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댕 부팡의 열정
불 꺼진 과거로 걸어 들어간다. 야라빌 더 선 씨어터, 메이드 인 1938 극장 속으로. 낙엽 지고 흐린 날 학생들과 극장 외출을 했다. 더 선은 럭셔리한 시네마로 문을 열고 한 동안 호황기를 누리다가 5, 60년대 티브이의 등장으로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그 후 20년 동안 버려진 상태로 있다가 1995년 새 주인을 만나 새롭게 단장하고 제 2의 극장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지금은 이 지역 랜드마크로 영화 애호가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대의 부침을 겪고 대형 시네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건재한 더 선을 기억했다.
화요일 오전 갑자기 들이닥친 단체 관람객에 매표소 직원이 환하게 우릴 맞아줬다. 극장표를 받아 들고 먼저 화장실로 직행한다. F 옆 M이라고 적힌 문을 앞에 두고 헤매던 틴톤은 시네마 입구에서 화장실을 외치며 입장했고 티레와 함께 다시 화장실을 찾아 스크린 옆 출구를 밀어 제치고 있었다. 이를 목격하곤 시네마 밖으로 그 둘을 데리고 가 Male 화장실 문을 열어준다. 돌아와 보니 프리뷰 없이 영화는 바로 오프닝 크레딧을 지나 옛 프랑스 시골 부엌을 보여주었다.
사골, 홍두깨살을 자르고 아롱사태에서 뼈를 빼내 큰 냄비에 넣고 물을 붓는다. 양파 네 개를 반으로 잘라 베이킹 트레이에 얹어 표면을 태운다. 셀러리, 리크, 당근과 무의 껍질을 벗겨 반쪽 양파와 함께 냄비에 투하한다. 허브, 마늘, 후추도 첨가한다. 냄비 안에 천을 덮고 세 시간 동안 숯불 오븐 위에서 뭉근 끓이다가 손질한 새끼 비둘기 두 개를 넣고 계속 끓인다. pot-au-feu (beef stew)
미식 요리 전문가 도댕과 그의 요리사 우지니의 1889년 프랑스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요리의 세계이다. 그 시대의 부엌은 우리 학생들의 그것과 멀지 않았다. 버마 태국 국경 난민 캠프에서 지구상 가장 낙후된 환경을 살다 온 젊은 아이들. 펌프로 퍼 나른 물을 장작불에 지펴 밥을 해 먹던 때가 엊그제였다. 2024년 현재도 집에 냉장고는커녕 전기라는 것이 없단다. 우지니의 조수 비올레뜨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도댕이 얼음을 잘게 부숴 넣은 철통 안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장면은 향수를 자아냈을 것이다.
달걀흰자를 풀어 설탕을 첨가하며 부풀 때까지 섞어 머랭을 만든다. 얇게 자른 케잌 위에 아이스크림을 둥글게 얹고 그 위에 머랭을 씌운다. 머랭이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 오븐에 굽는다. 밑에 깔린 케잌과 머랭의 거품 성분이 아이스크림을 차게 보존한다. baked alaska
이어지는 미식의 향연에 눈을 고정하며 모두가 스크린을 핥고 싶어 할 즈음 앞에 앉은 비비는 허기를 못 참았던지 과자봉지를 따고 부스럭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 앉은 사람이 뒤돌아보지 않을까 하던 차, 아잔(무슬림의 예배 알람)이 그녀 핸드폰에서 한자밤 흘러나온다. 정오인가 봐.. 무슬림권 주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옷 짓기와 밥 짓기. 영화를 고를 때 음식은 만국언어라고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그녀들의 레시피에 영감이라는 바람이 불길 바랐다. 시네마 에티켓 정도는 건너뛰어도 좋았다.
