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째 비비안이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집으로 가져온 초대장을 보니, 초대장 하나 하나 손수 써서 준비한 모양이다.
들뜬 마음으로 그 전 주말에 쇼핑을 했다. Hobby Lobby 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에서~ 아이도 좋아한다.
" 너 얼마 쓸래?"
"$15?"
"그래 괜찮네."
우리집은 아이가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초대받은 장본인이 자기 용돈으로 친구선물을 사야한다. 그런 것을 위해 용돈을 받는 것이니각자 능력대로, 모은 대로 알아서,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만큼.
Hobby Lobby 하비라비에서 고르고 골라 자기 예산에 맞는 물품들을 샀다. 스티커들이랑 나무에 조각된 거북이 도장이랑 여러색깔 잉크패드.
생파 당일. 생일은 그 집 --이름은 캐롤라인-- 뒷뜰에서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12명 정도 있었는데 도착하자 아이들 친구들이 "비뱐~~~!!" 하며 여자애 세명이 뛰어와 우리 비비안을 끌어안고 포옹을 한다. 격한 아메리칸 환영식에 비비안도 웃으며 금방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아이들은 뒷뜰에 마련된 그네를 중심으로 논다. 여자 아이들은 타이어 그네 위에 세명이 올라가 있고, 남자아이들은 그네 다리를 타고 올라가 있다.
마술사가 와있다. 전혀 마술사 같이 안생겼다. 좀 심각한 분위기의 아저씨 분위기. 모자도 마술사 모자라고 하기엔 너무 짱딸막한...
스무 명이 넘는 친구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술이 시작되었다. 예상 외로 마술사가 아주 익살스러웠다. 어른들도 여러번 폭소하고... 아주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근데 자기 코구멍에다 아주 기다란 못을 박는 묘기는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리고 콧물이 달라붙어있는 못을 코에서 쭉 빼는 모습도 좀 징그러웠다. 다행히 피는 없었다. 따라하는 아이들이 없어야 할텐데... 제일 신기했던 묘기는 20불짜리 지폐가 멀쩡한 라임 속에 들어있던 것! 지폐의 주인공인 아빠가 직접 네임펜으로 싸인한 지폐가 말이다.
애들 친구네 생일잔치에 여러번 가봤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술사를 초빙해서 이벤트를 준비해서 하는 생일파티는 처음인것 같다.
마술쇼가 끝나고 케이크 촛불과 선물개봉 시간이 돌아왔다.
식탁 위에 개봉을 기다리는 선물들이 다 크고 포장이 멋있어보인다. 우리 아이가 주눅 들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다.
케이크 촛불 시간~
두가지 맛으로 되어있는 케익으로 준비했다. 각자 취향대로 딸기맛 또는 초콜렛 맛을 골라 먹으면 된다. 나와 한 엄마가 케이크 잘라 접시에 담는 일을 했다. 미국 케이크는 프로스팅 frosting 색깔이 너무 강렬하다. 설탕, 기름, 색소 범벅인 크림 프로스팅. 본능적으로 프로스팅을 긁어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랬더니 엄마들이 "오 고마워요. 나도 프로스팅 별로 안좋아해요" 한다.
"이 케이크는 보기에는 하나로 되어 있는데, 속 안에는 두개 맛이네요? 좋은 생각인데요?"
"우리 남편은 프로스팅만 먹어요. 나는 프로스팅 안 먹어. 저기 남은 프로스팅은 우리 남편이 좋아하겠네~"
"이 샌드위치 H-E-B 에서 산거죠? 나도 거기서 이 샌드위치 자주 사는데... 우리 애가 음식을 엄청 가리는데, 여기서 파는 이 샌드위치 빵, 요건 먹어요."
선물 개봉 시간.
캐롤라인이 너무 흥분해서 묻는다. "엄마, 이제 열어봐도 되요?"
캐롤라인 엄마가 "잠깐만!" 그러더니 노트책과 펜을 찾아 오더니 다른 엄마한테 부탁한다.
"목록 좀 적어줄래요?"
아이가 선물을 골라든다. 엄마가 "카드부터 확인해라 캐롤라인" 하자 카드를 찾아 읽는다. 그 사이에 노트책을 든 엄마는 목록에 그 선물을 준 아이 이름을 적는다. 캐롤라인이 선물을 뜯자 환성과 박수가 나온다. 그 사이에 간략하게 선물 내용을 받아적는다. 마치 결혼식에서 축의금 액수와 하객의 이름 기록하는 것과 똑같은 식.
한국정서로는 민망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심심치 얺게 이렇게 한다. 나중에 아이한테 일일히 땡큐카드를 쓰게하기 때문. 생일잔치에 갔다 온 후
"00야. 내 생일파티에 와줘서 고마워. 네가 준 000,000는 너무 맘에 들어. 잘 쓸게."
