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대학시절 딴 짓 못하게 하는 법
미국 미시건 가족 이야기
애덤은 미시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랜드래피즈라는 곳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도시였는데, 거기에서 한시간 거리였다고. 애덤은 그야말로 미국 깡촌에서 자란 것이다. 백인만 있는 동네. 처음으로 동양인을 본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고 한다.그랬던 애덤이 지금은 중국계 아내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잘 살고 있다.
아주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애덤. 전직 직업이 코메디언이었다는데, 이제는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전세계에 출장을 다닌다. 그러면서 여러나라 음식도 맛보고 문화도 체험해봤는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한국음식이라고. 불고기 만든다고, 고기를 얇게 저며서 자른 걸 일반 시장에서 사기가 힘드니까 아예 고기절단기도 사놓았다. 사실 애덤은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 스모커까지 들여놓고 손님이 오면 스모커로 고기를 구워내는 것을 좋아한다. 매년 다른 한 가정과 합해서 소 한마리를 통채로 사고 냉동고에 저장해 놓으면서 때마다 불고기, 스테이크, 브리스켓, 미트볼 등을 해먹는다고.
이번에 우리를 초대해 브리스켓을 스모커에 20시간 이상 익힌것을 선사해줬다. 브리스켓과 고메 샐러드, 매쉬포테이토 먹으며 애덤이 자기가 대학 다닐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덤은 이번에 코로나 동안 조직관리 석사공부도 하고 오랫동안 세일즈를 해온 경험으로 B2B로 회사강의와 컨설팅을 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기에 난 그가 사업 관련된 대학공부를 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정 달랐다. 교회 청년사역자를 하려고 미시건 주의 한 기독교대학을 갔다는 것. 난 그런 전공이 대학에 있는 줄도 몰랐다. 아들이 교회 목회자 한다고 하면 미국 부모님의 반응은 어떨까?
"부모님이 전공을 그거 한다고 하니까 뭐라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완전 지지하시고 찬성하셨어요."
부모님은 매주 교회에 가시는 정통적인 기독교 집안이라고.
"그런데 우리 아버진 저보고 한 조건을 제시하셨어요."
그 조건이라는 것은 학자금대출을 받지 않는 것. 대신 학비의 반을 아버지가 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아들이 대학졸업과 함께 빚을 지고 있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아들의 대학 너머의 인생을 시작할 때 최대한 가볍게 시작하길 바랬던 아버지의 사랑.
'이게 무슨 사랑이야? 아비가 자식 학비 대주는건 당연한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부모가 대학비를 다 대준다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녀가 대학을 들어가는 것과 함께 자녀를 성인으로 취급하며 어느정도 생활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백프로 부모의 학비지원을 기대한다면 자식이 의존적이 되고 오너십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한 대학교육이 순전히 부모의 부담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너가 하고 싶어하는 것, 너의 대학, 그건 너도 함께 짐을 짊어지고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이다. 한편으론 미국 대학은 부모가 다 대줄 수 없을 정도로 비싸기도 하다. 기독교대학이라고 해서 학비가 쌌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고 한다. 사립대학이었기 때문에 학비가 완전 비쌌다고. (미국대학비는 너무 비싸다. 일반 가정이 댈 수 없을 정도의 비용이다. 사립대학은 일년 학비가 4만불이 평균적이고 공립대학, 즉 주립대학은 해당 주 출신에게는 in-state 학비가 1만5천불, out-of-state 학비는 3만~4만불이다. 거기에 기숙사와 음식 등 생활비를 더하면 대학 다니는 비용은 훨씬 더 비싸진다.) 그러므로 아들에게 학비를 어느 정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당연한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거의 대부분 student loan 학자금대출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몇만불의 빚을 지게 되는데, 이 빚은 10년간 일을 하면서 갚아가야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빚과 시작하게 된 학생들, 게다가 일자리가 축소되어 취업이 안되거나 중간에 실업을 하게 되면 이 빚의 부담의 압박감은 견뎌내기 힘들 정도이다. 미국사회의 큰 골치거리 이슈이기도 하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학자금대출을 탕감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많인 이들이 환호하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이미 학자금을 다 갚아버린, 혜택을 못받는 사람들과 혜택을 받는 사람들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학자금을 대출받지 않자고 제의한 것은, 일반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넘어서, 자식의 대학너머 미래까지 고려한,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아버지의 지혜이기도 했다. 아들이 학비의 반을 대는 것을 요구함으로 대학 다니는 시절 동안 한눈 팔지 않고 딴 짓 안하고 열심히 사는 것, 독립적으로 사는 것, 시간을 관리하며 사는 것을 훈련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애덤이 대학을 다녔을 당시는 20년 전으로 그때의 학비는 지금과는 달랐겠지만, 현재의 상황을 기준으로 대학을 4만불이라고 보면 2만불은 부모님이 대주시고 2만불은 자기가 충당해야 한다. 일년에 2만불이라고 하면 한달에 2천불을 벌어야 하는데, 250만원을 버는 것이 지금도 쉽지는 않았을 테니, 그때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애덤은 그야말로 딴 생각, 딴 짓 할 시간이 없이 정말 바쁘게 대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수업 듣고, 과제하고, 공부하고, 주중에 몇일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죽도록 알바를 뛰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코메디 동아리에 들어가서 투어도 다니는 등 (아마 그걸 통해서도 약간의 수입이 있지 않았을까?)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고.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뚜렷한 목적을 갖고 딴짓 안하고 살길 원하셨지만, 아들은 결국 크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이변이 생긴다.
대학교 3학년때 전공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2학년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 교회와 신앙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되었다. 결국 3학년 때 전공 필수 코스인 해외선교,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7개월간 있는 동안,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중간에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프로그램이 마치기 전에 떡하니 집으로 돌아온 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이 전공을 그만두고, 다시 학사 준비해서 다른 대학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어떠한 경제적 보조도 없을 것이다."
"네,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화를 내지도, 아들의 결정을 반대하지도 않으셨다고.
아담은 그 해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미시건 주립대학으로 대학 1학년으로 입학했다. 비록 아버지께서 보조해주신 3년간의 대학전공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그 3년 동안 열심히 시간을 관리하는 법, 목적을 위해 뚜렷이 나아가는 대학생활의 경험은 결실을 맺어, 아담은 일부는 학자금 대출로, 일부는 장학금을, 일부는 알바해서 돈 벌어서 대학을 3년 만에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