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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22. 2021

새까맣게 타버린 돈가스의 교훈

기후변화 '2도 목표'의 의미

지금은 그래도 예전만 못하지만(음?), 제가 진짜 요리 고자입니다. 특히 신혼 초에 의욕만 충만하고 실력은 젬병이던 시절 어마어마한 생산물을 만들어 내고 감당이 안되어 훌쩍훌쩍 울곤 했죠. (저녁때 귀가한

 남편이 부엌에서 쭈그려져 있는 눈물바람 와이프를 발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돈가스인데, 당시 같이 신혼이었던 친구 왈 "손은 좀 가지만 맛만은 보장해!"라길래 혹해서 미국 슈퍼에서 튼실한 돼지고기를 사다가 도전했죠. 어찌어찌 빵가루까지 묻혔는데, 기름에 튀기려는데 언제 집어넣어야 할지 대체 모르겠는 겁니다. 그때는 유튜브 요리 채널도 흔하지 않을 때라 혼자 이것저것 검색하고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났나 봅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대충 집게로 돈가스를 집어넣는 순간 (참고로 에라 모르겠다는 요리에서 절대로 가지면 안 되는 애티튜드입니다) 마법처럼 시커멓게 숯검댕이가 되는 덩어리... 제 멘탈도 함께 파스스 바스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주 초신성 폭발의 한 장면.....이 아니라 타버린 돈가스. (출처: 인터넷 줍줍)

그때 이후로 확실히 알게 된 건, 요리할 때 어떤 순간이 지나면 영원히 되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있단 겁니다. 실수를 해도 간을 맞추거나 재료를 더 넣어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사안이 있는 한편,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며 새댁의 눈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지요.



"2도"의 목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점

몇 년 전부터 기후변화 관련해서 "2도" 목표를 많이들 말합니다. 지금 지구온난화 때문에 지구 평균기온이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산업화 이전 이준으로 기온 상승폭을 최대 2도로 하자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 이 얘기를 접했을 때, 약간 "읭?"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니, 대체 2도가 어디서 튀어나온 거죠? 


그리고 이걸 목표로 인정한다 해도, 어떻게 달성을 하죠?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도 아니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아니고, 온도라뇨. 


2009년 코펜하겐 협정에서 처음으로 온도 기준의 목표를 세웠는데요, 당시에도 과연 2도라는 목표가 적절한지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온도 목표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고("What"), 달성 방법에 대해서도("How") 의견이 분분했어요. 우선 온도라는 것이 국제 기후협상에서 쓸 만한 바람직한 지표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였는데, 어떤 학자들은 해양 열용량(ocean heat content) 같은 다른 지표가 더 정확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코펜하겐 회의에서는 온도 목표만 툭 던져 놓고 어떻게 이를 달성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는 못했어요. 차라리 "야, 너네는 배출권 거래제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고, 또 너네는 탄소세를 몇 % 씩 부과하란 말이야!"라고 말해 줬으면 (반발하고 이행 안 하는 건 별도의 문제라 치고) 그나마 2도 목표의 달성 여부를 그림이라도 그려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이행 방안은 각국 정부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기 때문에, 대체 어떻게 각국의 노력을 조화시켜 2도를 달성할 것이냐고 비판이 있었죠. 



2도가 넘어가면 버려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2도의 목표는 이제 어느덧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2도라는 온도 목표는 티핑포인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아니면 너무나 돌이키기 힘들어지는 시점을 말하는데요. 

기후의 티핑포인트 (이미지: Climate Science)


46억 년에 달하는 지구의 연세(?)를 감안해보면 기온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기는 했는데요, 지구 공전 궤도나 태양의 흑점 변화 같은 외부적인 변화 때문에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했었지요. 하지만 산업화 이래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은 아주 짧은 시간 이내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 정도로 기후 시스템이 교란된 적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2도 이상 기온이 상승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만 할 수 있을 뿐, 명확히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물만 생각해 봐도, 영하 1도에서 영상 1도는 단지 2도 차이지만 완전히 상태가 달라져 버리잖아요? 

 자연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갑자기... (이미지:  PBS)

지금이야 기후의 관성으로 인해 잘 모르지만, 만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티핑포인트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그 시점이 3도라고 했을 때, 기온 상승이 3도를 넘어 버리면 변화는 서로 되먹임 현상이 일어나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생각보다 변화의 속도와 규모가 작을 수도 있는 거지만,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도록 대처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2도의 목표에 더 힘이 실립니다. 


사실 2도가 완전히 자의적인 목표라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 기온은 정량적인 수치일뿐더러 지구가 받는 복사 강제력(radiative forcing)과 여러 영향을 반영하는 지표고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복잡한 기후 모델을 통해 나온 숫자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도, 경제학자 노드하우스도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2도가 상당히 합리적인 목표임을 말하고 있고요. 


어쨌든 간단하고 명확한 목표가 하나 존재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초점 정책"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모든 국가가 "코로나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종식시키자"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초점이 생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2도도 기후변화 측에서 일종의 초점 정책이 될 수는 있단 겁니다. 어쨌든 감축 노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하니까요.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는 명확치 않지만, 바꿔 생각하면 각국 정부가 상당한 유연성을 보유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요. 


그리고 말이죠, 목표가 2도 "이내"라는 것이 엄청 중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1.5도를 주장하고 있어요. 0.5도 가지고 뭘 이러냐 싶지만, 극지방이나 열대 지방처럼 온도에 매우 민감한 생태계에서는 2도와 1.5도의 차이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에 민감한 섬나라들은 자기네가 생존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1.5도라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2도는 우리가 선택한 목표라기보다는, '이거면 될 거야'라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사실 2100년이 되면 1.5도는 아마 가뿐히 넘을 것 같거든요. 새까맣게 타 버린 돈가스의 교훈을 명심하며,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제대로 대처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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