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직장동료 칭찬하기 세 번째
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귀여움'과 '수다쟁이'이다. 귀여운 수다쟁이인 그는 나의 전 직장동료였다. 오늘은 그를 칭찬해보려고 한다. 그는 40대의 남성인데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동안 외모를 가지고 있다. 외모도 어려 보이는 편인 데다가 옷도 늘 젊게 입으시기 때문에 한 번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걸음걸이도 통통 거리며 걸으셔서 나보다 한참 어른이지만 왠지 귀염둥이 느낌이다.
그와 나는 12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어려움이 없고 늘 즐겁다. 사실 난 직장동료와 이야기하는 것을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직장동료들과 이야기 나눌 때 재미있고 그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머릿속에서 여러 번의 검열을 하고 그 검열에 통과한 말들만 하게 된다. 이상하고 무례한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검열하고도 가끔은 혼자서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한다.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또래인 직장동료를 대할 때에도 어렵기만 한데 10살이나 많은 선배를 대할 때면 더욱 조심스럽다. 하지만 띠동갑인 그와 대화할 때는 왜인지 모르게 내 마음속 필터를 잠시 제껴놓고 편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대화 비결이 더욱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그를 생각해보려 한다.
일단 그는 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면 늘 그는 그 대화에 출석 중이다. 심지어 그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해도 신나게 대화를 한다는 점이다. 자기보다 20살 어린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즐겁고 20살 많은 사람과도 즐겁게 대화를 하신다. 그보다 위아래로도 커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정말 나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누구와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엄청난 능력치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에겐 그가 전혀 모르는 분야란 없기 때문인 것같다. 정말 잡학 다식하시다. 어떤 주제를 던지면 그것과 관련된 경험이 좌르륵, 인터넷 정보가 좌르륵, 정말 뭐든지 대화할 수 있다.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도,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과도,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과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과도 다 이야기가 통한다. 나는 그와 미드로 통했다. 왕좌의 게임 시즌이 공개되고 드라마가 한편씩 나올 때마다 그와 빨리 이야기하고싶어 마음이 들썩들썩했었다.
어쨌거나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데에다가 본인도 이야기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대화하는 무리 중에 그가 끼어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다. 나는 대화를 주도한다기보다 누군가 주도하는 대화에 참여하는 편인데 혹시나 그 대화가 끊기면 초조하고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제 다 같이 아무 말 대잔치 세계로 가게 되는 거지.
그런데 그가 함께 있으면 말이 끊길 염려가 없으니 꼭 내가 대화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대화에 책임의식이 줄어든달까. 남자 친구는 그런 나에게 모든 대화는 참여자 모두 1/n씩의 책임을 가지고 흘러가는데 너는 그 몫보다 가끔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줬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어쨌거나 귀여운 수다쟁이인 그와 함께라면 나는 내 몫의 1/n마저도 그가 가져가 준 것 같아 대화 중에 멍 때리기도 한다.
또 그는 상대방과 대함에 있어 격이 없는 편이다. 이게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어린 상대라 하더라도 그 상대가 자신에게 격을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른들 중에선 '후배가 자기한테 이렇게는 해야지'하는 자신만의 선을 가진 분들이 꽤 있었다.
후배인 네가 감히 나에게 이렇게 말하다니(분노)
후배인 네가 나를 모시러 와야지(분노). 등등
자기가 선배에게 으레껏 했던 일들을 당연히 후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그는 상대방에게 예의 있게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음속에 정해두지 않은 것 같았다. 상대방이 선배이건 후배이건 간에 모두에게 똑같이 대했고 그들에겐 요구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상대방을 상대 자체로 대할 뿐이었다. 그래서 후배들이 편하게 대할 때도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고 늘 즐겁게 받아주셨다. 오히려 그의 그런 점에 후배들이 스스로 그를 존중하고 따르게 되는 듯하다. 격을 요구하지 않으니 오히려 격을 높아진 상황이랄까.
이렇게 쓰고 나니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대단한 사람 같아 보인다. 그가 나의 이 용비어천가를 들으면 "뭐야. 이 사람이 나한테 왜 그래." 하면서 크게 웃으실 것 같다. 근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그가 어떤 직책을 가졌건 간에 그런 모습만으로도 존경스럽다. 내가 커서(더 커서)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다. 일종의 장래희망인 거지. 나도 내가 몇 살이 되건 누구에게도 똑같이 웃으면서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하지만 죽었다가 깨어나더라도 그처럼 뭐든지 아무 주제나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능력치가 한참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