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엄마 칭찬하기 다섯 번째
길다면 길었던 재택근무가 지난주에 끝이 났다. 그동안 난 아침 식사 후 아침마당을 보았고 글도 썼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아기처럼 낮잠도 자다가, 뒹구는 것이 지치면 엄마와 장을 보러 갔다 오는, 참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었다. 나는 미리 업무를 몰아서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재택근무 시간을 아주 탄력적으로 활용했다. 그야말로 살맛 났다. 내 삶에 이런 행복이 다시 찾아올까 싶은 나날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난 낮잠을 자던 시간에 거북목을 하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게 되었다. 8시 반에 출근하고 나면 오전 목표는 점심 먹기, 오후 목표는 퇴근하기, 두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일과 시간 내 햇빛을 본 게 10분이 채 넘으려나 싶은 빡빡한 일상이었다.
오래 쉬고 나면 힘이 넘쳐흘러서 이제 너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은데, 역시 난 더 지치고 피곤했다. 집에 돌아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지난주에는 잠드는 시간이 평균 9시 반 정도였던 것 같다. '이제 책을 읽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봐야지.' 하면서 침대에 앉으면 바로 꿈나라 직행열차였다. 들고 있던 폰은 어느새 침대 어느 한구석에 내동댕이 쳐져있었고 아침에 부랴부랴 충전되지 못한 폰을 들고 뛰쳐나갔다. 다시 이런 삶의 연속 이리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서 더 지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이 쳇바퀴에서 더 벗어나고 싶다.
나는 사실 직장인이 된 후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었다. 학생일 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 장래희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대학생 시절 대만으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는 열이 펄펄 끓는데도 그 몸을 이끌고 이 일을 하러 나갔었다. 이 일이야말로 끓는 열도 이겨낼 정도로 나에게 힘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직업을 갖게 되고 직접 일에 부딪히게 되면서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던 이 일의 모습은 아주 일부분이었고 직장 내 체제의 답답함이 나를 억눌렀다.
직장을 가지기 전엔 일을 해보지 않아 오히려 확신을 가졌을 수 있었다. '이게 내 길일 거야.', '난 이런 걸 좋아하는 성향이니까.''이 길 이어야만 해.' 였었다. 하지만 느낌표는 곧 물음표로 바뀌게 되었다. '이게 진짜 나의 길인가?', '나는 이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인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만한 이 무거운 일을 내가 맡을 자격이 있을까?',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로. 직장인이 된 초창기에 그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사실 7년 차가 된 지금도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직장 내에서 내가 답답해하던 부분들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아주 잘 해낼 만큼 성장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동안 많이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정년까지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 중이다.
지금 나의 장래희망은 책방 주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고르는 일을 더 좋아한다. 새로운 책장 앞에 서면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골라 읽고 싶어 설렌다. 그래서 책을 큐레이팅 하는 일이 즐거울 것 같다. 또 차분하게 책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면 그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 찰 것 같다. 요즘은 동네에 작은 책방들도 많이 생기던데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근데 또 동시에 두렵다. 아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정말 행복해질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지금의 일도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내가 꾸던 꿈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좋아하던 일이 직업이 되면 혹시나 그 일이 덜 좋아지진 않을까. 그런 마음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요즘 내가 다시 일을 다니며 평소보다 더 지쳐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엄마가 물었다.
엄마 "쉬다가 나가니까 더 힘들지?"
나 "다 그렇지. 일하는 게 좋기만 한 사람이 어딨겠어. 그래도 하는 거지."
엄마 "난 좋아서 하는데?"
나 "좋아서 한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우리 아침 챙겨주고, 집안일 때문에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데, 정말로 즐겁다고?"
엄마 "응. 난 진짜 좋아서 하는데?"
나 "그게 왜 좋아?"
엄마 "너랑 아빠랑 밥 챙겨 먹이고 너네 챙겨주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역시 답은 사랑이었구나. 사람이 그 일을 진정 좋아하게 되려면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구나. 나의 노동으로 인해 행복해질 사람들을 생각해야 그 일이 즐거워지는구나. 엄마와 그 찰나의 대화를 통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대화는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가끔 툭하고 깨달음을 준다. 나는 지금 나의 직업을 꿈꿀 때 그 일을 하며 행복해질 '나'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자 내 길에 대한 의심부터 들었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이 일이 즐겁다고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면 이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그 보람으로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진로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지금 나의 이 미약한 노동으로 조금은 삶이 달라질 누군가를 생각해며, 혹은 훗날 나의 서점에 방문하여 조금 더 즐거워질 누군가를 생각해보며. 그러면 좋아하던 일이 직업이 되어도 계속 즐겁지 않으려나. 역시 오늘도 엄마에게서 한수 배운다. 엄마 옆에 살 때 부지런히 그녀의 지혜를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