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엄마 칭찬하기 네 번째
나는 길을 잘 못 찾는 사람이다.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내비게이션이 필수이다. 가끔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으면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다. 슬프게도 내비게이션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는 사람인 거다. 내가 왜 이렇게 길치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단 길을 잘 외우지 못한다. 길을 잘 못 외우는 것도 문제겠거니와 길을 보는 눈도 없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들이 있어 그 길이라는 것을 알지 그 길의 형태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한다. 같은 길이라도 어떤 방향을 향해 서있는가에 따라 그 길이 다르게 보인다.
하루는 내가 아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있게 운전하고 가고 있다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순간 '여기가 어디지?' '이 길 뭐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다행히 신호에 걸려서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다시 가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황당했다. 알던 길인데 방향에 따라 갑자기 그 길이 다르게 보여서 순간 패닉이 온 거다. '나 이거 정상이야?'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엄마다. 엄마는 나와 달리 길 찾기의 고수이다. 일단 엄마는 한 번 간 길은 바로 외울 수 있다. 정말 신기했던 건 엄마와 여행을 가서였다. 엄마와 스페인을 가건, 스위스를 가건, 이탈리아를 가건 엄마랑 걸어 다니면 엄마는 그 길을 다 외워버렸다.
우리의 여행법은 이렇다. 처음에는 내가 구글 맵을 보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그다음부터는 엄마와 발길 닿는 대로 목적지 주변을 걸어 다녀본다. 그렇게 그 주변의 여러 골목을 걷다 보면 엄마는 그 길의 구조를 다 알아차린다. 그때부터는 아주 편하다. 처음 한 번만 지도를 보고 다니면 그 뒤부터는 엄마만 따라다니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다. 사실 여행에서 지도를 보고 다닐 때면 주변 풍경을 잘 보지 못한다. 길을 놓치면 안 되니까 거의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걸어가게 된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도시에서 돌아다닐 때는 더 그렇다. 하지만 내가 딱 한번 엄마에게 길을 알려드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의 관광이 시작된다. 손 주머니에 딱 집어넣고, 주변 사람들도 보고 풍경도 보고, 그야말로 여행의 시작인 거다.
또 엄마의 길 찾기 특징을 생각해보자면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나는 주로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고 생각하면 딱 정해진 길로 가는 편이다. 지도에서 알려준 그 길대로, 아니면 처음 그 목적지에 찾아가게 된 경로 대로만 간다. 어릴 때에 학교를 가거나 학원을 갈 때도 딱 정해진 대로 갔다. 그 길들을 아마 수십 번은 넘게 갔을 건데도 그걸 다르게 가봐야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되게 바보 같아서 부끄럽긴 하지만 내가 그렇다. 그런데 엄마는 매번 가는 길로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재미가 없다나. 엄마랑 동네에 시장을 보러 가거나 놀러 다닐 때면 엄마는 이리저리 돌아서(이건 내 관점이겠지만) 다른 길로 간다. 내 눈엔 목적지가 바로 저 앞인데 엄마는 돌아서 가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줄곧 구시렁거리곤 한다.
"왜 5분만 하면 가는 길을 둘러서 10분 만에 가냐고오오오"
"재밌잖아. 동네 구경도 하고."
얼마 전에는 엄마랑 다른 동네로 산책을 갔다. 나는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음식점이 많은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는 큰 건물이 세워져 있고 그 뒤편에는 동산이 있어 그 방향으로 쉽게 가기 어렵게 되어있었다. 그러자 엄마는 내가 가고 싶었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향하더니 이쪽으로 가보면 뒤쪽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길을 나섰다. 나는 그 방향은 아닌 것 같다며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며 뒤따라갔다. 뒤따라가 보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길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예쁜 호수가 나왔다. 또 조금 더 가보니 내가 그전에 가볼까 생각한 적 있었던 맛집도 짜잔 하고 등장했다. 우리는 사실 음식점을 찾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던 방향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 당연히 그 맛집으로 들어갔고 그 집 깻잎전과 고추튀김의 맛이 죽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게 되었다. 엄마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거봐. 꼭 정해진대로 갈 필요 없지?"
어쩌면 난 살아가는 것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은 다양한 거라고 머릿속으론 이해했지만 그런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했고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정답을 강요해왔다. 정해진 수순에 따라 행동하는 게 편했고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혹독한 잣대를 제시해왔던 것 같다. 나는 정답을 찾아가고 싶다고. 많은 길 중에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고.
그날 엄마와의 산책은 사소했지만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
"꼭 정답대로 할 필요 없어. 힘을 조금 풀고 살아봐. 조금 돌아가도 별일 없잖아. 다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