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당한 코리안 Oct 07. 2022

자식 셋을 의사로 키운 엄마

버지니아 민박 부부 이야기


앤드류와 루시. 우리 가족이 버지니아를 여행하는 동안 하루밤 민박을 제공해줄 호스트이다. 이 가정에서 이메일이 날라왔다.


환영합니다. 우리 이름은 Andrew Young, Lucy Young 이고 두 딸이 있습니다.

우리 주소는

XXX Lochlyn Hill Ln.

Charlottesville, VA

곧 만날 것을 고대합니다.  


성 last name 이 Young 이었다. 어디 나라 출신 사람일까?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성을 접하게 된다. 이런 성씨가 어느 나라 기원인지 알아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살며 많은 사람들을 접하다보니 이제 성을 들으면 대충 감이 온다. 중국인과 일본인의 성은 말할 것도 없이, 베트남계, 태국 쪽이나 미얀마 쪽의 성씨도 여러번 접하니까 대충 알것 같다. 유럽의 성씨도 이제 대충 많이 알 것 같은 감이 온다. -스키 로 끝나는 동유럽의 성, 서유럽과 북유럽의 성씨도 많이 알고... 유대인 성씨도 대표적인 것이 많다.


Young? 짧으니까 동양인일 수도 있고...  아니야. 대학 다닐 때 동급생 중에 Andrew Young 이란 애가 같인 기숙사에 있었다. 이름도 똑같네. 걔가 어느 나라 출신이더라? 백인인데, 서유럽 출신인 것 같은데. 머리는 까맸어. 하튼간 그 동급생을 떠올리며 젊은 부부, 아마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그런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며 이름, 이번 경우처럼 짧게 오고간 이메일등이 있으면 그 내용과 스타일을 토대로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해보는 것은, 미국에서 여러 가정을 민박을 하고 그들을 실제로 만나며 가졌던 특별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 날이 되었다. 알려준 주소로 가서 집 드라이브길에 주차를 하니,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문을 열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시안 부부였다. 앤드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다고 한다. Young 이 베트남계 화교 성씨이구나. Yeung 으로 보통 스펠링을 하는데, Young 으로 표기하여 쓰기도 하는구나. 새로운 것을 알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의 삶을 나누며 인생을 배운다. 이것이 민박의 또다른 더 큰 즐거움이다. 아시안이라서 그런지 더 친근함이 있다.


이 부부의 나이는? 나랑 남편보다 한 10살 정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Andrew 가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해서 그제서야 60대인 줄을 알았다. 왜소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아담한 일반적인 아시안들 체형이다. 말랐다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남편도 아내도 배 하나 안나오고 날씬하시다. 두 분 다 아주 젊어보이신다.


미국인들도 인정하는 아시안들의 "동안"... 이걸 미국인들은 아시안 유전자 Asian gene 라고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아시안인임에도 동안 유전자가 없다. 그래서 "I don't have that Asian gene. 난 (젊어보이는) 아시안 유전자가 없어요," 라고 체념하듯이 이야기 한다. 그럼 주변에서 "No, no, you look very young and healthy. 아니에요. 젊고 건강해보여요," 라고 말해주지만, 난 안다. 젊을 때부터, 심지어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에도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젊게 보인 적이 없다는 걸. 서양적 체구 (키 173cm) 와 서양적 이목구비, 그리고 곱슬머리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몸매 유지하고 지금 상태를 잘 보존하면 앞으로 20년 후에는 이분들처럼 젊다고 얘기듣고 살지 않을까? 뭐 여튼...


이렇게 동안을 유지하는 이 분들의 직업은 뭘까?