라고 쓴 카드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집 부모가 애들 닥달해서 20명 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감사의 답문을 쓰게 하는 것.
"너에게 이렇게 와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해야한단다"
그런 문화를 어릴때부터 익히게 하는거다.
미국부모들도 얼마나 아이들을 올바르고 착하게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지!
물론 모든 엄마들과 아이들이 그렇게 하진 않지만, 스무명이 넘는 아이들 초대장을 일일히 쓴 캐롤라인 엄마는 이렇게 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어떤 아이들은 카드에다가 현금을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10불 20불 ..
Michael's, Target, Amazon 등의 기프트카드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20 이 기본적인 금액인것 같았다.
그래도 현금보단 기프트카드가 낫고 기프트카드보단 선물이 낫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고심해서 사온 표시가 나는 선물들은 더 빛이 났다. 친구가 뭘 좋아할지 고심해서 선물을 사온 것이 느낌으로 전달되는 거 같다.
선물을 개봉하는 동안 아이들이 꽤 많이 떠났다. 초대장에 12시에 파티가 파한다고 써있었는데, 미국인들의 시간 개념. 12시가 되니, 선물개봉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게 작별인사하고 떠나네.
"비비안도 가야 되나요?"
캐롤라인이 제발 더 있으라고 애원하는 눈으로 본다.
"우린 별 계획 없어~ 더 놀고 싶으니? 먼저 너희 엄마한테 물어볼래?"
"우리 엄마는 좋대요."
그 집 엄마에게 정말 괜찮냐고 재차 물어보고 다른 몇 친구와 함께 남았다. 아이들은 뒤뜰에서, 그리고 집 안으로 옮겨서 계속 놀고, 나처럼 남은 엄마들은 패티오 그늘에서 대형 선풍기를 틀어놓고 더위를 쫓으며 이야기 했다.
캐롤라인네는 아이 생일마다 매번 이런 이벤트를 꾸민다고 한다. 몇년 전에는 캐리커처 아티스트를 데려와서 생일파티에 온 아이들 모두 캐리커처 한장씩 그려줬다고. 그건 좀 실망스러웠는데, 이번 마술쇼는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애 한명 당 얼마, 이런 식으로 돈을 지불했는데, 별로 잘 못 그리는거 같더라고요."
"캐리커처가 다 뭐 그렇죠~"
"그러니까. 그 많은 애들 다 그리는데 아마 정신 없었을거에요."
또 한번은 페이스페인팅 아티스트도 모셔왔는데 애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작년 코로나 때문에 생파를 제대로 못했던 해에도 친구들을 초대해서 비대면 생파를 했다고 한다.
"비대면 생파가 뭐에요?"
차를 타고 있는 상태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만 내린채 길에다 콩주머니 던지기 등의 비대면 게임, 케익을 길위에 놓고 생일촛불 불기 등등 진행했단다.
입이 떡 벌어졌다. 나도 애들 생일잔치에 엄청난 의욕을 갖고 해줬던 사람인데, 이 엄마는 한 수 위다. 아니 한 수 정도가 아니라 몇 수 위인듯.
그런데 이렇게 하는 모습이 전혀 으시대는 것 같지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이렇게 생파를 하려면 부모의 경제력. 엄마의 기획력. 아이의 소셜능력 등 많은게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걸 과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초대받은 애들도 그냥 걔네 반 아이들 모두에게 초대장을 돌렸다고 한다. 비비안은 캐롤라인과 같은 반이다. 끼리끼리의 느낌도 없다.
엄마가 변호사이다. 로스쿨을 나와서 15년 넘게 이민 전문 로펌에서 일해왔다고 한다. 나 같은 이민자들, 외국인들 비자와 영주권 수속을 도와준다고 했다. 남편은 월마트에 매니저라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하튼 이 둘은 서로 늦으막한 나이에 결혼했다고 한다. 남편은 재혼. 아내는 초혼.
처음 만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할 정도로 스스럼이 없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훗~ 우리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로 만났어요."
"아 진짜요?"
"한 일년 사귀고 결혼했는데, 가족한테 알린 건 12월이고 결혼식 날짜를 잡은건 3월이었어요. 다들 너무 갑작스럽다고 깜짝 놀랐지요. 그 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서 날짜를 그렇게 잡았는데, 친구 친지들이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우리 사고친 줄 알았다고. 후훗."
속도위반 오해 받으며 결혼했지만, 정작 아이가 오랫동안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늦게 결혼해서 그런가보다' 하며 포기(?)를 할 때쯤 아이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캐롤라인. 캐롤라인은 외동딸로 자라게 되었다.
마흔 후반 대에 낳은 딸, 그것도 외동딸이니, 아이에 대한 애정이 뿜뿜 뿜어나오는 것이 당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