퍼프 페이스트리 두 장을 둥글게 자른다. 그중 한 장을 링모양으로 도려내어 다른 한 장 위에 얹고 잘 저은 달걀물을 고루 발라준다. 예열한 오븐에 갈색으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20분 정도 구운다. 부풀어 오른 윗면을 둥글게 잘라내 그릇모양을 낸다. 조개등 해산물과 야채에 크림을 넣고 요리한 뒤 구운 페이스트리 그릇에 듬뿍 담고 자른 윗면을 덮고 꼭대기에 야채를 얹어 마무리한다. seafood vol-au-vent
우지니는 도댕과 그의 미식가 친구들을 위해 5코스 정찬을 선사하고 음식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의 헌신에 모두가 찬사를 보낸다.
화장실을 가려던 건지 문쪽으로 향하던 콩고인 모시가 깜깜한 홀을 돌아 내게 다가와 섰다. 나가서 1층으로 내려가라고 손짓했더니 눈만 꿈벅거리며 서있는 거다. 그때 근처에 앉은 자히다가 시네마 문을 못 열어서 그런다고 웅얼거렸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궈 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크게 팔을 당기는 동작을 해 보였고 그는 문쪽으로 다시 걸어가 문을 밀어젖히고 나갔다. 그렇게 한눈파는 사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레시피 한두 컷을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또 한 번 봐야 할 영화임을 직감한다.
의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절하는 우지니. 아픈 우지니를 위해 도댕은 정성껏 요리를 했다. 지난 20년 동안 그를 위해 요리해 온 그녀를 위해.
소스팬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뿌려 섞다가 닭 육수를 넣고 15분 끓여 소스를 만든다. 셀러리 무 양파를 버터에 익혀 닭과 함께 육수를 붓고 오븐에 굽는다. 구운 닭에 소스와 송로버섯 가루를 뿌려 서빙한다. chicken with triffles
도댕: 당신이 먹는 걸 지켜봐도 될까요?
우지니: 당신이 원한다면.
그는 그녀가 한 포크를 입에 넣고 음미하는 표정을 지켜본다.
시네마 첫 경험. 처음 가보는 곳은 그렇게 낯설게 느껴져서 화장실을 가는 일도 문을 여닫는 일도 꽉 막혀버려서 시네마 방문이 컬처 쇼크(문화 충격)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 경험을 선사한 기분이 아이러니하게도 흐뭇했다. 나에게 컬처 쇼크는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의 시크린 결합. 현재 파트너가 있는 옛 연인이 함께 로맨스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혹시 실제 재결합한 건 아닌지 검색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영화를 사랑한다. 관람 후에 트란 안 홍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다. 먼저 비노쉬를 확보한 감독은 마지멜 캐스팅을 추진해서 성사시켰고 두 배우가 화해하는 계기도 되었단다. 그들의 딸, 아나는 엄마 아빠의 영화를 보고 울었단다.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비노쉬와 다른 배우가 아닌 마지멜이 함께 해서 작품에 더욱 애착이 갔다.
예열한 오븐에 잘게 썬 아몬드를 굽는다. 소스팬에 설탕과 시럽을 중불에 녹이고 캐러멜 색이 되면 아몬드에 붓고 몇 초 가열해 누가틴을 만든다. 다른 그릇에 크림을 넣고 부풀 때까지 설탕을 첨가하며 젓는다. 작은 소스팬에 다크 초콜릿을 녹인다. 준비해 놓은 마지팬(아몬드가루+설탕을 버무린 반죽) 위에 누가틴을 얹는다. 크림 위에 삶은 배와 녹인 초콜릿을 얹는다. pears & cream
센슈얼한 디저트로 다시 청혼하는 로맨티스트. 가을에 결혼해요. 당신은 삶의 가을을 맞을 준비가 되었나요. 이제 여름은 잊어요. 가을 남자 도댕과 함께라면 그러고 싶다. 이슬 같은 눈물을 남몰래 떨궈도 좋으련만 아름다움은 눈물보다 환하고 밝았다. 평일 조조 영화를 만끽하는 우리 반과 군침 도는 부엌씬에 홀려 고파오는 배를 즐거운 눈으로 캄푸라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