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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Nov 08. 2022

죽은 아이에게 "잔다"라고 이야기해도 믿을 수 있다면

<마가복음 5장>

38 회당장에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상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회당장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온다. 죽도록 아픈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다가온다. 딸의 목숨 앞에서 종교 지도자의 체면도 내려놓고 사이비 취급을 받던 사람에게 간구한다. 그 갈급함에 예수님은 반응하셨고, 그 딸을 고쳐주러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신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갈급한 사람이 나타난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아 온 한 여자였다. 그녀는 훨씬 더 간절했는데, 얼마나 간절했던지 예수님의 옷에 닿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손을 뻗었고, 나음을 입었다. 그 이후에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가 이어지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죽어가는 걸 아시는지, 시간은 흐르는데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야이로의 희망은 초조함으로 바뀌어만 갔고, 이어 회당장 집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당도할 때, 그 초조함은 절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 앞에서야 예수님께서 말씀을 멈추시고 한 마디 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슬픔에 빠져 있는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은 "아이는 죽은 게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당연히 비웃었다.


그건 절망이 섞인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일찍 오셨어도 죽지 않았을 거라는 원망들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꼭 필요할 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시다가 상황이 종료되고 이 말씀을 하셨다면, 나여도 비웃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보자. 병을 고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일으키시자 죽었던 아이가 살아나고, 절망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늘 다르다. 내가 필요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우시기도 하지만, 계속 응답을 늦추시다가 타이밍을 지나서 좌절하려는 순간에 일하시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이 일하셨던 것들을 봤던 경험을 보면, 그분이 언제나 좋은 분이셨음을 알 수 있는데. 나의 약함과 초조함이 예수님을 자꾸 비웃는다. 예수님이 언제나 선하게 일하심을 믿지 못하고 자꾸만 비웃는다. 그런 내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신뢰를 조금만 달라고. 죽은 아이에게 잔다고 이야기해도, 내 이야기를 조금만 믿어달라고.


회당장 야이로가 말씀을 멈추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처럼, 예수님이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에도 잠잠해야겠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빠져든 지금의 상황들이 이해되지 않고, 전혀 축복처럼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건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때에, 예수님의 선하심으로 일들이 진행될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는 거겠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만 있으면 될 것 같다.

그것만 있으면, 뭐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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