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eer Mar 28. 2020

욜로족이 사는 법

본격 오빠 칭찬하기 

  우리 집엔 욜로족이 살고 있다. 바로 우리 오빠이다. 오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는 구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어려서부터 독립해 따로 살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도 현재는 원하지 않는다.(나중에는 원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욜로족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도 오빠는 이미 욜로의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오빠는 자신의 취미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다.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어렸을 때에는 미술에 충실했다가 이십 대부터는 락에 흠뻑 취해있었고 맨시티라는 축구팀, 그다음엔 농구에 빠졌다가 한두 번쯤은 여자 친구에게 굉장히 빠져있었고 지금은 신발에 빠졌다가 간신히 헤어 나오고 있는 중이다. 큰 맥락은 그렇고 기타나 보드, 피규어, 레고 같은 것들에도 잔잔하게 빠졌었다.  


  그가 하나에 빠졌을 때에는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락에 심취했을 때는 많은 록 페스티벌에 출석도장을 찍었고 자신의 집 한쪽 벽을 자신이 좋아하는 락밴드의 얼굴로 도배했다. 축구팀에 빠졌을 때에는 축구팀의 승패 여부에 따라 자신의 하루 기분이 좌우되었다. 물론 그 축구팀의 유니폼만 입고 다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집에 기타도 몇 대씩 있고 엄청 좋은 퀄리티의 피규어들이 한쪽 장에 자리 잡고 있다. 


  여자 친구한테 빠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내가 생각했을 때는 좀 의아한 점이 많았지만 말이다. 그 여자 친구와 첫 데이트를 하려고 하는 시점에 우리는 오빠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는 매우 들떠있었고 그날 무엇을 입을지 미리 옷을 다 세팅해놓은 상태였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애가 그렇게 옷을 미리 사놓고 세팅해놓은 것은 우리에겐 사건이었다. 그리고 첫 데이트에서 그는 여자 친구와 백화점을 가게 되었고 그녀가 예쁘다고 칭찬한 60만 원짜리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그 옷의 할부금을 갚았었다. 그 외에도 그녀에게 홀딱 반해 호구 같은 행동을 많이도 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그래도 엄마는 내심 더 오래 그녀에게 빠져있기를 바랐지만 그는 금세 그녀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다른 취미를 찾았다.    

  어쨌거나 그는 취미생활에 매우 충실하게 살고 있고 그런 삶을 매우 즐긴다. 어렸을 때는 오빠를 보며 '잰 왜 저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돈도 착실하게 모으고 취미도 그저 적당히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부모님도 더 잘 챙기고 자기도 안정적으로 살고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빠를 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나랑 비교를 해보자면 나는 직장을 얻은 이후부터 돈도 그럭저럭 저축도 하고 또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살았다. 그렇지만 이렇다 하게 큰돈을 모은 것도, 또 거창하게 좋은 물건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었다. 좀 어정쩡하다고 해야 될까. 반면 오빠를 보면 돈을 별로 모으지 못한 건 나랑 비슷하지만 그의 집에 가보면 그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우리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설명하는 그의 눈은 빛나고 있다. 


  내가 오빠보다 돈을 조금 더 모았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걸까 생각해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내가 훨씬 많은 돈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의 생활 방식처럼 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들로 삶이 가득 찬 그런 모습.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 삶이 풍요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오빠는 자신에게 꼭 맞는 풍요로운 삶을 찾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