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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 코리안 Oct 24. 2022

친자식보다 입양한 자식이 더 ...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착한 이들




중학생인 우리 첫째와 함께 홈스쿨 수업에 있는 데이비드. 데이비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자잘하게 박힌 몸집이 작은 아이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 귀엽다.  아들과 메신저로 채팅을 하는데 아들한테 보내는 내용을 보면 자기가 올린 유튜브 비디오 링크를 걸면서 우리 아들에게 가서 좀 보라는 내용. 유튜브 하고 노는 전형적인 미국 틴에이저.


- 어때? 야 이건 벌써 청취자가 100명이야.


내 아들 대신 가끔 내가 대답을 해주기도 한다. 그럼 깍듯이 Yes, Maam, Thank you. 하는 예의바른 친구이다. 데이비드는 동생이 네 명이 있는 맏형이다. 남동생 셋, 여동생 한명.


첫 만남 First Encounter

첫 홈스쿨 엄마 모임을 데이비드네 집에서 가졌다. 엄마 이름은 매들린.


가족사진을 보았다.  남부에서는 미국 집에 가면 거의 대부분 야외에서 찍은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  아내보다 약간 왜소해보이는 남편과 다섯명의 자녀.


아들 네명에 딸 한명이다.


- 여자아이가 엄마를 닮아 예쁘네. 딸 낳으려고 애들을 계속 낳았나?


그 모임 때에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두번째 만남

월요일에 홈스쿨 엄마들을 위한 무료 운동 수업이 있다고 들어서 갔다. 최신 유행 노래에 맞춰서 줌바처럼 하는 운동이었다.


그 수업을 주최하는 사람이 매들린이었다. 무대에서 연신 웃는 모습을 잃지 않고 10 곡이 넘게 율동에 맞춰 운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이뻐보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이렇게 무료봉사해온 것이다. 여기 온 사람은 거의 다 홈스쿨 엄마들인데 평상시 다른 운동을 할 기회가 없는 엄마들이 무척 고마워했다.


수업 끝나고 새로운 멤버인 나를 환영해주었다.


- 재밌게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뻐요. 애들은 어딨어요?

- 남편이랑 집에 있어요.  월요일 저녁 이 시간은 제 시간이거든요.


세번째 만남

하루는 내가 먼저 매들린에게 말을 걸었다.

"저번에 보니까 우리가 제일 가깝게 살더라구요. 언제 한번 플레이데이트 할래요?"

"오, 좋아요. 언제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네요."


자기는 위탁아동 돌보미를 하므로 항상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우리 아이들이 언제든지 놀러와도 좋다고 했다.


위탁아동 돌보고 있구나...


이렇게 알게 되었다.


네번째 만남


 코로나가 걸렸다. 기력을 찾고 가족끼리 외출을 한곳이 어느 식당이었다. 거기서 데이비드와 그 아빠와 마주쳤다. 아빠가 아들과의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붉은 수염을 얼굴에 덥수룩하게 길렀다. 키작은 산적 같다. 데이비드의 빨간 머리가 아빠 유전자였구나.


- 안녕하세요. 저는 BJ 라고 합니다. 이야기.들었어요. 언제 우리집에 여러분을 초대하려고 했었어요.


이름이 BJ 이다. 비-제이. 미국인들은 이름을 이니셜로 부르는 경우가 왕왕있다.


매들린의 남편은 치아교정전문 치의 (? 간호사는 아닌데 진료할수 있는 의사 같은 간호사) 라고 한다.


인상이 선하다. 남편이 그런다.


- 얼굴에 '나 착함' 이라고 써있네.


다섯번 째 만남


셋째와 넷째의 초등부 홈스쿨이 시작되었다. 우리 넷째의 선생님이 매들린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학급이었다.


거기 말을 되게 안듣는 제이크 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하는 건 다 반대로 하는 아이였다. 앉으라고 그러면 의자에서 서서 돌아다니고, 선생님의 물품을 빼서 달라고 해도 안주고, 간식 시간도 아닌데 간식을 꺼내서 먹고 집어 넣으라고 하면, 주스까지 꺼내서 먹고 다 흘리는...


그 아이가 매들린의 아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 와... 홈스쿨에서 저렇게 말을 안듣는 애도 다 있네?


홈스쿨 하는 부모들은 가정교육을 더 신경 쓰는 사람들이고, "순종"이라는 덕목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부모와 어른들의 말을 존중하는 아이로 클 수 있도록 교육을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안듣는 아이가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이크의 행동이 예외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우리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도 가르쳐봐서 아는데, 우리 애가 제대로 수업에 참여 안하고 잘 못한다 싶으면, 다른 학생이 그런 것보다 10배 이상은 속이 상한다. 자기 자신의 아이에 대한 감정은 정말 다스리기 힘들다.


