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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도우XP Oct 10. 2021

어느 한국인 스마트폰 중독자의 고백

혹시 스마트폰 중독으로 고생하고 계시다면


"남녀 할 것 없이 거의가 힘겨운 노동을 잊는 방법으로 가격이 저렴한 아편을 복용했다. 어머니와 간호사도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아편을 주었다." ¹

- 알레시아 헤이터,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1821)> 서문에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중독을 겪었습니다. 정확히는 디지털 기기 사용 중독이었습니다.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하기 한참 전부터 닌텐도와 아이팟 사용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니까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기기를 빼앗으면 다른 일을 찾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사춘기가 겹치며 SNS, 인터넷, 게임 중독을 한꺼번에 심하게 겪게 되었습니다.




맨 앞에 인용한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은 토머스 드 퀸시가 자신의 아편 중독 경험에 대해 고백한 책입니다. 원문도 번역본도 상당히 난해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 내용 보다는 알레시아 헤이터가 쓴 서문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아편이나 아편이 든 음료를 저렴한 값에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어른들은 힘든 삶과 노동을 잊기 위해 아편을 피웠고, 투정부리는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아편이 든 음료수를 주었다고 합니다.² 


스마트폰과 마약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영국인들이 아편으로부터 찾던 안정이 제가 스마트폰으로부터 찾던 안정, 현실 도피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헤이터는 아편 중독에 의한 부작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스마트폰 때문에 걱정하면서 겪어 본 익숙한 감정이었어요.


[드 퀸시는] 무감각과 절망, 증오할 정도로 막연한 갈망,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 금단현상의 결과로 나타난 혐오감과 모욕감을 경험했다. (같은 책에서 인용)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방금 온 그 메시지를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 싫은 숙제와 공부 대신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결국 시간이 모자라게 되면 왜 할 일을 미리 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스마트폰을 한 번 집어들면 한두 시간은 금방 흘렀으니까요. 이런 후회를 반복해서 겪으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시대인데,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저만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이상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는데, 누군가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 조절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인터넷에 '스마트폰 끊는 법' 혹은 '게임중독 해결법' 따위를 검색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당장 휴대폰에서 이런저런 앱을 삭제하라!' 혹은 '당신이 앱 알림을 당장 꺼야 하는 187가지 이유'와 같은 부차적 조언입니다. '혹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정해보세요.'와 같은 원론적인 조언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언은 이미 건강한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시도해봄직 한 것으로, 당시 저처럼 중독 증상을 겪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끊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알림을 끄자마자 갑자기 스마트폰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둘째는 '자녀와 대화하세요', '아이와 휴대폰 사용시간을 함께 정하세요'와 같은 부모를 위한 조언입니다. 체감상으로는 중독자 본인보다는 부모를 위한 조언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게임 중독과 관련해 많이 보이는 이런 조언은 제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중독을 청소년만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부모가 해결할 수 있는 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독 증세를 겪는 청소년에게는 부모님의 도움이 중요하지만, 결국 실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본인입니다. 특히 사춘기 이후의 스마트폰, 인터넷 중독은 부모가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공감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 조언은 스마트폰 중독을 겪는 청소년 당사자였던 저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위 두 가지 글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을 떠나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에서 살던 저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라인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거주했다면 더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제 상태를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본인의 계획과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필요합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스마트폰을 끊을 수 있을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3년간 스스로를 상대로 여러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최종 목표는 잠깐 스마트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 가능한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 사용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언제 스마트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그럼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 후자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사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서 실험했습니다. 물론 거의 다 실패했죠. 그래도 어떤 점이 성공적이었고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짧게나마 적고, 어떻게 하면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서 개선된 방법으로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그 중 가장 효과적이었고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방법에 정착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은 일종의 허리 통증과도 같습니다. 완화할 수는 있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고,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니까요. 또 잠깐 스마트폰을 끊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게 되면 언제든 다시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치료해서 나으면 끝나는 병이 아니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대상은 없으니까 스마트폰도 예외는 아니겠죠. 마법처럼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겨내고 장점만 쏙쏙 활용하는 법은 열심히 찾아봤지만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신다면 저에게 꼭! 제일 먼저 연락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시리즈에는 제가 그동안 생각해보고 알아낸 것을 토대로 스스로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사용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신경을 쓴다면 중독이 너무 악화되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혹시 잠깐 빠지더라도 곧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단순한 오락 목적의 아편 복용은 많은 나라에서 불법이 되었습니다. 내키는 대로 아편을 구매해 피우는 사람도, 아이들의 손에 아편 음료수를 쥐어주는 부모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편 사용이 그 자체로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아편은 의료 목적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저 무분별하게, 너무 많이 복용했던 것뿐이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히' 라고 합니다. 스마트폰도 마음대로, '적당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¹ 알레시아 헤이터,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 서문 [ebook] (펭귄클래식 코리아). 김명복 옮김

² Brian J. Opium and infant-sedation in 19th century England. Health Visit. 1994 May;67(5):165-6. PMID: 806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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