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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Mar 23. 2020

그들은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간다

본격 <<자기 앞의 생>> 칭찬하기

  내가 유독 좋아하는 스토리가 있다. 어딘가는 못나고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이다. 재벌 3세라던지 CEO라던지 누가 봐도 잘나고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왠지 둘러보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이라는 책이 참 소중하다. 


  이 글의 주인공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모모는 어려서부터 아줌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몰랐고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자랐다. 모모가 사랑하는 아줌마는 폴란드 태생 유태인으로 오래전에 독일 유태인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그 뒤부터는 생계를 위해 몸을 팔고 살았고 나이가 들면서는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모모는 그런 아줌마를 사랑한다.


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에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10p.


  그뿐 아니라 모모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아래층 사는 하밀 할아버지도, 오층에 사는 트랜스젠더 롤라 아줌마도 말이다. 세상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면 안타깝고 쓸쓸한 사람들에 불과한데 모모의 시선으로 그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참 따뜻하고 특별한 사람들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지금은 양탄자 행상을 하지만 한때는 온 세상을 두루 보고 다녔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 눈이 아주 아름다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할아버지는 꽤나 늙어있었는데, 그 후로도 계속 늙어가고 있었다. 
"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느라고 그러지, 모모야."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11p.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는 박하차를 가져다주는 드리스 씨를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96-97p.


나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무도 닮지 않았고 아무와도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손님을 끌기 위해 뾰족구두를 신고 몸을 비비 꼬며 호모같이 걸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정말 세상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됐고 믿음이 갔다. 왜 항상 사람들은 엉덩이로 구분하고 그걸 가지고 왜들 그리 법석인지 모르겠다. 엉덩이는 사람을 해칠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161-162p.


  그런 모모 앞에 비극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모모가 그리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의 몸이 점점 안 좋아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따금 정신을 잃기도 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모는 그녀의 곁을 지킨다. 아무리 그녀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도, 그녀가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어도 말이다. 그녀의 곁이야말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모는 아줌마의 생의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한다. 


나는 그녀를 위해 촛불을 있는 대로 다 켰다. 나는 화장품을 들고 입술에 루주를 발랐고 볼터치를 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주었다. 눈꺼풀은 푸른색과 흰색으로 칠해주고 그녀가 평소 하던 대로 애교점도 붙여주었다. 인조 눈썹도 붙여주려 했지만 잘 붙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304-305p.


  이 책을 읽을 때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조금 귀찮아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모모는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잘나고 멋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어딘가는 부족한 사람임에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렇게 내 주변의 사람들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만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가 아닐까. 이 거친 세상에서 큰 획 하나 긋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해야 한다."인가 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모의 눈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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