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룸으로 이사 간 날.
11월 마지막 금요일. 투룸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다. 눈 뜨면 싱크대와 헹거가 한눈에 보였던 경제적인 구조의 원룸과 12년 만에 이별했다. 전세자금 대출은 늘 우리 곁에 있으니 좀 더 일찍 이별할 법했지만, 쉽게 만족하는 타입에 귀찮음이 합세해 만들어낸 '이대로 살아도 괜찮음'이 '어두운 원룸도 괜찮아' 하게 했다. 그러던 7월 어느 날. 귀하다는 전세매물 구경이나 하자 했는데 현관 들어서자마자 이 집이다, 아니. 이게 집이구나 싶어 당장 걸어둘 10%의 계약금도 없으면서 덜컥 계약하겠노라 했다. 우여곡절을 즐기는 서타일이다.
커피값이나 벌자고 낸 사업자 때문에 대출심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을 땐 혹시라도 계약금을 날릴까 노심초사했다. '나는 재산이 많지 않아요'를 증명하는 서류를 추가로 제출하고서야 심사에 통과했고 전세금의 70%까지 빌려주는 버팀목 대출을 에누리 없이 받았다. 직전에 살던 원룸의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4%나 되는 중개수수료를 이체하고 나니 그제야 7월부터 마음에 가지고 있던 불안 덩어리가 워머 밑 향초처럼 녹았다. 킁킁, 제법 어른 냄새가 난다.
이사한 첫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냉장고 없이 넓은 방에 누워있자니 낯설었다. TV도 스피커도 꺼진 조용한 방에는 늘 냉장고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려왔었는데. 고개를 들어 방안을 두리번 하니 누워있는 침대 하나, 처음 가져보는 화장대 하나가 전부다. 서른 둘에 비로소 온전한 방이 생겼다.
루트가 바뀌니 마치 이직을 한듯 출근하는 기분도 새로웠다.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오전시간. 회사 동료들과 이사 근황 토크를 하는 내내 뭔가 배송해 주겠다는 택배 기사님의 문자를 폭탄처럼 받았다. 결제한 게 없는데 자꾸 뭘 배송완료 했다고 한다. 퇴근할 무렵 마지막으로 온 배송 완료 문자를 받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츤데레 남친들인척 몰래 하나씩 보내 놓고는 모르쇠 했던 그녀들의 계략이다. 괜히 욕하면서도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12월. 안그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사람들. 대상 후보에 오른 연예인처럼 별 기대 안 해요 했다가 아무것도 못 받으면 서운해하진 않았을까. 일찍이 수포자를 자청하며 찍어도 9등급이던 수학인데 관계 앞에서는 열심히 계산하고 따진 건 아니었는지. 이사가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주거공간의 확장을 넘어서 넓은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벅찬 무언가다. 관리비도 두 배로 나가고, 대출 이자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런 게 이사라면 힘들어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하겠다.
오늘은 연차를 내고 택배박스를 뜯으며 여유를 부려본다. 냄비째로 먹던 라면을 사발에 담아서 먹는 내 자신에 코웃음이 나온다. 전셋집도 이렇게 좋은데, 내 집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4년 후 쯤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