앤드류는 신경외과의이다. 루시는 전업주부로 두 딸을 키우고 딸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쯤부터 시작한 피아노 과외를 아직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존경받고 선망 받지만 그 중 신경외과 만큼 명망이 있는 전문분야도 없는 것 같다. 신경외과의사 하면 2016년 공화당측 대선주자였던 벤 카슨 Ben Carson 이 떠올려진다. 흑인으로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신경외과의가 되어 미국 최초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의사로 유명세를 타게 된 그는 자기의 성공을 어머니께 돌린다. 벤 카슨은 이혼녀 싱글맘인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엄격하게 아들을 키우시며 아이들을 TV를 보는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대신 도서관에 가서 매주 도서관에서 책 두권을 빌려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지도하셨다고 한다.


"아들아, 너가 책만 읽을 줄만 안다면 너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될 거란다."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던 어머니.


생계유지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밤에 돌아오셨던 어머니. 그러나 집에 와서는 아들들이 독후감을 쓴 것을 형광펜으로 줄치며 점검하셨다. 두 형제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사실은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받으셨다는 것, 글을 읽지도 못하시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아들들의 독후감을 읽으실 수 없었다는 것.


벤 카슨은 이런 어머니 아래 의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앤드류는 어떻게 신경외과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원래 의사가 되고 싶었었어요? 대학교 들어갈 때 그 진로를 택할 걸 알고 갔어요?"


그랬더니 대답.

"네. 알고 있었어요. Yea, I knew. "


그런데 이어서 한 앤드류의 대답에 와르르 웃었다.

"알고 있었죠. 그렇게 알고 대학 가도록, 우리 어머니가 아주 확실하게 하셨죠.

I knew for sure. My mom made sure that I knew."


번역으로 그 분위기를 완전히 살리기는 힘들지만, 약간의 자조섞인 목소리로 앤드류가 My mom made sure 하는 것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말일까? 아마도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넌 의사가 될 것이다" 라고 아주 세뇌교육을 단단히 시켜놓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놀라운 건, 앤드류의 두 다른 형제 모두 의사라는 점이다. 삼형제 모두를 의사로 키워놓으신 어머니! 직접 뵙진 않았지만, 존경심이 들었다. 아마 앤드류의 체구로 봐서는 외향도 조그마한 분이실 것 같은데, 거인 같은 존재감이 느껴진다.


벤 카슨의 이야기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벤 카슨은 흑인이었고, 앤드류는 베트남 아시안 이민자였다. 미국 비주류의 가정환경이다. 이 둘의 어머니는 가난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자녀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던 것 같다. 자녀교육 성공의 정상에는 의사라는 직장이 있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의사는 전문직종 중의 꽃이다. 사람을 치료하고 고치는 의사.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6년의 메디컬스쿨을 다니고 레지던트 기간을 견뎌내야 한다. 어마어마한 학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를 악물고 어마어마한 분량의 지식을 공부하여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어진다. 게다가 생명을 살리는 박애주의적인 거룩한 이미지의 직업이다. 사회의 존경과 경제적 자립이 모두 주어지는 의사라는 자리이지만,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돈만 있어서도 안되고, 머리만 있어서도 안되고, 체력, 정신력이 요구되며, 게다가 박애주의적 인류애도 가져야 한다고 하면 너무 과하게 의사라는 직업을 칭송하는 것일까.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도 그 부모가 만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어릴 때부터 부모의 특별한 양육과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선택하기 힘든 진로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떠밀려 의사가 된 경우는 없을까?


"나는 다른 길을 택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원했기에 의대에 가게 되었다" 는 류의 이야기는 유난히 한국에서 많이 듣게 되지, 미국에서는 그런 센티멘탈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자녀의 진로에 있어 결정권을 갖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또 방법에 있어서도 더 강압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자식들의 대학진로 결정을 준중해주기 때문에 그런 원망이 있을 확률이 없을 것 같다.


비록 앤드류도 의사 진로 결정에 있어 어머니가 주도권을 잡았다고 암시했지만, 또 베트남 화교의 문화와 분위기는 부모의 강압과 세뇌가 용납되는 문화였을 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아들 셋이 의사가 된 것을 보면 그리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부모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의사가 되고 나면 결국에는 부모한테 감사하게 된다"는 말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진리다.

이전 08화 자식이 대학시절 딴 짓 못하게 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