그런데, 매들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한테 화도 안내고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제이크가 수업에 참여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제이크가 선생님 말을 안듣는 것으로 기존의 홈스쿨 멤버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나보다. 디렉터가 중간 중간 들러서 수업상황을 살펴보고 가끔씩 제이크를 데리고 나가서 매들린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신경을 써줬다.


또 한편 아이한테 좀 더 엄격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하니까 아이 버릇이 더 나빠지는 거 아닌가? 그런데 보면, 매들린의 아이들 모두 다 착한데 제이크만 좀 별난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이크 뿐 아니라 우리 아이 반에 또 다른 한명, 안나가 또한 매들린의 아이인데, 안나는 엄마를 닮았다. 수업에도 잘 참여하고 질문에 대답도 정말 또박또박 잘 한다.


저렇게 착한 엄마 아빠한테 나온 아들이 왜케 말을 안듣지?  다른 형제는 다 온순하고 착한것 같은데?


이에 대한 궁금증이 곧 풀릴 것이었다.


여섯번째 만남

메들린네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과자 한봉지랑 멜론이랑 사과를 들고 갔다. 미국에서는 남의 집에 갈 때 뭘 사들고 가야 하는 부담이 없지만 한국에서처럼 누구네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뭔가 가져가면 좋은 것 같다. 매들린이 고마워했다.


매들린이 못 보던 아이 둘을 데리고 있다. 몇일간 맡게된 위탁 아동들이라고 한다. 남매이다.


위탁아동으로 오는 아이들은 부모가 제대로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고, 제대로 키울 수 있을 때까지 위탁돌보미 가정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부모님이랑 같이 있는게 낫지 않아요? 어떤 심각한 문제이길래 아이들이 부모랑 못지내고 다른 가정으로 가야 하는건에요?"


"아동학대 문제라던지... 또 마약문제도 많아요. 특히 임신 때 마약을 하면 애들이 큰 문제를 안고 태어나거든요. 그리고 엄마가 마약을 하게 되면 아이들을 제대로 잘 돌보지를 못하게 되죠."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제이크랑 안나는 우리집에 왔던 위탁아동들이었어요."

"네?? 그럼 매들린 아이가 아니에요?"

"지금은 내 아이들이 맞죠. 근데 생모는 아니에요. 제이크이랑 안나 둘 다 마약중독자 가정에서 온 아이들이에요. 둘이 남매에요. 제이크는 행동발달 장애가 있는데 많이 좋아진거에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안나는 유아기 때의 악영향 없이 건강하게 자란거 같아요."


아. 이제야 미스테리가 풀리는 것 같다. 왜 제이크가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인지. 왜 엄마아빠를 닮지 않았던지.  


"그럼 매들린이 직접 낳은 아이들은 누구에요?"

"첫째 데이빗이랑 둘째 마이클..."

"어, 아이가 다섯명인것 같은데, 그럼 아이 두명 낳고 세명은 입양한거에요? 또 누가 있어요?"

"우리 막내 이사야"


그때 막내 이사야가 집에서 나왔다. 양쪽 신발이 짝짝이다. 한쪽엔 플립플랍을, 한쪽에는 운동화를, 그것도 각자 왼쪽 오른쪽이 바뀌어서이다. 얼굴 가득 웃음 가득인데 완전 장난꾸러기이다. 볼이 통통한게 너무 귀엽다.


만 3살이란다. 양쪽에 짝짝이 신발을 신고서 마당을 가로질러 뛰는데 달음박질이 엄청 빠르네!


그걸 지켜보는 매들린의 얼굴을 보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온다. 누가 저 아이가 입양아라고 생각하랴.  누가 매들린을 입양모라고 생각하리.


미국에 살면서 입양을 한 가족을 많이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테네시에 살면서 입양가족을 많이 만나봤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에게 입양은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자기의 결심이 되었다. 우리 첫째는 자기는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날 매들린의 페북을 시간내어 둘러보았다.


매들린의 페북은 여느 엄마들처럼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 (자기 친자식) 에 대한 내용보다 셋째, 넷째, 다섯째에 대한 포스트가 훨씬 더 많았다.


제이크의 생일에는 제이크보고 "똑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사랑하는 아들"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글이 있고,아나와 둘이 가까이 찍은 사진에는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내 인생 최고의 보물"이라며 딸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글이 있었다. 이사야에 대한 가장 최근 포스팅은 아기 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같이 비교한 사진이었는데, 아기 때나 지금이나 볼이 통통하고 해맑게 웃는 것이 참 귀염성이 있다.

