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미 바닷가에서는 이상 고온 때문에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개, 홍합, 불가사리 등 바다 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한 건데요, 말 그대로 '익어서' 입을 벌리고 죽은 조개들이 즐비하다고 해요. 이렇게 때아닌 죽음을 맞이한 생물들은 무려 10억 개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이상 기후 현상은 이제 미디어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워낙 턱 밑까지 닥쳐온 기후 위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꼭 공통적으로 '지구 기온은 원래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느니 '빙하기가 다시 올 테니 별 문제없다'는 등의 말들이 눈에 띕니다. 대부분은 인간의 행위 때문에 망쳐진 자연환경을 안타까워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태도지만요.
아직도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거겠죠. 무턱대고 그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의 징후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았고 (그때까진 괜찮았던 게 아니라 바다가 온실가스를 다 잡아먹어서 그랬던 거예요!!! 이젠 더 흡수를 못해서 대기 중의 변화로 나타나는 겁니다ㅠㅠ) 이 모든 변화가 극히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소수긴 하지만 과학계에서도 기후변화의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일반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이제는 기후변화는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컴퓨터 모델링과 인공위성을 이용한 최신 과학과 기술이 알아낸 증거는 산처럼 쌓여가고, 이윤이 최우선인 기업들조차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추세니까요.
헷갈리지 말기 - 핵심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를 따져 보면, 그들의 맹점은 궁극적으로 '시간'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1년 사계절을 생각해 볼까요? 한국과 같은 많은 나라들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이 지나면 시원한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온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고 인간과는 관련이 없죠. 만일 누군가가 6월 첫 자락 즈음 "얼마 전보다 더워지는 것 같아! 지구 기후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닐까?ㅠㅠ"라고 한다면 오래 사신 어른들은 점잖게 "허허, 원래 이러다가 9월쯤 되면 다시 선선해진답니다."라고 말씀해 주시겠죠.
그런데 말이죠, 더운 여름이 시작될 무렵, 누군가가 마을 전체에 불을 땐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일 모닥불도 피우고, 숲도 태우고, 동네방네 불을 냅니다. 그러면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사람들과 동식물들은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르신들도 "여보게, 다들 타 죽기 전에 어서 불을 끄자고."라고 하시겠죠. 그런데 이놈의 방화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나중에 가을이 오고 추운 겨울이 올 테니까요!"
지금은 고작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인데, 서너 달 동안 끊임없이 불을 내면 가을이 오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릴 겁니다. 자연스러운 주기를 기다리기엔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교란을 하면서, 나중에 괜찮아질 거라니, 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 지구의 연세는 무려 45억 년이 넘습니다. 지금 파악된 바로는 지구의 빙하기는 적어도 4번 이상 큰 빙하기가 왔다고 해요. 그런데 인간이 등장해서 화석 연료를 태우고 지구의 기후를 맘껏 교란시킨 시간은요? 고작 200년이에요, 200년. 그래 놓고 자연스럽게 지구가 식을 때를 기다린다니, 그건 어렵게 말해서 어불성설이고, 쉽게 말해서 멍멍이 소리;;입니다.
인간은 정말 특수한 종입니다. 화석 기록으로 보았을 때 이제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어떤 시대와도 다른 독특한 문명을 건설했죠.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우기-건기 등의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순환을 '이용'해서 농업을 발명했고, 그것은 시작일 뿐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편의와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삽니다. 생태계 다른 동식물과 달리 심지어 우리에겐 포식자도 없어서,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지구의 모든 변화는 아주 느리고 점진적(slow and steady)이었습니다. 인간의 등장과 함께 이 규칙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지난 40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구에서는 5번의 대멸종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대멸종은 공룡을 비롯한 75 퍼센트의 동식물이 죽은 사건이었죠. 거의 모든 것이 죽고, 맨 땅에서 완전히 새로 건설된 생태계의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Holocene, 현세)'입니다. 홀로세 동안 지구의 기온은 위로도, 아래로도 1도 이상 변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빼고요. 그 무시무시한 속도를 좀 볼까요?
1937년: 인구 23억,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280 ppm, 미개척지 66%
1954년: 인구 27억,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10 ppm, 미개척지 64%
1978년: 인구 43억,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35 ppm, 미개척지 55%
1997년: 인구 59억,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60 ppm, 미개척지 46%
2020년: 인구 78억,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15 ppm, 미개척지 35%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대멸종마다 항상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백만 년쯤 되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화산 활동 등으로 변화가 이루어졌었는데, 인간은 그간 지구에 차곡차곡 쌓인 탄소 연료를 다 파내서 태우며 단 200년 만에 이를 해내죠. 그뿐인가요? 목재를 이용하고 토지를 경작하려고 이제까지 3조 그루(!)의 나무를 베어 냈고, 열대 우림은 이미 절반이 없어졌죠.
Attenborough 님의 말처럼, 지난 세기에 우리가 증명해낸 것은 대자연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취약하며 우주에서 혼자 덩그러니 떠 있죠. 고령에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위기를 호소하는 Attenborough 님... 우리가 은퇴 좀 시켜 드려야 할 텐데요.
끝.. 그리고 시작
우리가 환경을 얘기할 때 항상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말하는데요, 자연은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합니다. 생명은 시작하면 끝이 나지만, 그 끝은 시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문명도 자연과 상생할 수 있어야 할 거예요.
'순환'은 다르게 생각하면 무시무시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멸망해 버리고 다른 문명의 시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단 거니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그러고 보니 나 너무 넷플릭스 많이 보는 듯....) <Love, Death & Robots>의 한 에피소드 <Ice Age>에 보면 이사 온 집에 남겨져 있던 냉장고 안에서 문명이 건설되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어요. 아주아주 빠른 배속으로 감아놓은 것처럼, 인간의 등장부터 농업의 시작, 기술의 발전, 현재와 같은 대도시 건설까지. 개미처럼 조그만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끝을 모르는 바벨탑처럼 세계를 일구어 나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버섯구름과 함께 그 진보는 끝나 버려요. 다음 날,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또 다른 문명의 시작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요.
가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요? 정해져 있다면 뭐가 달라질까요?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처음과 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아이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아기를 가지기를 선택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처음부터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똑같은 선택을 하며 진보를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From the beginning I knew my destination, and I chose my route accordingly. But am I working toward an extreme of joy, or of pain? Will I achieve a minimum, or a maximum?
- Ted Chiang, <Stories of Your Life> 중 -
유한한 삶에서 우리 존재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 보는 것. 지금 기후 위기는 그 이상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