 따라 연기자욱한 기자실도 몇번 들어가 보고 했던 것이 기억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직업의 문제 뿐이랴. 부모가 아이들의 창구가 되어주는게. 오늘 본 죄수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릴 때 가정환경, 부모의 어떠함, 부모의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세상이 안전한 곳인지 위험한 곳인지. 정직한 노력의 댓가를 해주는 정당한 세상인지, 아니면 차별을 걱정하고, 내 정직과 노력이 부인당하는 곳인지, 법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인지 아니면 나를 억압하는 곳인지. 부모를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우리 홈스쿨 아이들은 모의재판을 준비하고 그 후 법정에 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법률 쪽에 관심을 갖고 그 쪽 진로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값진 경험이 될 것 같다. 우리 가족 중에 법조인은 없지만, 이렇게 재판정에 견학도 가보고 모의재판과 같은 폭넓은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더 넓은 진로의 폭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