 

그리고 간간히 위탁아동들에 대해, 입양에 대해, 미혼모 지원에 대해, 주변에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 포스팅은 좀 길었는데, 읽을만 했다. 아이를 낳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이 모정을 자극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아이를 입양한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검출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결과가 있다니!!


난 입양부모들이 입양아들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이란 주로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입양은 "배 아파 낳은 사랑 아닌 가슴 아파 낳은 사랑" 이라는 슬로건 때문이라도 입양부모와 아이 사이에 흐르는 찐한 혈육의 정보다는 사명감? 그리고 살면서 정든 것, 뭐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육체의 변화가 없을 거라고, 호르몬적인 육체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으례 생각해왔던것 같다. 근데 이 연구결과는 신체적으로도 변화가 온다는 것, 우리 마음 뿐 아니라 몸으로도 사랑하게 해주는 호르몬이 분비된 다는 것이다.  


밑에 달린 댓글들은 거의 대부분 입양 부모인 듯,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걸 과학적으로 밝힌것일 뿐" 이라고 입을 모은다. 내가 입양은 안해봐서 모르겠고, 근데 옆에서 매들린을 볼 때 확실히 매들린은 아이들을 가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진짜 사랑하는 것이, 이 호르몬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비단 매들린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본 입양부모들은 정말 다들 착했다. 약아빠지거나 꾸밈이 있지 않다. 원래 착해서 입양을 하게 된걸까. 입양을 하게 되면서 더 착해진 걸까? 이 호르몬 때문에 사랑이 나오나?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라서 호르몬이 나오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매들린과 더 친분을 쌓아가며 아이들의 과거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조금 씩 더 알게 되었다.


이사야는 어릴 때 여러번 수술을 했어야만 했다. Club Foot (곤봉발, 내반족, 만곡족) 이라는 선천성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목부터 발이 안쪽으로 굽는 병이다. 그대로 두면 걸을 수가 없게 된다. 수술을 해서 발을 다시 제대로 돌려줘야 하는데, 총 두세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수술을 이사야가 받았던 것이었다.  못 걸을 뻔 했던 아이가 그렇게 짝짝이 신발을 신고서도 쌩 달리는 달리기 선수가 되었다니!



그리고 제이크의 과거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줬다. 태어난 지 돌이 안되어 입양되었는데, 그 때도 마약의 영향이 많아서 각종 행동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분리불안이 엄청나게 큰 아이라고 했다. 참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아이였지만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그 느낌은 아이가 죽을 뻔 한 고비를 지나고는 사명감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굳혀졌다고.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네 집에 갔다가 길에서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는데, 귀에서도 피가 나고.. 아이가 정말 죽는 알았다고. 의사들 조차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몇일 후 기적적으로 눈을 뜨고 깨어났다는 것이다. 의사들도 설명을 못했다. 그 사건 이후 '이 아이는 운명이야.' 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이야기를 해주는 매들린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끼지는, 수업 시간에 너무 나대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제이크가 별로 이쁘지 않았고 그걸 끝없이 타이르기만 하는 매들린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매들린은 이 아이들을 입양하면서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던 것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거치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인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서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랴.


매들린네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너무 착하게 자기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이 가정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게한다.

그래서 안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정말요? 안나가 너무 좋아할 거 같아요."

"우선 안나부터 가르쳐볼게요. 제이크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직 확신이 안서서요..."


다음주부터 나와 피아노레슨을 할거라는 소식을 들은 안나,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아무 말을 못한다.


그 이후 코로나며 휴가 등의 일정으로 인해 안나와 세네번 밖에 레슨 못했지만 그 후에도 플레이데이트를 통해, 매들린네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며 더 친해지게 되었고 매들린네와 우리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또 매들린은 추수감사절 가족식사에 우리 가족을 초대했고 그렇게 미국적인 추수감사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매들린 네와 좋은 인연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홈스쿨 수업날에 매들린은 다섯명의 자녀 말고도, 한 두명 더 품에 안고 들어오는 적이 많았다. 위탁아동들이다. 잠깐 짐을 두러 매들린이 유모차를 놔두고 사라지면 아이들이 부른다.

"마미... 엄마..."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매들린. 친자식보다 입양한 자녀가 더 믾은 경우도 처음 보지만, 친자식보다 입양한 자녀가 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 특별하다.


이런 사람을 난 친구로 두었다. 그 누구보다 자랑하고 싶은 친구이다. 천사같은 미국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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