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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Mar 17. 2020

글을 올리는 것이 두려워졌다.

본격 <<스토너>> 칭찬하기

  처음은 어렵지 않았다. 글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고서 바로 브런치에 글을 써보았다.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는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게 두 편의 글을 쓰고는 작가 신청을 했고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기분이 좋았고 그날로 글을 조금씩 올려보았다. 하루에 대략 20명 정도의 조회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내 글을 찾아서 본 건지 궁금했다. 2-3번의 라이킷(좋아요)도 있었다. 글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분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게 황송할 따름이었다. 글을 올리기 전과 후의 나는 달라져있었다. 글을 올리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뿌듯했고 성취감이 있었다.


  문제는 어제였다. 어제도 글을 쓰려고 브런치에 접속했다. 지난주에 글을 쓴 이후로 매일 통계를 보고 있다. 숫자가 중요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내 글에 들어오게 된 경로가 궁금했고 내 글 중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보는 게 재미있어서이다. 통계를 보기 전에 살짝 마음의 준비를 한다. '조회수가 적어도 상처 받지 말자' '한 분이라도 글을 읽어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화면을 보았다. 슈퍼 쫄보이기 때문에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어제 오후 다섯 시의 조회수는 500이 넘어있었다. 오잉?!?!?????? 오백이라니?!! 나는 이번 주에 계속 20명 정도의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50도 아니고 500명이 내 글을 봤다고? 믿을 수가 없어서 여러 번 확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부터였다. 나는 슈퍼 관종병에 걸려 한 시간에 한 번씩 어플로 통계를 확인했다. 통계 속 숫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게 문제였다. 한 번씩 들어갈 때마다 백 단위가 달라져있으니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브런치에 많이 접속하다 보니 접속할 때마다 다른 분들의 글을 유심히 읽어보게 되었다. '아... 이렇게 잘 읽히는 글도 있는데..', '이렇게 생생하고 재밌을 수도 있는데... 내 글은 뭐지?' 이런 생각이 슬금슬금 머릿속을 지배해나갔다. 다른 작가들의 필력에 스스로 작아져갔고, 내 첫 번째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만큼 앞으로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가 부담스러워졌다. 글을 쓰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약이 필요했다. 담담해지고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슈퍼 관종병과 두려움을 치료해줄 만한 치료제! 아! 그 책이다!


  곧장 책상으로 갔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꺼내 들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 일생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간 그 사람을 지금 만나야겠다. 그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 스토너이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농사일을 더 배우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스승인 아처 슬론을 만나게 되고 문학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쭉 일평생을 문학도이자 문학 선생님으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큰 사건은 없다. 엄청난 학자가 되거나 절절한 사랑을 이루거나 크게 어려움을 겪거나 크게 성공하지 않았다. 스토너는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알고 그 방향으로 걸어간다. 정말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두 친구를 만났고, 첫눈에 반해 결혼하게 된 아내를 만났고, 그녀와 갈등을 빚었고, 사랑하는 딸인 그레이스를 만났고, 사랑을 알게 해 준 캐서린을 만났다. 그는 작고 많은 일을 겪어가며 일생을 살았다. 스토너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빠 같았고 나 같았고 내 친구들 같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엄청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더 어렸을 때는 공주가 될 줄 알았고,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될 줄 알았고, 드라마에 나오는 화려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산다는 건 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인 것만 같았다. 세상 속에서 나는 굉장히 작았고 당장 내일 없어져도 모를 만한 작은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업적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비록 나는 보잘것없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고 나는 내가 일하는 분야의 일원이다. 크고 화려한 업적이 없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모든 삶은 그 나름의 길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너와 같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부부가 함께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셨는데 함께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할아버지께 초등학교 학생들이 남긴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제작진,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학생들,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
제작진, "그러면 할아버지는 그 할 일을 다 하신 것 같아요?"
학생들, "네. 충분히 하셨어요."

  아. 단순하면서도 정답이다 싶었다. 스토너는 그렇게 살아간 사람이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땅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하고 살아 간 사람. 우리도 다르지 않다. 사는 모습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이다. 나도 스토너가 되기 위해 작은 변수에 날뛰지 않고 다시 묵묵하게 걸어가도록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당분간 조회수를 계속 쳐다보는 건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아! 모자란 글을 읽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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