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사간 지 얼마 안되어서 우리 셋째가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10시 약간 넘어 생일파티에 도착하니 아이들과 부모들이 벌써 여럿 와있었다.
생파는 아이 집 뒷뜰에서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뒷뜰의 그네 주변에서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나무 그늘 밑에 두 개의 테이블 사이에 서거니 앉거니 하면서 담소 중이었다. 새로운 손님이 아이들 데리고 올 때마다 기존에 와있던 손님들이 "헬로우~" 하며 환영해줬다.
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앉았다. 한 커플과 한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인데 커플의 남편이 일어나며 내게 자리를 양보해준 것이다. 키가 작다. 머리카락 등이 아주 까만게 이탈리안 느낌이 난다. 와이프는 금발인데, 덩치도 있고 한눈에 봐도 남편보다 키가 한 뼘은 큰 것 같다.
"난 비비안 엄마 한나에요. 이번에 이사왔어요." 라고 인사하자, 그 커플의 엄마가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아, 얘기 들었어요. 우리 애 이썬한테. 이썬이랑 비비안이랑 캐롤라인이 다 같은 반 친구네요."
"아 그렇구나.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서 애들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이썬이 누구에요?"
"저기 그네 위에 올라탄 아이가 이썬이에요."
내 이야기를 한다. 남편 직업도 이야기하고, 어떻게 이사오게 됐는지, 이야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부부의 직업도 물어본다.
남편 네이썬은 변호사이다.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와이프보다 작은 키를 커버하는 직업이네.
근데 아내도 보통이 아니다.
에린은 건축사라고. 최근 들어온 월마트 건물 건축설계를 맡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20년 넘게 있어온 명망있는 건축회사라고.
옆에 앉은 남자는 바로 그 새로 들어왔다는 월마트에서 일하는데, 월마트 자동화 프로젝트 매니저로 있다. 월마트가 공통분모가 되어, 월마트 이야기, 그 지역 동네 상권 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 등등에서 시작하여 다른 주제들로 대화가 뻗어나간다. 그러다 아이들이 어떤 여름방학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네이썬과 에린의 아들 이썬은 제작년과 작년에 이어서 연극캠프를 할것이라고 했다.
연극캠프를 하면 연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백스테이지에서 조명이나 의상 담당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자기네 애들은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동안 매년 극중 역할을 맡아 연기를 배웠다고 한다. 대본도 외워야 하고 다른 아이들과 협업도 배워서 좋다고 했다. 또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면서 자신감과 발표력 계발하는데 짱이라고 했다. 뭣보다 애들이 좋아한단다.
이야기 중에 이썬이 와서 엄마 무릎 위에 앉는다.
"여기가 비비안 엄마야."
"Hi~"
"너가 연극캠프 하는거 이야기 하고 있었어. 너가 외운 대사 한번 해볼래? 너 잘하잖아."
그러니까 애가 빼지도 않고 즉석에서 술술 대사를 말한다. 내가 칭찬해줬다.
"우와. 잘 하네. 연극 하는거 재밌겠다.~"
"네, 재밌어요."
좀 이따 아이는 가고 어른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이썬은 둘째이고 그 위로 딸이 있는데, 이번에 6학년을 마치고 7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란다. 내 둘째랑 같은 학년이다.
"어, 우리도 6학년 졸업한 딸이 있는데, 고르지키중학교 다녀요."
"아, 우리 애는 여기 근처가 아니라 매그넷 스쿨을 다녀요. 올걸스 학교(여학교)에요. "
매그넷 스쿨은 실력 반 추첨 반으로 입학이 이뤄지는 반 공립 반 사립형 학교라고 볼 수 있다. 공립학교이긴 하지만, 각 매그넷 스쿨마다 과학, 에술 등 각각의 특색과 강조점이 있어서, 그 쪽에 관심있어하고 잘하는 아이들이 주로 매그넷 스쿨을 가려고 한다. 학교장의 추천을 받는 아이들이 원서를 내면 그 아이들 중에서 추첨이 이뤄진다.
오스틴 텍사스에는 매그넷 스쿨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이사온 후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 중 매그넷 스쿨 가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던지.
매그넷 스쿨을 다니려면 아이들도 우선 어느 정도 공부하려는 욕심이 있는 아이들이여야 하고, 그 부모도 정보력이 있어서 애들의 원서지원 과정을 보조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미국에 남아있을 것이라면 난 매그넷 스쿨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 사립학교는 너무 비싸지만, 매그넷스쿨은 주정부의 보조하에 있기 때문에 개인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교육의 질적으로도 우수하고 비용 면에서 부담이 없는 매그넷 스쿨.
그 딸은 여름방학 동안 뭘 하는지 궁금했다.
"그 애도 제작년까지는 여름마다 연극캠프를 했다가 작년부터 에어리얼댄스로 바꿨답니다. 올해도 그거 하려고 해요."
"에어리얼댄스가 뭐에요?"
"천장에서 내려오는 기다란 천 붙잡고 올라가서 공중에서 춤 동작하는 건데요, 난 우리 애가 그거 어떻게 하나 몰라.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데, 얘는 소질이 있는지, 곧바로 흥미를 붙이데요?"
"와! 너무 재밌겠다. 약간 폴댄스 같은 건가 보죠? 힘들것 같긴 해도. 체력단련에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한 나머지, 대학도 에어리얼댄스 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더라고요."
남편도 신이나서 이야기에 끼어든다.
"그렇지. 예일이랑 어디였더라? 두군데를 알아보더니 거기를 지원할거라고 그랬지? 그래서 우리가 '거기는 음... 쫌 그렇고 예일! 그래 예일 좋다!' 하면서 부추겼잖아."
"응, 애가 에어리얼댄스 덕분에 예일대로 가려는 목표가 생겼지 뭐에요. 아주 잘 됐어."
역시 있는 집이니까 애들 캠프를 팍팍 밀어주는구나.
느낀점.
1. 있는 집은 여름계획이 빵빵하다. 이런 전문적인 캠프를 보내려면 일주일에 300-400불 드는데, 기나긴 미국 여름방학 내내 캠프를 보내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https://www.austintheatre.org/camps/
2. 이 집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것보다 아이의 소질을 딱 하나 정해서 깊이 계발시켜주는구나. 배우 연기를 몇 년 배우게 한 후 다른 쪽을 배우게 하는구나.
3.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는 비주류 대학와 견줄 필요도 없다는 식의 반응을 대놓고 하는 미국인도 있구나. 한국인만 유난히 대학을 차별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비는 미국에서도 아이비구나.
4. 부모에게는 아이비리그와 비아이비리그의 차이가 분명한데, 중학생 나이의 아이에게는 그 선호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도 흥미롭다.
5. 예일대와 이 다른 대학을 두고 고민(?) 하는 아이에게 "당연히 예일 가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지 않고, "음... 여기보단 예일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예일대를 좀 더 알아보렴," 하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도 인상에 남는다.
6. 처음부터 "내 목표는 예일!" 이렇게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게 에어리얼 댄스니까 이걸 계속 할 수 있는 대학교를 알아봐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 미국적인 사고방식이다. 자기 관심 분야를 먼저 찾고 그 관심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그 다음으로 찾는 것.
7. 미국인들도 아이들 교육과 대학진학에 무척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